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왔는가
흔들리는 기반의 시대— 제1편: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왔는가
우리는 이미 맡기기 시작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좌표는 맞다고 여긴다. 길은 안내되고, 방향은 제시되며, 우리는 그 위를 따라 움직인다. 반복된 정확과 익숙함이 쌓이며, 과정은 멀어지고 결과만 남았다. 이 상태에서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된다.
이 전제가 형성되는 과정은 분명하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항법시스템)는 1990년대 민간에 개방된 이후, 스마트폰과 결합하며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길을 찾고, 시간을 맞추고, 위치를 공유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신호 위에 얹혔다. 처음에는 확인이 따랐다. 맞는지 살폈고, 다른 방법과 비교했다. 그러나 반복된 정확이 쌓이면서 확인은 줄어들었다.
이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길을 외우던 습관이 사라지고, 지도를 펼치던 손이 줄어들었으며, 방향을 묻던 일이 사라졌다. 대신 우리는 화면을 본다. 제시된 경로를 따른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믿음의 성격이 바뀐다.
경험을 통해 확인하던 믿음에서, 결과를 전제로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옮겨간다. 과정은 보이지 않고, 결과만이 기준이 된다. 이때 믿음은 편의를 낳고, 편의는 질문을 줄인다.
질문이 줄어든 자리에는 맡김이 들어선다.
우리는 판단의 일부를 기술에 넘기고, 선택의 일부를 시스템에 맡긴다. 그 위에서 일상은 더 빠르고 편리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보지 않게 된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거쳐 나온 결과인지, 그 사이를 묻지 않게 된다.
이 흐름은 자연스럽다.
정확한 것을 믿는 것은 당연하고, 편리한 것을 따르는 것은 합리적이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신호를 보지 않는다. 결과를 믿는다.
이 단순한 전제가 지금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전제가 흔들리는 순간 삶의 방식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질문은 분명해진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기술인가, 결과인가, 아니면 그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인가. 그리고 그 믿음은 어디까지 확인된 것인가.
우리는 이미 맡기기 시작했다. 이제 그 맡김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 다시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