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냄새
그날은 스무 살의 마지막 밤이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대학생과 재수생과 사회인이 된 우리는 딱 그 나이만큼 술을 마셨다. 청춘이라 즐거웠고, 그래서 또 막막했다. 아직 오지 않은 K를 기다리며 술자리를 이어갔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K는 나타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기다린 나와 친구 하나도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럴 얘가 아닌데’ ‘못 오면 연락이라도 하지’ 같은, 의문과 원망이 섞인 걱정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택시를 부르려고 뻗은 팔을 흔들며 갓길에 주차된 덤프트럭을 무심코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트럭 안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 하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은, 분명 우리를 보고 있었다. 등골이 섬뜩하도록 기이한 모습에 친구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바닥의 친구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덤프트럭 안은, 사람은커녕 흔한 차량용 장신구 하나 없이 말끔했다. 친구와 나는 당혹스러웠다. 곧이어 택시가 도착했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숙취로 일어나지 못하는 내 등짝을 때리며 엄마가 전화기를 건넸다. 새해와 함께, 끝내 오지 않은 K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K를 회상하는 일은 생각만큼 괴롭지 않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슬픔보다 먼저 그의 냄새가 달려왔기 때문이다. K에게서는 항상 푸른 바다 냄새가 났고, 뒤이어 소나무의 청량한 향기와 백단향이 따라왔다. 평소 약속 장소에서 K를 기다리면 그보다 먼저 존재감을 드러내는 향기에 그가 근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K를 떠올리면 그의 냄새가 생각나고 그 냄새는 큰 키, 커다란 덩치, 호탕한 웃음을 한꺼번에 몰고 왔다. 아옹다옹하던 어린 시절부터 제법 남자티가 나던 학창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K에게서는 K만의 향기가 났고, 그의 냄새는 친구들과 함께였던 그 시절을 복원했다.
베티나 파우제는 ‘냄새의 심리학’에서, 후각과 정서는 한 명이 없으면 나머지도 살아남지 못하는 샴쌍둥이 같고, 냄새는 항상 존재해서 늘 정서와 연결되며, 냄새가 거의 나지 않을 때 말고는 중립적인 냄새란 없다고 했다. 또, 친구는 친인척 관계가 아니므로 유전자 역시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게 당연한데도, 후각 세포에 관한 유전자가 친구 간에 유사성을 만들어 결국 친구는 유전학적으로도 비슷하다고도 밝혔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일은 언제 어디든 좋아하는데, 칠포에서 월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특히 좋아한다. 가늘고 긴 몸통이 바다를 향해 잔뜩 몸을 기울인 소나무와 그 무성한 잎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며 만든 그늘은, 마을 어디쯤에서 말라가는 물고기의 비릿한 냄새를 머금고 있다. 낫씽벗띠브스의 음악이 흐르는 차 안으로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는 파도처럼 출렁였다. 언젠가 그곳을 지나다 비를 만난 날, 소나무 사이를 빠져나가는 안개를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서늘해지는 것은 언제나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날 내가 본 것은 K였을까. 그때 그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러 온 것일까. 그를 알아보지 못한 우리 때문에 겨울밤, K의 향기는 차가운 공기 속을 오래 떠돌았을까. 다시 쓴다. K를 회상하는 것은 생각보다,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