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너의 착각에 동조했을 뿐이다. 나는 그런 변명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가 꺼낸 내용은 내 예상과 달랐다. 로빈은 심각한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해도 될 지 모르겠다. 파푸너는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다, 그걸 네가 모를 수도 있는 것 같아서 얘기해주게 되었다 라고 말했다.
나는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탔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영화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으로 그치지 못한다. 진실을 덮기 위한 한 개의 거짓말은, 결국 다른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다. 거짓말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서 가장 유쾌한 것을 꼽자면 <거짓말의 발명>이다. 이 세상에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영화는, 거짓말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단절과 거절과 상처로 충만할 것인지를 웅변한다. 반대의 시각도 있다. 기억나지 않지만 2000년도에 역시 큰 대회 상을 받은 영화다. 유럽쪽 영화인데, 친족성폭력이 주제였다. 결국 가해자인 아버지를 온 가족이 따돌리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이건 영화 제목을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계속 우리는 어긋나게 될 것이다. 나중에 내가 솔직하게 진실을 밝힌다고 해도, 너는 나를 언제, 어느 시점의 어느 부분부터 믿고 그 전의 정보를 버려야 할지를 구분하지 못해 혼란해하고, 멀어지고, 시간을 두고 생각했지만 역시 나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나라는 카드를 버리게 되겠지. 그러니까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난 능숙한 거짓말쟁이도 못 된다. 어느 쪽이냐 하면 강박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아스퍼거에 가깝다. 설령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도 진실을 말하고, 선의의 거짓말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종류의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뭘 바라는지도 모르는데 너와 나 사이의 장애물을 전부 치워버리고 싶진 않다. 그건 너무 무방비하다. 널 갖고 놀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난 내 마음에 확신이 있을 때까지는 그저 나를 네 사냥의 영역에 두고 싶지 않은 것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깨닫는다. 나는 이 친절하고 통찰력이 있고 어딘가 거짓말쟁이의 분위기를 풍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이 분명한 이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는 콧잔등을 찡그리고는, 영어가 부족해서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척을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풋’하는 비웃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이 이상의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간신히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파푸너랑 한 번 이야기해볼게.’하지만 별로 충격받지 않은 내 모습에서 로빈은 무언가를 감지하긴 했을 것이다. 나는 연습실로 도망쳐서 피아노로 이런 저런 멜로디를 쳤다. 아는 노래, 잘 모르는 노래, 지금 만들어 낸 노래.
로빈이 뒤따라왔다. 어쩌면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연주도 하고 사귀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충격에 멍때리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는 기타를 집어들고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내가 대충 치는 곡에 맞춰서 스트록도 하고, 아르페지오도 하고, 전혀 조화롭지 못했다가 때로는 그가 곡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연주하고.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부러 그를 밀어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얼굴 근육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시치미를 뗐지만. 사실은 전혀 냉정하지 못했다.
분하다.
꼿꼿한 나무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돌멩이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란 말인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싫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수치다. 이렇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내가 한때 사랑하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잘 가지고 놀아, 가지고 놀다가 제자리에만 돌려놓기만 하면 돼.”
언제나 쿨하던 물병자리의 그녀는, 그러나 그 태도를 끝까지 견지하지 못했다. 안경을 쓰고 김동률을 닮은, 취향이 한없이 고급스럽고 그래서 남을 제 자아로 별로 들이지 않는 조용하면서도 수동 공격적인 남자애와 만났다. 어느 겨울에 카페 앞에서 날 보고는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쳐다보면서 우리를 내버려두고 동그란 원을 그리면서 걸었다. 그녀는 손을 내민 나를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나 차였어, 울면서 매달렸는데도 그 애는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 그녀는 속삭였다.
이 게임에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야.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거야. 아무리 굳건한 자아와 멘탈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이 게임에서는 이기지 못하는 거야. 짓눌러, 짓이겨 버려. 나는 한없이 여려지기만 하는 링 위의 나에게 응원을 보냈다. 모든 감정이 소중한 건 아니야, 어떤 감정은 그저 널 고문하는 데 쓰여질 뿐이지. 지금 찾아오는 설렘은, 나중에 널 고문하는 새빨간 꼬챙이가 될거니까. 잘 알잖아. 그걸 알면서도 참가하겠다는 건 자해와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르지?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행위다. 나를 너무 존중하고, 나 자신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보호할 것이다. 나만은 내 편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설령 눈앞에서 로빈이 이런 식으로 알짱거려도, 대뜸 그의 마음에 공감하거나 그의 감정을 일 순위에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일 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는 언제든지 내 인생에서 사라질 수 있고 사라질 자유가 있지만, 나 자신은 그렇지 않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행동을 부당하고 말한다. 도피니, 이기심이니, 회피니, 갖은 단어를 사용해 지칭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이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다. 혼자 남겨진 쓸쓸함과 비참함을 모르기라도 한단 말인가? 변심한 애인이 왜 그랬는지 이유도 알지 못하고, 알콜에 뇌를 절이면서 그저 이 모든 사건들이 희미해지기만 비는 난감하고 공허한 시간들을 거쳐본 적이 없단 말인가? 그게 두렵고 고통스럽지 않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