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꽃피는 우정
오늘은 버스킹 이야기가 아니라 놀다가 만난 민디아와 나눈 대화내용이다.
돌아보면 계획없이 돌아다니는 성격덕인지 여기저기에 참 맥락없이도 돌아다녔고 그 덕에 아는 사람도 꽤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서술하겠지만 카프카스 지역은 한국인 분포율이 1%에 가까워서, 여행 내내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덕분에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현지인이거나, 이 동네 여행 온 유럽인이거나 했다.
1. 카즈베기에 대해서
조지아에 오면 놓칠 수 없는 장소가 있다. 카즈베기다.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의 장엄한 풍경과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깃든 곳이라 관광지로써 이름을 날리는 곳.
여기를 가려면 디두베(didube)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미니버스 마슛카(Marshruka)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구경할 수 있는 아나우리 성은 덤. 그러나 가는 데 3시간은 걸린다. 가는 길은 도로정비 사정이 좋지 않아 매우 덜컹거리므로 기왕이면 대형 버스를 타는 게 심신 건강에 좋다(비용은 동일하거나 약간 높다.)
이곳에서 푸른색 눈동자의 조지아 남자 민디아를 만났다. 사진은 없지만 그는 무척 잘생기고 키가 크다. 190cm정도의 장신에, 영화배우 못지 않은 조각같은 외모에, 따뜻한 마음씨까지 갖추었다. 더군다나 남자아이의 이름은 덮어놓고 '조지'인 이 나라에서, 무려 '민디아'라는, 주변과 구별되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와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해둔다.
민디아, 넌 카즈베기 출신이야?
아니야. 나는 트빌리시에서 태어났고 부모님도 거기에 계셔. 카즈베기의 아름다운 자연을 친구들과 느끼고 싶어서 이곳에 있지. 트빌리시에도 집이 있고 여기에도 집이 있어. (그는 금수저였다.) 아무래도 여름의 트빌리시는 온도가 높은데, 카즈베기는 지대가 높기 때문에 시원해. 그래서 여름만 이곳에서 나는 거지. 나 말고도 많은 트빌리시 주민들이 카즈베기나 메스티아에서 여름만 지내는 경우가 많아. 렌트 비용은 아무래도 관광지다 보니까 높지? 조지아는 가족 친지관계가 끈끈하다보니까, 현지인은 외국인과는 전혀 다른 비용으로 집을 빌릴 수가 있지.(.....)
관광객을 많이 만날 텐데 그들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들어? 특별히 좋아하는 나라가 있어? 물론 이 나라 출신이라고 해서 전부 같은 성격은 아니겠지만.
나는 폴란드 사람들이 제일 좋아! 뭘 권하는 거절하는 법이 없거든. 너도 알다시피 조지아는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고, 술과 음식을 권하면서 정을 나누는 사회야. 그런데 서유럽 국가에서 온 여행객들은 거절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가끔 서운할 때가 있어. 물론 그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인정하지만 말야. 그런데 폴란드 사람들은 무척 유쾌하고, 뭘 거절하는 법이 없는데다가, 승낙을 하는 것도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게 느껴져. 긍정적인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여행객들을 만나면서 부정적인 경험은 없었어?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러시아 남자. 사십대 정도 되어보였어. 나는 그때 당시에 담배를 사러 갔는데, 담배 가게 주인이 다소 늦은 시간이라 잠들었는지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지. 그래서 마침 담배를 사러 온 러시아인을 도울 겸 내가 문을 쾅쾅 두들겨서 열어 줬어. 우리는 미소를 지었고,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내가 러시아 남자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거든. 그런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됐다고 하는 거야. 우리나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생각하는 게 보였어. 아직까지도 분하네.
반대로 맘에 안 드는 점도 있어?
너는 현지인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지역 주민들끼리 칼 들고 싸우는 경우가 있어. 바로 며칠 전에도 카즈베기 주민들이 두 편으로 나누져서 패싸움을 벌였거든. 그때도 칼로 휘젓고 난리도 아니었어.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그리고 트빌리시에 비해서 음식점이 별로 발달을 안 해서, 맛있는 집이 별로 없어. 그리고 산 속에 있다 보니 식재료가 신선하지도 좋지도 않은 점이 맘에 안 들어. 너도 몇 몇 레스토랑에 가 봐서 알겠지만, 킨칼리는 냉동이고 하차푸리도 인스턴트야. 게다가 가격만 비싸지.
외국인 여자로서 조심해야 할 게 있을까? 난 최근에 트빌리시에서 지내다 왔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에게 ‘니하오’라고 해서 다소 기분이 나빴어.
먼저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아. 너에게는 인종차별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냥 단순히 인사를 하고 싶어서 ‘니하오’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 네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알겠지만 평소에도 인사를 많이 해. ‘가마르조바’하고 말야. 물론 인종차별적인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나라와는 좀 다른 이유로 수없이 ‘니하오’ 거리는 거니, 되도록 크게 기분나빠하지 말길 바래. 별다른 뜻 없이 그러는 거야.
그러나 만약 ‘마사지’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달라. 그건 성매매를 의미해. 굉장히 무례한 거지. 그래도 그런 사람에게 ‘fuck you’는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해. 이 나라는 남성중심적인 곳이야. 그래서 여성들에게 분노는 거의 금지되어 있지. 분노하고 싸우는 건 남자의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 유교랑 비슷하게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을 구분지어 놓은 경향이 있지. 답답하지? 그래서 조지아 여성들은 참 지나칠 정도로 착하고 배려심이 깊지.
내 친구가 얼마 전 택시기사에게 안 좋은 일을 당했어.
너무 비열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떤 사람이 자기 나라가 아닌 외국에 있다면 그는 매우 약한 입장이잖아. 마치 고양이나 개처럼, 어떤 권리가 없고 상황에 대해서도 옳은 지 그른지 유리한지 안 유리한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야. 외국인에게 함부로 구는 사람은 분명 평소에도 약자를 괴롭히는 비열한 사람이야.
나도 최근 독일에 갔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어. 독일 사람들이 내 입장에서는 무척 무례한 농담을 했는데, 반응을 보일 수 없었어. 거기서 싸움을 벌였다가 나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한 번이라도 외국에 나갔다 온 적이 있다면, 외국인을 상대로 싸움을 건다는 것은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갖고 놀겠다는 태도라고 봐. 아주 나빠.
대부분의 조지아 사람들은 그 택시기사와는 다르니까 안심해도 돼. 이 사람들은 설령 네가 사회적으로 악랄한 명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네가 위험에 처한다면 너를 도울 거야. 설령 저 사람이랑 내가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더라도, 자동차에 문제 있어서 도로에 멈춰 서 있거나, 돈 잃어버려서 오늘 먹을 게 없거나, 다쳤거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네가 곤란한 상황이면 발 벗고 나서서 도울 거야. 조지아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야. 너도 여기서 지내다 보면 곧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몇달 후 나는 그의 의견에 캐동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건 ‘퓨어 이블은 없다’라는 말과 연관이 있을까?
어떻게 그 말을 알지? 맞아. 설령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포용하고자 하는 정신이 조지아에 있어. 너도 봤겠지만 대다수의 조지아사람들이 교회를 지나칠 때 성호를 그어. 다른 나라에서는 참 보기 힘든 광경이야. 그냥 지나치다가도 성호를 긋는 것은 물론이요, 자동차로 교회근처를 지나가면서도 성호를 긋지. (운전하면서 성호를 긋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
나도 어렸을 때 몇 번 경험이 있어. 우리 동네에 아주 안 좋은 소문이 있는 아저씨가 있었어. 모두가 그 사람을 욕했어. 자기 이득을 위해서 부동산을 갖고 장난을 쳐서 그 일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나. 그런데 그 아저씨네 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 우리가 다 찾아가서 도움을 줬어. 그런 일이 항상 일어나는 곳이야, 이곳은.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쉽게 욕하지.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어. 어떤 사람들은 정말 가난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극한에 몰려서, 다 각자의 절박한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기도 해. 그런 사정을 다 알지도 못하고 비난부터 하는 건 잘못이야. 자신이 그 입장이 되어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어, 안 그래?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고 때때로 실수를 저질러. 그러니까 누군가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이런 말을 하는 그는 스물 세 살에 불과하다. 철학자의 나라....조지아...)
최근에 걱정거리가 있어?
내게는 만난 지 2년 된 여자 친구가 있어. 이름은 마리야. 나는 그녀를 ‘마리콰나(마리화나;;)’로 부르지. 우리는 마법처럼 이끌려서 사귀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마리를 사랑해. 하지만 최근에 자주 싸워서 고민이야. 물론 사랑하니까 싸울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니 너무 힘들어. 그리고 싸우는 과정에서 막말도 오가게 되고, 화해를 한 뒤에도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그녀를 대할 때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피곤하고 모두 놔 버리고 싶을 때도 많아.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 그녀가 날 사랑한다는 것도 잘 알아. 이건 정답이 없는 문제지만, 최근에는 너무 힘들어서 고민 돼. 그렇다고 그녀랑 헤어질 수도 없어. 헤어지는 게 더 큰 고통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술을 마실 때 '지금은 저 세상으로 떠나고 없는 가족과 친구들을 기억하자'고 말하곤 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모든 사람의 도움과 사랑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나라는 존재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어. 마치 매일 매일 먹는 음식이 돈으로 교환 가능하니까 그저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착각 속에 빠져 있어. 음식재료를 나르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는 것처럼, 내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끗이 잊고 말아. 그걸 기억하며 산다면 인생이 더 풍요로워 지리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