취미 만들기 좋은 시대다. 정보의 가격이 아주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든 원하는 것을, 거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시대다. 필요하면 유튜브를 열고, 조금만 검색하면 온라인 학습 사이트가 수없이 뜬다. 심지어 대학 강의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으니, 지식의 문턱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생성형 AI까지 발달하면서 정보를 찾는 수고마저 줄었다. 지금이야말로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 시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렇게 선택지가 풍성해지니 오히려 사람들은 더 쉽게 망설이고, 고르지 못하게 됐다. 귤과 사과 중 하나를 고르는 건 간단하지만,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진지향, 밀감, 금귤, 청귤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오히려 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런 식이다. 선택지가 많다는 건 곧 ‘결정의 피로’를 동반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뭔가를 선택하는 일을 힘들어한다. 이것도 괜찮아 보이고 저것도 매력적인 데다, 하고 싶은 일만큼이나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의 폭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선택을 미루는 시간도 길어진다.
얼마 전, 지인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요즘 들어 제대로 된 취미 하나쯤 갖고 싶어졌어요.” 그 말에 우리 모두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이미 꽤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용도별로, 색깔별로 각양각색의 펜과 연필을 모으는 취미. 노트북처럼 생긴 손거울이나 나쵸 모양 집게 같은 팬시 아이템을 사 모으는 취미. 운동도 다양하게 도전했고, 틈틈이 책도 읽었으며, 개봉작 영화는 빠짐없이 챙겨 보는, 누가 봐도 그는 ‘취미 부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어렴풋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조금씩은 해보지만, 유독 “이것이 내 취미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무언가는 없기 때문 아닐까. 조금은 특색 있고, 무엇보다 꾸준히 애정을 담아 지속할 수 있는 활동. 그런 취미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책을 좋아해서 종종 읽지만, 그렇다고 독서가 삶의 중심은 아니었다. 영화를 즐기지만, 자주 본다고 해서 그걸 당당히 취미라고 말하긴 애매했다. 그림이나 사진, 영상 만들기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레벨. 그러니 어디 가서 당당히 “내 취미는 이것입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걸 굳이 대놓고 말해야 하나요? 혼자서 즐기면 되는 거지.’ 하지만 나는 때때로 그런 상상을 한다. 누군가 “요즘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단 한 단어로,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한 마디로 대화가 넓어지고, 때로는 인연이 시작되기도 할 테니까.
그런 고민 끝에 나는 작은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다. 가슴속 어딘가에 품고 있던 취미 후보들 중 하나를 골라, 진짜 취미로 키워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을 기록하며, 취미가 생기는 흐름을 나 스스로 체험해 보고자 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하는 일. 내가 만든 취미의 여정을 남겨보고 싶었다.
내가 고른 취미는 ‘그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펜으로 선을 그려 만드는 ‘라인 드로잉’. 어릴 적부터 막연히 ‘언젠가는 나도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미술학원 근처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 상태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는 삶, 그것이 내 삶을 조금 더 즐겁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리란 믿음을 담아, 첫 번째 취미로 ‘그림’을 선택했다.
시작은 아주 단순하게 하려 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니까. 우선 사진 한 장을 보며 간단히 따라 그려보고, 짧은 글을 곁들이는 정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멋진 촬영 장비를 사들이는 일은 아직 이르다. 시작부터 무리를 하면, 오히려 부담감에 짓눌려 진도가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취미는 즐거움이어야지 의무가 되어선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작게 시작해 보려 한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설렘은 제법 크다. 그 설렘을 기록하며, 내 취미가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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