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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코로나를 정리했는가

상하이 폐쇄와 두달의 격리, 그 중심에서 - "나의 봉쇄일지"

by 김은규

입시 결과를 기다리느라 칩거하고 있던 나날이었다. 잠시 친구들과의 약속을 향해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밖에 나갈 때 마스크 쓰고 가, 중국에서 이상한 독감 유행한대." 대뜸 흘겨들을 정도였던 그 '이상한 독감'이 코로나였을 줄은 그땐 몰랐다. 코로나는 그 뒤로 수 일만에 언론을 장악해 버린다. 대학에 겨우 입학한 이 처량한 20학번의 속도 모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보이는 모든 것에 변화를 가져왔다. 강의실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스크 매물이 있다는 약국에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탔다. 한창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헬스장을 이용하지 말란다. 실로 당황스러웠다. 전염병이라는 단어가 일상 앞으로 다가왔던 건 아무래도 처음이었으니까.


지금부터 소개하는 이야기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더 길고 낯설었을 타국에서 겪은 이야기

"나의 봉쇄일지"를 소개한다.



나의 봉쇄일지 - 농호 상하이 지음


22년 4월 1일, 상하이는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조기 대응으로 쓰러뜨렸을 코로나가 오미크론으로 다시 되살아났다. 확진자의 수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고, 당국은 결국 '봉쇄'라는 카드를 꺼낸다. 인구 2,500만의 초 메가도시를 멈추겠다는 큰 수를 던졌다. 일파만파로 퍼지는 것보다 5일간의 동결이 더욱 싸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고 격리는 기한 없이 늘어만 갔다.



그냥 '오늘만 살자'로 종목 바꾸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몰두한다


불투명한 미래에서 오늘 하루로 시선을 돌린다. 미정,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그 자체로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참 크다. 두려운 것에는 늘 생각이 쏠리고 마음도 가게 되는 법이니. 그것에서 눈을 돌려 지금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시할 수 있는 큰 용기를 가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의 시선은 일상으로 향했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대청소를 하고, 어떻게 하면 매 끼니를 야무지게 해 먹을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한다.


비록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그건 일상이었다. 봉쇄된 아파트 속 '이웃'이라는 관계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파트 내의 톡방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서로가 필요한 물건들을 주고받는 새로운 관계망이 만들어졌다. 그들의 손길은 이방인이었던 작가에게도 향했다. 커피를 간절히 원했던 그에게 봉지 가득 담아 엘리베이터로 올려다 주었다. 타인과의 관계와 연합이 주는 위로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작가는 다시금 느꼈다고 한다. 그 뒤로 그들은 만두와 소고기를 비롯한 음식부터, 다양한 생필품과 배달음식까지 같이 먹게 되는 범 세대적(?) 단합을 일구어냈다. 위기는 늘 내가 아닌 '우리'가 돌파해 냈고, 내가 아닌 '너'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태껏 한 번도 겪지 못한 생활양상이지만 그 속에서도 마음 한켠 따뜻해질 수 있는 일상이 존재했음을 전한다. 그곳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무장한 채, 그들 또한 이 팬데믹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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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늘 해상도를 높인다


예기치 못한 상황은 늘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내일은 이럴 거야~'라고 상상했던 우리의 예측과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리기에, 대체로 그것들은 '위기'로 인식된다. 그 과정을 살아내는 것은 마치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울창한 숲길을 헤쳐나가는 것과 같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꼴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기에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정성스레 내린 커피를 들고 나와 공원을 거닐거나, 어느 양식집에서 지인과의 소소한 식사를 즐기는 일. 사람과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구어내는 일상이, 또 다른 이의 일상과 만나 채워지는 삶의 조각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보급 야채로 향긋한 줄기 무침을 해 먹어보며, 그것이 사실은 이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채소였다는 사실, 식재료 확보를 위해 익힌 파 키우는 방법, 평소 눈 한번 안 마주치던 남을 이웃으로 맞이하면서 얻은 타인에 대한 정보. 이 모든 것들은 그가 직접 겪은 그만의 경험이며, 여태껏 모르고 지나갔던 삶의 사각지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값진 경험일 테다.


예기치 못하는 상황은 늘 나에게도 불안이었지만, 그렇기에 난 다른 길로도 가볼 수 있었다. 예쁜 사진 건지러 가는 바다가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귀순자들의 유일한 생명줄이라는 것도, 다 낚싯배처럼 보이던 배의 종류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것도, 해안부대에서 생활하는 예기치 못하는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음주와 게임 등 삶을 혼탁하게 하는 것들과 잠시 멀어지고 책을 들어 시야를 넓혔다. 멈춤과 위기는 늘 우리를 돌아가게 만드는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뇌리에 남는다. 잘 포장된 8차선 고속도로가 아닌, 해안선을 빙 둘러가는 비포장도로가 기억이 나듯 말이다.




해소할 수 없다면, 남겨 두거라


작가가 이 책의 머리말을 쓸 때에는 엔데믹에 접어들었던 작년 연초였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하루하루 속에서 버텨냈던 이들이, 슬프고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꾹꾹 담아 책을 냈다고 한다. 맞닥뜨린 삶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도 강한 심지로 남을 만큼의 행복하고 훈훈했던 기억들이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전했다.


20년부터 23년까지, 코로나는 꼬박 4년을 따라다녔다. 그 즐겁다는 대학교 1학년을 집에서 보내게 된 안타까운 '미개봉 중고' 딱지가 붙었다. 고된 수험생활이 끝났어도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듣고 있는 강의만 바뀌었을 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재수도 없지, 22년부터 전면 비대면에 돌입했고, 그렇게 나는 강의실에서 수업 한 번도 안 들어본 입학 4년 차가 되어있었다. 나에게 들려오는 연민 섞인 말들로 어느새 나의 시간을 규정하고 있었다,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로.


대외활동 없음, 아는 동기 없음, 즐기지도 못하고 내다 버린 시간


이 책이 나에게 다시 그 시간과 독대하게끔 만들어주었다. 사그라드는 기억을 헤집기 위해 휴대폰 사진첩을 쭉 내려보며, 찍어두었던 사진이 많았음을 느낀다. 그 순간들이 기억으로 남길 바랬기에 남겨두었던 것이었겠지. 나 또한 음식을 해 먹었던 사진이 참 많았다. 선물로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받았는데, 난생처음 구워보는 두께라 미디엄 웰던이 되었던 게 제일 먼저 보인다. 격리 중인 엄마 방에 삼계탕을 끓여 넣어줬던 사진도 보였다. 상황이 좀 나아지자 사람들도 종종 만나고, 4명 이하로 짧게 전주와 제주도로 국내여행도 다녀왔었다. 숙소 앞마당에서 바비큐 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나를, 제주도 앞바다에서 한껏 사진을 찍어주던 우리를 기억해 냈다. 돌이켜보니 즐거웠던 순간은 도처에 늘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해 할 수 있던 나날들이었다. 타인이, 세상이 정해놓은 많은 순리들과 일련의 일반적인 경험들이 꼭 내 삶을 채울 필요가 없다는 것.


아직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저마다의 시간들이 있다. 파편이 되어 머리를 맴도는 시간과 기억들. 그럴 땐 남겨두었으면 한다. 마주 할 수 있을 만큼의 인고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신만의 일지를 적어보길 소원한다. 그때에 이 책이 참고서로 다가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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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독립출판물 온라인 서점 인디펍으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 받았습니다.”

https://indiepub.kr/product/나의-봉쇄일지/5436/category/72/displ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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