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에디터, 여행으로 도주하다
도피성 무계획 여행의 시작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저 앞의 청년은 누구?
이 음식은 먹어도 되는 걸까?
여행은 이런 질문을 머릿속에 띄우기 위해 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주를 볼 줄은 모르지만 글자 사방에 ‘식신’이라는 게 채워져 있고, 먹을 거라면 사죽을 못 쓰고, 1n년된 친구에게 처음 호감을 품은 게 그녀석이 요리를 잘 한다는 것이었던...지난 과거를 떠올려 본다. 나와 좋은 관계였던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저 애 어딘가 굶주려 있군’이라는 얼굴로, 친해지기도 전에 고맙게도 일단 밥을 하사하시곤 하시었다.
식신은 해외까지 나를 따라와 주셨다.
그와 이야기한 것은 고작 5분에서 10분 사이였다. 그리고 나는 배고프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했다. 배가 고프다면서 식당에 가야 한다면서 따라오라고 강요(?)했다. 인간은 호감을 느끼면 일단 상대를 먹이려고 드는 동물적 본성은 버리지 못하는 구나. 쫄래쫄래 따라갔다. 설령 그가 사기를 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의 선두로써 나를 속이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식사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는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사랑(?)를 보여주었다.
식당 메뉴판은 총 5장짜리였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시키지 않은 게 별로 없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던 접시만 다섯 개가 넘었으며, 그마저도 먹고 나면, 그는 내 앞이 비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다소 거칠게 종업원을 불러 새로운 메뉴로 채워주었다. 심지어는 남으면 싸가라고 했던 그 남자. 이 남자의 포근한 마음씨가 내가 이 도시를 회고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나라로 여행 오게 된 건가?”
이 장소에 떨어지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여행이 하고 싶었고, 한국에서 떨어져 나와 있고 싶었고, 이 나라가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무작정 질렀다. 충동구매(...). 여행을 질렀다는 데서 일반 직장인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셨을 거다. 그렇다. 나는 에디터다. 훗,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가!
그러나 조금 불평을 하자면 예술 관련 분야가 다 그렇듯 미수금으로 인한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어떻게 악덕업자에게 피를 빨려 가난으로 고통받느냐면, 아주 단순한 프로세스다. 일단 일을 한다.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편집자에게 시달리고, 나에게는 꼼꼼한 유전자가 없거나 손실된 건가 고민하고 자기비하도 하면서 마감도 친다. 한두 업체를 관리하는 게 아니므로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해야 한 달이 지나간다. 머리도 희어지고 술도 늘고 담달에 받을 돈을 떠올리며 이미 많은 것을 구매해놓는다. 그러나 돈이 입금되지 않는다.
친구라면 멱살이라도 잡고 탈탈 털어서라도 받아내겠지만 나는 프리랜서고 상대방은 나에게 일감을 주는 사람. 굽신거리며 전화해서 원고료는 언제 받을 수 있느냐고 하면 상대방은 말을 돌리면서 다음 일감이 다음 주에 있다면서 가달라고 한다.
“저번 달 원고료 주세요, 그러면 이번 일 할게요.”가 목구멍끝까지 기어올라오지만 앞날이 두려워 깨물어 삼킨다. 그렇게 몇 달이 밀리면 ‘동사무소에서 쌀을 타다먹지 않으면 향후 생존이 어렵겠구나.’ 란 생각이 들면서 괘씸한 미수금처의 전화번호를 지워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렇게 굳은 결심에 금이 간다. 미수금처가 눈꼽만큼이긴 하지만 입금해야 할 돈의 일부를 넣어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끌려 다닌다. (참고로 미수금처는 프리랜서의 피를 빨면서 자기들 살 거 다 사고 아주 풍족하게 생활한다는 것도 풍문으로 자주 듣는다.)
아무튼 화려하고 멋지고 재미있는 일이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난을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미수금처들은 무슨 낯짝인지 다음해 정도에 슬그머니 ‘이 사람에게 돈을 줬다’라고 국세청에 신고해 버려서(나에게 돈은 주지 않고) 나의 수입은 받은 돈보다 더 많이 잡혀버리는 악순환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고민하였고, 고민에는 별 취미가 없는 즉물적인 나는 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여행에 쓰곤 했다. 흠, 가난에 시달리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 하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고, 다시 월세보증금을 더욱 줄이고, 등으로 가능하다고 해 두자.
이 여행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빈 통장을 보며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우울하니 직업을 바꿀까 하다가 어느덧 내 손은 유럽으로 가는 경유비행기를 지르고 있었다. 저렴했던 것도 한몫했다. 300달러 정도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