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의 암탉(A Hen In The Wind, 1948)
* 오즈 야스지로의 <바람 속의 암탉(1948)>을 감상했다.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 영화를 말한다>라는 책. 물론 책 안에는 보다 깊은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기요시 감독의 서술이 있습니다.
<바람 속의 암탉(1948)>에는 그리 많지 않은 장소들, 공간들이 반복해서 프레임 안에 담긴다. 주인공 가족이 기거하는 마을과 거리의 풍경, 그곳에서 공사 중인 어떤 건물의 모습, 강가, 집 안 등이 그것이다. 이 장소들은 모두 작품 속 인물들이 지내고 생활하는 공간, 그들 삶의 배경으로서의 공간이다. 오즈는 이러한 공간들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아마도 오즈 야스지로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샷'으로 유명한 이유는, 이 상호작용을 누구보다 고요하면서 내밀하게 담아내기 때문임이 아닐까.
이 작품을 보고 오즈 특유의 뜬금없는 사물을 비추는 샷을 필로우 샷(pillow shot)이라고 칭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의 사진들이 필로우 샷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지만, (오히려 1의 카테고리에 적합해 보인다) 구글링으로는 영화 내에서 적합해 보이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기에...... 어쨌든 이러한 오즈의 필로우 샷은 바로 앞, 혹은 뒤에 연결된 신과의 연결을 통해 어떤 정서가 더욱 깊게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지닌 듯했다. 드라마틱한 촬영 효과를 주거나, 대사를 넣거나,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하지 않으면서 감정은 더욱 불러일으키는 우아한 방식.
또한 프레임 내에서 종으로, 횡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을 카메라가 어떻게 담았는지 따라가면서 영화를 감상하면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바람 속의 암탉(1948)>에는 적지 않은 이동 장면이 나온다. 이동이 발생할 때마다 다채롭게 변주되는 촬영기법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미소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촬영이 탁월하다고 해서 각본은 엉성한가 하면, 꼭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물론 시대와 세상이 당시와는 달라졌으므로 누군가는 오즈의 젠더론에 관하여 따끔한 지적을 날리고 싶을 수도 있겠다. 성매매를 한 아내, 그리고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남편, 전쟁이 지속되는 세계와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청년, 아장아장 걷는 아기. 이러한 인물들이 <바람 속의 암탉(1948)>이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거나 배신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서로를 의지하여 걸어가기로 다짐한다. 설령 그것이 절뚝이는 걸음걸이일지라도.
가장 영화다운 영화를 찍는 사람이 누구인 것 같냐고 물으면, 오늘은 '오즈 야스지로'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영화는 서사와 영상, 그리고 다른 수많은 요소들의 결합일 것이다. 비로소 오늘 나는 영상, 그리고 샷의 개념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이는 아무리 이론서를 읽으며 공부해도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영화의 다른 개별적인 요소에 대하여 논하더라도, 결국 영상에 대한 논의 없이는 그 영화에 대한 논의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