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할 얘기냐

그게 할 얘기냐


영화 한 편이 천만 관객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한 흥행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한 사회의 문화 현상이 된다.

그 영화는 더 이상 감독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수많은 관객이 함께 만든 사건이 된다.


최근 장항준 감독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뱉은 말을 어떻게 다 지키고 삽니까.”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웃자고 한 얘기였고, 대신 시내에서 시민들을 위해 커피차 이벤트를 하겠다.”


많은 매체는 이 장면을 두고

“웃음을 자아냈다”,

“유쾌한 농담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는 다른 문장이 먼저 떠올랐다.


그게 할 얘기냐.


이 질문은 감독 개인을 비난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천만 관객을 앞둔 감독이라면 그 순간 그의 말은 이미 개인의 농담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듣는 공적인 언어가 된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재치보다 태도를 기대한다.


천만 영화는 감독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관객이 만들고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만든 결과다.

그래서 그 순간의 말에는 자연히 무게가 실린다.


감독은 앞서 흥행이 이루어지면 세 가지 공약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 공약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공약이

흥행 이벤트였는지

농담이었는지

진짜 약속이었는지

그 경계가 흐려졌다는 점이다.


물론 세상 사람이 뱉은 말을 모두 지키고 살 수는 없다.

누구나 그런 한계를 안다.


그러나 그 말을 스스로 입 밖에 낸 사람이라면

그 말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결국 그 사람의 태도를 보여 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했지만,

관객이 이렇게 사랑해 주셨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그 마음에 답하겠습니다.”


이 말은 공약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말의 책임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태도는 담겨 있다.


이번 일에서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을 전하는 매체의 태도다.


많은 기사들은 그 장면을

“재치 있는 농담”,

“유쾌한 위트”처럼 전했다.


그러나 매체의 역할은 농담을 멋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말을 웃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다.


나는 그 후자에 가까웠다.


그래서 내 마음에는 이 한 문장이 계속 맴돈다.


그게 할 얘기냐.


이 질문은 장 감독 한 사람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질문이다.


성공한 사람의 말은 어디까지 가벼워도 되는가.

약속은 언제 농담이 되는가.

그리고 그 농담을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멋으로 소비하는가.


천만 영화는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천만 이후에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그 성공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다.


그래서 그 인터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게 정말 그 자리에서 할 얘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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