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기록
거창한 명분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기자가 되고 싶었다. 권력에 투쟁하고, 천민자본주의에 저항하며, 내가 쓴 기사 한 편이 부조리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꿈을 꿨다.
대학시절 자치언론 편집위원이었다. 여러 사회 이슈를 찾아다니며 언론인 흉내를 내봤다. 한 번은 서울시 홈리스 실태를 밝히는 '반빈곤 연대활동'을 취재했다. 노량진 시위현장에서 재난당사자를 인터뷰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입을 닫았다. 눈앞에 문제는 너무 큰데,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었다.
처음으로 내 꿈을 의심했다. 어떤 기사를 쓰더라도 이 막막한 세상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느낀 무력감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를 가져왔다. 그렇게 나는 잠시 기자라는 꿈을 접었다.
우연히
학교에서 '르포르타주 쓰기' 교양수업을 들었다. 교수님은 시험을 보는 대신 기사 한편을 쓰게 하셨다. 주위 누군가를 관찰하여 타인에 대한 르포를 작성하는 것이 주어진 유일한 과제였다.
나는 성북구에 위치한 작은 교회를 다닌다. 그 교회는 건물이 없어 '리커버리센터'를 빌려 사용한다. 리커버리센터는 고립은둔청년을 돕기 위한 사단법인이다. 교회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만난 고립은둔청년의 삶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 중 한 친구를 만나 르포 기사를 썼다.
그 친구도 고립은둔청년이었다. 한 때 상처를 받아 세상을 등졌지만, 센터에서 상처를 회복하고 이제는 다른 누군가를 돕는 코치로 일한다. 자립의 진정한 목표는 홀로 서기가 아니라, 나를 향하던 시선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는 센터를 통해 완연한 치유를 이뤘다.
이 회복의 서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 자격으로 기사를 올렸다.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런 것보다 인터뷰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더 좋았다. 방황하던 내 글쓰기가 오랜만에 길을 찾았다.
멀리 바라봐야 한 걸음이라도 더 간다던 믿음
그러나 먼 길을 가도 내 앞에 한 사람을 챙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세상을 180도 바꾸는 것만큼이나, 단 한명의 삶도 중요하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기자의 꿈을 꾼다.
P.S 자소서 '당신은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요?'에 대한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