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에는 영화를 좋아한 게 아니라
영화관이 영화 없이도 설렘을 준다는 사실은 이상하고 신기하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텅 빈 스크린을 마주하며 자세를 고치다 보면 금세 광고나 위험시 대피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불이 꺼지고 나면 알거나 모르는 회사의 로고들이 이어진다. 아까까지만 해도 허공이었던 스크린에 타이틀이 등장하면,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도 곧장 두근거리는 박동을 느끼곤 한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영화관은, 부산 아니면 창원 근처의 한 롯데시네마이다. 당시의 나는 아마 초등 저학년 정도였기 때문에 온가족이 함께 봤던 영화의 제목이 <꿀벌 대소동>인 것 외에 다른 정보는 흐릿하다. 다만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달달한 팝콘 냄새로 들뜬 공간에서 부모님 곁에 꼭 붙어 무엇인가를 기다리던 기억은 생생하다.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먹었던 구슬 아이스크림도. 의식하지 못하는 지금까지도 세포처럼 둥글둥글 내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을 평범하고 귀여운 첫 경험이다.
영화나 뮤지컬, 연극 등을 보는 어린이들은 다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교복을 입기 전까지 본 것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보는 시간이 적어 가족과 서먹했던 아빠는 나를 영화관에 데리고 다녔는데, 그게 아빠의 애정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지금도 영화에 대한 것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3D로 보면 다시 다를 거’라는 내 우김에 우리는 드문드문 착석한 커플들 사이에서 어색한 3D 안경을 쓰고 2D로 이미 보았던 <아바타>를 보다 나란히 잠들었다. 심야영화란 역시 너무 바쁜 직장인과 초등학생에게는 고난이도였던 것이다.
아빠와의 영화관행(行)이 멀었던 마음의 거리를 당기는 일이었다면, 엄마와 해운대 스펀지에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를 본 날은 바람 잘 날 없도록 밀착된 모녀 사이의 거리를 재정비해 준 시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나보다도 엄마가 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그저 웃었던 것 같다. 누가 착하고 나쁘고 재미있었고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냥 그때의 나는 아빠와 나란히 영화관에서 잠드는 일이나 엄마가 잘 아는 핫플(?)에서 엄마를 따라다니는 일에 신이 났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보다도 영화관을 먼저 배우고, 좋아한 셈이다. 그 방식은 영화의 이해나 감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 나를 길들인 것은 집에서 만들지 않은 간식의 낯선 달콤함과 돌아가는 길 내내 티켓을 쥐고 있던 손의 조심스러움, 그런 감각들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영화관 의자에 파묻힌 순간 이 감각들은 마법처럼 소환된다. 그래서 스크린이 아직 캄캄하게 어두워도 마음이 먼저 부풀어오르나 보다. 마침내 빛이 일렁이기 시작해 숨을 죽일 때는 꼭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의 이륙 순간 같기도 하다. 영화가 좋아도 좋지만, 혹 잠이 들어 버려도 사실은 더 좋다. 영화를 보다 깜빡 잠이 들면 그건 피곤을 무릅쓸 만큼의 애정이 있는 거라고 오래전에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