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영화탐험가들

별점에서 이어진 기록의 풍경

by Aby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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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타워에 서로의 이름을 적어 자물쇠를 거는 연인들의 행동을 김영하 작가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붙잡아 두려는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해석했다. 내가 영화를 보고 기록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매커니즘에 의해서였다. 내 안에서 생생히 일어난 일인데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실제 세계에 연결하고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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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중 최초는 ‘별점’이었다. 클릭 한 번에 내 머리 안에만 있던 감상은 샛노란 별들로 시각화된다. 그저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을 넘어 일종의 데이터로도 기능했다. 전혀 무관한 영화들이 나만의 별점에 따라 카테고리라이징되기 때문이다. 점점 별점이라는 도구의 단순함을 실감할 때쯤 나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때 내 감상은 이미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여기기도 했으나 신기하게도 점점 나는 그 반대의 과정을 인정하고 즐기게 되었다. 어휘를 고르고 문장을 배치하며 실제로 내 감상과 해석이 더욱 세밀해지는 기분이 재미있었다. 표현에 대한 고민은 내가 표현하려던 것은 무엇이었나 더 깊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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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별점이나 문장들이 나의 생각을 짚어 주는 좌표였다면, 세상에는 더 많은 색과 재질의 좌표들이 더 많았다. 그 가지각색만큼이나 그들과 나의 좌표 사이에 놓인 시공간도 사소하게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한참 먼 외국, 몇 년 전의 이 사람과 어제의 나는 같은 영화를 보고 서로 다른 곳에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 유튜브 댓글이나 레딧 리뷰를 통해 나는 잠시 그의 좌표에 들러 보는 것이다. 내 리뷰에도 드물지만 가끔 여행자가 찾아왔다. 그들은 내 글 속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거나, 의견을 묻거나, 혹은 나도 좋아하는 영화라는 짧은 공감을 방명록처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21세기에 영화를 탐험하는 여행자로서 서로의 지도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은 하나같이 짧은 순간을 매개로 한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인 스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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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기가 나에게만 깊어지는 몰두의 경험이 아니라, 타인과 외부 세계로 확장되는 탐험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절반은 기록 덕이다. 온라인의 해적판 영화와 오프라인 시네마테크를 경유하며 모여드는 탐험가들이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체험을 하고 감상을 나누기란 너무 어렵다. 많은 (과거의) 시네필들이 이런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물론 차를 들며 삼삼오오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도 즐겁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서로의 탐험을 공유하는 21세기의 영화 탐험가들의 조우도 꽤 낭만적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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