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거짓말
그렇게도 거짓말이 싫었다. 거짓말에 실망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매일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하나 고민한다. 거짓은 물론이고 모순과 아이러니 투성이인 세상. 갓난아이가 왜 예쁠까. 거짓말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갓난아이 시절이 있다. 인간은 왜 갓난아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까. 거짓을 알고 나서부터는 -이것은 나의 거짓말이다-뇌세포가 변형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그렇게 진화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지금의 나로 진화된 건 거짓말 덕분이고 거짓말을 해야 조금이라도 편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머리를 굴리고 굴려 효율적이고 오래도록 영향력 있으면서도 품위까지 챙길 수 있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심지어 진실을 더욱 진실되게 보이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 무엇일까, 진실을 지키기 위해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하나, 그런 고민들 말이다.
나는 부모의 거짓말을 들으며 컸고, 그들의 거짓말에 실망하고, 그들을 원망하고, 덕분에 성장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의 거짓말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엄마는 마지막에 한 가지는 알았다. 뇌종양으로 응급실로 왔던 날 밤, 엄마는 나에게 아들을 잘못 키웠다고 했다. 뇌부종이 오기 직전이었던 그날의 엄마는 그날 부터 7개월 정도의 기간 중 정신이 가장 온전했고 선명했다. 그날 나눴던 대화를 이후에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와상환자로 누워있던 기간 동안 엄마는 우리집에서 그리고 요양원에서 그저 며칠이라도, 단 하루라도, 집에 데려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들내외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람이, 자식이, 며느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수도 있었을 그 시간을 낙담과 절망, 분노 혹은 우울 그런 것들로 채웠다. 오랜 기간 동안 당신이 해 왔던 거짓말이 나비효과가 되어 그 결과를 초래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항상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좀 지나 보면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 처음부터 괜찮다고 하지 말지 왜 그랬냐 그러면 또 괜찮다,라고 했다. 엄마가 했던 수많은 거짓말들 중 듣기에 가장 힘든 거짓말은 괜찮다는 말이었다. 몇 해전 우리 집 옆으로 이사 오면 안 되겠냐는 부탁도 거절하고 아들이 아버지 모시고 좀 더 계셔 주셨으면 하는 것 같다고 말도 못 하고 나에겐 그저 괜찮다고만 했다. 아파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고, 맘에 들지 않아도 괜찮고, 치매 걸린 아버지가 힘들면서도 괜찮다고 했던 엄마는 뇌종양 크기가 그렇게 크게 자랄 때까지도 괜찮다고 했다. 엄마가 평생 해 왔던 괜찮다는 말은 자식들이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했고 그럼에도 할 수 있었던 효도였으므로 무거운 죄책감과 회한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상대가 괜찮다는 말을 할 때면 좋다는 뜻이냐 좋지 않다는 뜻이냐 다시 되묻곤 한다. 아이들에게도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분명히 말해라, 솔직하게 말해라, 그런 잔소리를 한다. 두 번 세 번 사양하는 충청도 화법도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를 위하고 나를 낮추며 말하는 것이 완전한 진심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거짓말 속에 나를 감추고 회피하는 것이 그 순간은 편하겠지만 그런 순간이 쌓이다 보면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 순기능을 가져오는 거짓된 상황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이 인간의 양면성을 담고 있는 칼자루와 같다고 생각한다. 잘못 쓰면 위험하고, 잘 쓰면 살릴 수도 있는 것.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고, 더 깨어 있으려 한다. 필요 없을 때 함부로 휘두르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할 때 제대로 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