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게 화해를 신청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좋아한다는 것

by Abyss





어떤 영화에서는 영화광들을 "영화를 보기 위해 일부러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던 시기의 나는 오히려 어두컴컴한 곳에 있기 위해 영화를 보는 사람이었다.










대입 이후 맞이한 상황들과 오롯이 홀로 소화해야 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꼼짝없이 누워 있는 일이 고작이던 낮과 밤의 와중에도 나는 왜인지 자꾸만 조급하고 불안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시간은 가는데 나는 제자리에 못박혀 있으니 못박혀서라도 할 수 있는 게 영화 보기 같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편 보던 것이 서너 편이 되고, 영화제에 방문하며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도 사귀었다. 함께 영화를 보러 독립영화관으로 영상자료원으로 시네마테크로 향했다. 내가 원해서 굽이굽이 흘러가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영화를 좋아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많이 바뀐 듯한 느낌이 뿌듯했다. 이게 아니었다면 나는 어디까지 가라앉았을지 상기할 때면 영화가 더 간절해졌다.












그렇게 보낸 몇 년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라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닥치는 대로 보거나, 필모그래피를 집중적으로 탐색하거나, 나만의 취향을 찾아 온갖 데이터를 파헤칠 때는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기도 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반짝이는 것은 오직 스크린에 쏘아진 빛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눈동자뿐. 그 순간이 나에게만은 진실되게 두근거리고 즐거웠다.


그렇게 좋아해서 시작된 '영화 글 쓰기'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과 글쓰기를 좋아해 온 나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처음엔 그랬다.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느낀 건 그 일을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좋아하는 건 잘해야 한다는 믿음에 더불어 점점 '보고 싶다'는 '봐야 한다'가 되어 갔다. 내가 하고 싶다고 믿는 일도 함께 미묘하게 초점이 변했다. 남들은 이렇게 저렇게, 어려운 글을 쓰네. 나도 그렇게 되어야지. 이즈음 나는 어떤 쳇바퀴를 달리고 있었다. 하고 싶다,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가...... 의 고전적인 쳇바퀴.












그러던 2024년, 전주국제영화제에 갔던 여름의 일이다. 영화를 몇 편 보고 난 늦은 밤 호텔 로비에 덜렁 앉아 허공에 오래 눈을 두었다. 언제까지 나는 관객이지? 나는 뭐가 되고 싶어서 이러고 있지. 이건 취미인가, 연습인가, 경험인가...... 사실은 나는 테이블에 소수가 둘러앉아 분석하고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일을, 영화광이 아닌 친구에게는 설명할 수도 없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 또 나는 영화가 좋다면서 왜 영화는 찍지 않지? 그날 이후로 영화제에 들른 날 밤엔 눈물이 났다. 좋아하는 일을 원없이 즐겼는데 밤이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무 일 없던 듯 떠나야 하는 관객처럼 느껴져서 침울했다. 점점 영화관에 가는 일이 줄었다. 집에서는 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영화들이나 가끔 보았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들.














영화 사랑을 가장 자신하던 시기 수줍게 '영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밝히던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지금껏 내가 보아 왔던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떤 영화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린 것 같은 영화, 동시대의 관객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영화, 빛과 어둠으로 비밀을 그리는 영화들에 대해. 그리고 나는 좀 철없게도 그 영화들을 보러 온 사람들의 세계에 속하고 싶었다. 소주에 냉채족발을 먹다가도 영화 얘기가 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의 그 즐거움에 나도 끼어들어 웃고 싶었다.


기웃대던 날들을 거쳐 영화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 그대로 있다. 못박혀서 할 수 있는 점이 좋다고 주야장천 볼 때는 언제고 이젠 영화를 보고 나서 해야 할 것 같은 숙제가 잔뜩이라 영화 보는 일도 슬슬 피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나는 다시 영화를 즐겁게 보고 싶어서 화해를 시도할까 한다. 머리 굴리는 분석 없이 내 감상에만 집중하며 휩쓸리고, 겹쳐 떠오르는 내 삶의 장면 역시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기로. 그 복기가 좀 창피하더라도 처음 좋아하던 그때의 내 자세로 돌아가는 일이 괴롭지는 않을 것 같다. 좋아하는 친구와의 화해란 언제나 조금 쑥쓰럽더라도 결국 기쁜 일이니까. 그 친구가 영화이든, 영화를 아주 좋아하던 나이든 간에 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