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가족, 그 사이 어딘가
지원아.
지금 새벽이라 새벽감성이 돋는다. 이해해 줘.
오늘 밤 너와 대화하며 네가 기약 없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어.
마음이 계속 아린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밑도 끝도 없지. 과거를 되풀이할 때도 있었지만 근래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에 대한 한탄, 그리고 막연한 죽음에 대해서까지 얘기하고는 해. 그러다가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가벼운 게임 얘기도 하고 금방 웃으며 털어버린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린다.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거든. 도돌이표로 또 돌아와도 질리지 않거든.
솔직히 아까도 마음 한편이 쓰렸는데 모른 척 넘어갔다. 이상해, 너는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나는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이런 식으로도 너를 애 취급 하는 것 같아. 왜 이렇게 자식 독립 시키는 부모의 마음일까.
너는 이제 네 갈 길을 찾아 한 걸음 더 내딛는 거겠지. 그게 참 대견하면서도 씁쓸해. 아쉬워,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구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너에게 가장 좋을 길이란 걸 아니까, 보내줘야지.
우리 이제 곧 십년지기가 되겠네. 그리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우리 지난 십 년 동안 서로를 서로의 가족보다 더 많이 봐왔다. 같이 동고동락한 십 년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며, 서로 지인이라고 하지만 — 우리는 정말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애매하다, 그렇지?
너 같은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우리의 관계를 다른 누군가와 재현할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어. 그래서 나에게 우리의 관계는 이뤄 말할 수 없을 만큼 귀해. 내 평생에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아. 아니, 이런 우정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편린들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동안 우리의 시간이 얽혀있고, 그만큼 뼈가 부러지듯 깨지고 다시 더 단단히 붙어 지금의 우리가 되었잖아. 그런데 앞으로 다시 만날 기약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게 — 음, 뭐랄까, 너무 기분이 이상하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서로를 만나게 하셨을까?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고 싶으신 걸까? 하나님은 왜 이렇게 깊은 우정을 허락하셔서 그만큼 아프게 하실까? 예정된 인생의 헤어짐으로 인해 사랑할수록 고통이 늘어가는 인간의 삶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아프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 또한 번뇌할 일이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너를 통해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아.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에게 받은 것이 준 것보다 더 많아 미안해. 내가 원체 욕심이 많은 인간이라 그런가 봐. 용서해 줘.
언제라도 돌아 올 곳이 필요하다면 와. 끝까지 환영해.
2025년 5월 25일
함께 살을 맞대며 살던 오랜 친구가 떠나기 반년 전 써둔 글을, 그가 떠나고 몇 달이 지나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