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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Oct 07. 2023

좋은 시간, 나쁜 여자(5)

5. 거리의 소녀

“현경아, 어서 도망가. 네 아빠 칼 들고 있다.”

달동네 판잣집은 방음이고 뭐고 없었다. 옆집에서 밥 먹는 소리도 들렸다. 현경은 엄마의 울부짖음에 아빠의 칼이 두려운 게 아니라 동네 친구들이 엄마가 외치는 말을 듣는 게 더 무서웠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엄마의 말에 현경은 본능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이년 죽여버린다. 거기 서.” 늘 그랬듯이 술 취한 아빠는 현경을 따라잡지 못했다. 현경은 집이 싫었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열일곱의 나이로 살아간다는 게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다. 왜 자신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육교 위에서 아래로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 현경의 집은 아주 화목했다. 돈 잘 버는 아빠, 예쁜 엄마에 귀여운 딸.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예쁜 엄마, 잘생긴 아빠였다. 정말이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형편도 넉넉하고 그늘 한 점 없는 그런 현경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코로나 19라는 전염병 때문이었다. 돈가스 가맹점 70개를 자랑하던 아빠의 사업은 정부의 거리 두기 정책으로 인해 폐업의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어떻게든 사업을 유지하려고 여기저기 끌어쓴 돈으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술과 세상 한탄만 하는 패배자의 삶을 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란한 가정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가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갔지만, 빚 독촉으로 인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도망 다니는 생활이 이어졌다. 겨우 정착한 곳이 달동네 판자촌이었다. 현경은 중학생이 되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현경이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며 말도 안 되는 추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알코올중독으로 거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대화가 되지 않았다. 현경은 친구 집에서 한 달을 숨어 지냈다. 옷가지를 가지러 집으로 간 현경은 집 밖에서 집 안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집은 조용했다. 아마도 아빠는 술에 절어 잠들었거나 술을 사러 나갔을 거다. 대문을 살며시 밀자 끼익 소리가 났다. 현경은 고양이 걸음으로 사뿐사뿐 집안으로 걸어갔다. 너무나 조용했다. 아빠의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쪽방 두 개짜리 판잣집이었는데 자기 방으로 쓰던 방문을 열고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겼다. 다시 밖으로 나오다가 큰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순간 현경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아빠가 목을 매달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현경은 문을 여닫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멍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현경아, 왜 울어? 다 큰 계집애가 울고 자빠졌냐?”

“아줌마. 아줌마. 흑흑. 아빠가. 아빠가.”

“왜, 아빠가 또 술 처먹고 때렸니?”

현경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목이 메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꺽 꺽.

이상하게 여긴 옆집 아주머니가 현경을 안아주며 큰 방문을 열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아이고. 아이고.”

잠시 후 아주머니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과 119구급차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현경은 아버지의 시신을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저주의 대상이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게 싫었다. 하얀 천에 싸여 실려 나가는 시신을 뒤로하고 경찰이 현경에게 쪽지 두 장을 건넸다.

“여기 유서로 보이는 한 장하고 편지로 보이는 한 장이 발견됐어. 네가 읽어봐야 할 것 같구나.”

현경은 경찰이 내민 종이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한 장은 아빠의 유서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엄마의 편지였다. 구급차가 조용히 불빛만 방출하며 출발하자 경찰도 폴리스라인을 설치해둔 채 떠나려 했다. 그때 경찰관 한 명이 현경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학생. 한가지, 뭐 특별한 건 아닌데, 엄마 쪽지편지 옆에 양파 두 개가 있었어.”

“양파 두 개요?”

“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고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현경은 엄마의 편지부터 읽었다. 아빠의 유서는 보기 싫었다.      

「사랑하는 딸 현경아.

아빠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구나. 엄마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서 더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내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보다. 네가 들어오면 널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는데 그런 시간조차 주지 않는 하늘이 원망스럽다. 네가 없는 이 공간은 더는 내가 숨 쉬며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란다. 행복했던 옛날의 추억만으로는 더 버틸 힘이 없구나. 혹시 집으로 와서 이 편지를 보게 된다면 외할머니한테 가거라. 못난 엄마는 찾지 말고.」          

‘이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엄마가 아빠만 버린 게 아니라 나도 버렸어.’ 현경은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가출로 두 번 버려지는 심한 배신감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빠의 유서는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충격적인 엄마의 편지 때문에 저절로 아빠의 유서를 펼쳐서 읽었다.     

「딸, 미안하다. 내가 죽어야 네가 살 것 같구나. 버려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그런데 더 슬픈 건 잊혀진다는 거야. 좋은 아빠의 기억만 기억해다오. 미안하다. 사랑한다.」     

아빠의 유서를 읽으면서 현경은 아빠가 엄마의 편지를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엄마의 편지를 보고 자살했다면 엄마는 아빠를 이런 식으로 처리한 나쁜 여자였다. 현경은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같은 여자로 이해는 가지만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은 용납되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왜 양파 두 개를 편지 옆에 두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현경은 외할머니에게 가지 않았다. 아빠가 목을 맨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거리의 소녀가 되어버렸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상황이 두려웠지만, 거리의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는 충동적으로 밀려오는 자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현경이 혼자 밤거리를 헤맬 때 또래로 보이는 남자 둘이 접근했다. 

“야, 너 현경이지?”

“누, 누구세요?”

현경은 무서웠다. 한 아이는 머리가 길어서 학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맞네. 추현경. 나 정식이야. 백합초등학교 6학년 1반 김정식.”

현경은 두려운 눈빛으로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초등학교 6학년 단짝 정식이었다.

“아, 그래. 김정식. 옛날 얼굴 그대로 남아있네.”

정식은 현경이 자신을 알아보자 반갑다며 어깨를 툭 쳤다. 현경이 아픈 척 움츠러들자 미안하다며 웃었다.

“반가워서 너무 세게 쳤나 보다. 미안, 미안.”

“아니 괜찮아.”

“그런데 너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해? 새벽 2시야. 너 혼자니?”

정식은 현경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투로 말했다.

“어. 그게. 사실은….”

현경이 주저하자 정식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

“너, 집 나왔구나? 갈 곳은 있고?”

현경은 정식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현경아, 너 지금 이 시간에 여기가 얼마나 무서운 덴지 모르고 있구나. 갈 데 없으면 내 방에 가자. 오늘 안전하게 보호해줄게. 나 믿어. 초딩 단짝이었잖아.”

현경은 배도 고프고 갈 데가 없다는 것에 무서움도 느껴져서 정식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 고마워. 근데 나 지금 너무 배고파. 사실 돈도 다 떨어졌고.”

“그랬구나. 걱정 마. 뭐 먹고 싶어? 방에 가서 야식시켜줄게.”

정식의 옆에 있던 친구는 그저 쳐다만 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셋은 밤거리를 벗어나 정식의 원룸으로 갔다. 정식은 원룸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 세 개, 구운 달걀 3개, 김치 한 봉지, 담배 한 갑, 소주 3병을 샀다. 머리가 워낙 장발이라 신분증 검사는 하지도 않았다. 정식의 원룸에 들어서자 담배 냄새가 배 있어서 ‘헉’하며 숨이 막혔다. 정식의 친구는 재빨리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정식은 야식집 메뉴판을 보여주며 말했다.

“현경아, 먹고 싶은 거 골라봐. 이 오빠가 다 사줄게.”

“오빠는 무슨, 나 곱창전골 이거 먹고 싶어. 근데 좀 비싸네. 다른 거 시킬까?”

“아니야, 괜찮아. 이 이거 시켜줄 돈 있어. 걱정 마.”

정식은 핸드폰으로 야식집에 주문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과 소주를 꺼냈다.

“너, 술 마실 줄 아니?”

현경은 고개를 저었다.

“열일곱 살인데 한 번도 안 마셔 봤다고? 하하하 안 믿어지는데.”

“아니야, 한 번도 안 마셔 봤어. 진짜야.”

“그럼 오늘 마셔 봐. 두 남자가 널 아주 튼튼하게 지켜줄 테니까.”

현경은 어느새 정식의 말에 끌려가고 있었다. 괴로울 때 딱 한 번 술을 입에 대본 적 있었다. 아빠가 술 취해 자고 있을 때 술병을 치우다가 남아있는 잔량을 조금씩 마셨다가 퉤퉤 뱉어버렸던 기억. 그것도 마신 거면 마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조금 마셔본 적 있어. 소주.”

정식은 크게 웃으면서 소주와 종이컵을 각자 앞에 하나씩 놓았다.

“지금부터 배급할 테니까 욕심부리지 마라. 각 일병. 종이컵에 먹든 병나발을 불던 그건 각자 알아서 하고. 곱창전골 오기 전에 컵라면에 한잔 씩 먼저 때리자.”

정식 친구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현경 앞에 놓았다. 나무젓가락으로 뚜껑이 열리지 않게 고정해서. 라면이 익을 즈음 첫 잔이 들어갔다. 현경은 처음 소주 한잔을 마셨다. 쓴맛에 ‘크휴’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캬아, 현경이 너 소주 제대로 마실 줄 아는구나?”

셋은 한바탕 웃었다. 잠시 후 곱창전골이 배달왔다. 현경은 안주와 소주를 번갈아 가며 마셨다. 경계심이 풀리고 무장이 해제되었다. 자신감마저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 이 맛에 아빠가 그렇게 술을 마셨구나.”

“뭐라고?”
 “아니야. 그냥 혼자 해본 소리야.”

현경의 혀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방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식아, 너는 왜 집 나와서 사니? 너도 부모한테 버림받았니? 자기들이 좋아서 낳을 때는 언제고, 힘드니까 버려? 누가 낳아 달랬어? 달랬냐고? 씨발.”

현경의 말은 점점 거칠어졌다. 혀도 더 많이 꼬여갔다. 소주 한 병으로 부족하다며 정식의 술도 가져가서 마셨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야, 추현경. 정신 차려. 일어나 봐.”

현경은 손사래를 치며 놔두라고 말했다. 현경이 바닥에 얼굴을 갖다 대고 옆으로 누운 자세를 취하자 속에서 목으로 밀려오는 압력이 느껴졌다. 몇 번의 침으로 눌렀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웩 웩’ 현경은 자신이 뭘 먹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물론 자신은 모르고 정식이와 정식의 친구만 알게 했다.

“아, 씨발. 뭐야. 방에서 토하고 지랄이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겨를도 없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방바닥과 옷이 토사물로 범벅이 되었다. 현경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천장이 뱅뱅 돌았고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도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정식이와 친구는 현경을 옆으로 돌려 눕히고 토사물을 치웠다. 현경 옷에 묻은 토사물이 문제였다. 그걸 치우려면 옷을 벗겨야 했다. 정식은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할까? 물었다. 친구는 어차피 옷을 갈아입혀야 하니까 벗기자고 했다. 친구가 현경의 상체를 일으켜서 잡고 있었고 정식은 현경의 셔츠를 벗겼다. 토사가 팔, 가슴에 묻어있었다. 그 부위를 건드리지 않고 벗기려고 애썼다. 브래지어만 남겨두고 벗겼는데 브래지어에도 묻어있었다. 다음은 바지를 벗겼다. 엉덩이 부분이 토사를 뭉개는 바람에 잔뜩 묻어있었다. 바지를 벗기니까 팬티에도 조금 묻어있는 게 보였다. 정식은 벗긴 옷을 화장실 바닥에 놓고 샤워기로 씻어냈다. 역겨운 냄새가 올라왔지만 참았다. 문제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어떻게 하는가였다. 화장실 문을 열자 친구가 현경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뭐해? 뭐 하는 거냐고?”

정식은 화를 내며 친구에게 쏘아붙였다. 친구는 정식의 살벌한 말에 멈칫하며 말했다.

“아니, 브래지어하고 팬티에도 묻어서 이걸 어떻게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

정식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일단 수건에 물을 적셔서 닦아내자. 브래지어하고 팬티도 벗겨라.”

친구는 정식을 보며 네가 하라는 시늉을 했다.

“알았어. 넌 수건에 물을 적셔 와.”

정식은 현경의 브래지어를 벗겼다. 예쁜 봉오리가 보였다. 친구가 수건을 건네자 수건으로 가슴을 닦아냈다. 야릇하게 흥분되었다. 다음은 팬티를 벗겼다. 벗겨진 팬티는 브래지어와 함께 친구에게 던졌다. 친구는 곧장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샤워기로 씻어내렸다. 정식은 엉덩이 부근에 적신 수건을 갖다 대고 닦아냈다. 현경의 음부를 힐껏 쳐다봤다. 가슴에 이어 음부를 보니 아랫도리가 묵직해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친구가 정식에게 말했다.

“야, 우리 한번 하자. 얘는 정신도 못 차리고 있잖아. 우리가 한 것도 모를 거야.”

“안돼. 내가 지켜준다고 말했어. 얜 내 친구야. 초딩 친구.”

둘은 나체의 현경을 놓고 욕망을 억누르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정식이 담배를 물었다. 친구도 담배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담배의 힘으로 욕정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런데 담배는 욕정의 불씨를 댕기고 말았다.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이자 심장 박동수가 더 빨라지면서 흥분제 역할을 한 것이다. 정식이 먼저 말했다.

“야, 그럼 내가 먼저 할 테니까. 넌 나가 있어. 네가 할 때는 내가 나가 있을 테니까.”

친구가 알았다며 먼저 나갔다. 정식은 현경을 바로 눕히고 두 발을 살짝 올렸다. 현경은 반응이 없었다. 쌕쌕 숨소리만 날 뿐이었다. 정식은 옷을 벗고 자신의 소중이를 현경의 숲으로 밀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준비되지 않은 현경의 몸은 격렬한 저항을 하듯 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상황에 몸이 보호모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식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벌린 다음 정확하게 조준해서 밀어 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았다. 좁고 꽉 다문 입이었다. 세 번째는 다리를 더 벌려서 힘껏 밀어 넣었다. ‘아악’ 현경은 무언가로 살을 찢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자기 위에서 정식이 하는 짓을 보며 몸을 뒤틀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현경의 신경은 눈, 아랫도리, 입술 밖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다른 신체 부위는 마취라도 한 듯이 느껴지지 않았고 움직여지지 않았다. 통증과 놀라움, 두려움이 눈물을 만들어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현경은 고통의 시간에 문득 양파 두 개가 떠올랐다. 엄마가 남긴 양파 두 개. 


정식은 현경을 안았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경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정식이 옷을 입고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정식의 친구가 들어왔다. 현경은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정식의 친구는 바지만 내리고 현경 위로 올라갔다. 현경의 목덜미를 빨기 시작했다. 한 손은 어느새 아랫도리를 휘젓고 있었다. 현경은 두려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묵직한 물건이 현경 속으로 들어왔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초등학교 친구모드로 무장을 해제한 대가였다. 잠시 후 정식의 친구는 일어서서 현경의 나체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현경은 눈을 감았다. 모든 걸 포기하는 심정이 이런 걸까? 그 사이 정식이 들어왔다.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를 보며 욕을 했다. 

“이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정식의 친구는 정식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이새끼야 우리도 살아야 할 거 아냐? 얘가 강간으로 우리 신고해 봐. 어쩔 건데? 사진이라도 찍어놔야 신고 못 할 거 아냐?”

정식은 친구의 ‘강간’이라는 말에 알았다며 수긍했다. 울고 있는 현경에게 다가앉으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현경아, 미안해. 이러려고 너 데려온 건 아니야. 믿어 줘. 네가 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겨서 씻어줬는데, 그만 이렇게 되었어. 미안해.”

현경은 정식의 말에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잠은 들지 않았다. 세상에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그저 서러울 뿐이었다.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쁜 여자로 X표 낙인을 찍었다. 아빠 얼굴도 떠올랐다. 목을 매고 혀를 길쭉이 내뿜고 있던 마지막 모습. 자신도 곧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과 정식의 친구는 오토바이 배달 일을 했다.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활이었다. 셋은 매일 그렇게 일하고 술 마시고 차례로 섹스를 했다. 현경도 이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식의 친구가 한 번은 현경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고 담뱃불로 팔을 지졌다. 현경은 절대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만하라고 외쳤다. 정식도 현경이 없는 생활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오토바이 배달 일을 번갈아 가며 했다. 늘 한 명은 현경 옆에 붙어 있었다. 

어느 날 정식의 친구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둘에게 말했다.

“원조교제.”

“아 씨발 뭐래? 나보고 몸 팔라고?”

현경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 전 단계까지만 가고 우리가 구출하면서 돈을 뜯어내는 거지. 넌 유혹해서 모텔까지만 가면 돼. 남자보고 먼저 씻으라고 한 후 씻으러 들어가면 네가 문을 열어줘. 그러면 우리가 들어가서 상황을 정리한다 이거지. 남자 놈 나체 사진도 찍고 해서 한 건당 천만 원씩 받아내는 거야. 어때? 괜찮지?”

정식과 현경은 천만 원이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큰돈을 줄까?”

“돈이 없는 놈이면 최소한 100만 원에 합의 보는 거지. 원조 교제한 사실을 경찰에 알리고 핸드폰 등록 전번에 문자로 사진 전송한다고 하면 안주고는 못 배길걸?” 

셋은 원조교제 사업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인터넷에 낚시 미끼를 던지는 것부터 준비했다. 모텔도 한적한 곳으로 미리 알아두었다. 첫 번째 미끼를 문 남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안전하게’를 남발하면서 계속 장소를 옮기라고 했다. 돈도 계속 더 준다고 했다. 정식이 말했다. 

“이거 짭새 냄새가 나는데?”

“아니야, 짭새면 그냥 처음 말한 곳으로 자기가 나오려고 하겠지. 이 자식은 분명히 돈이 많고 진짜 안전하게 하고 싶은 놈일 거야. 크게 한탕 하겠는데?”

현경은 너희들이 나를 놓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식은 현경의 핸드폰에 위치 추적 앱을 깔아놓았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계속 위치를 추적하며 따라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00 편의점 앞, 다시 00역 1번 출구, 다시 00역 3번 출구, 00 호텔 1004호. 현경은 남자의 문자가 올 때마다 캡처해서 정식에게 보냈다. 최종 목적지는 00 호텔 1004호. 정식은 오토바이 속도를 높였다. 신호도 무시한 채 곡예 운전을 하며 00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현경의 핸드폰이 계속 꺼져 있었다. 위치 추적 앱으로도 마지막이 00 호텔이었다. 빨리 올라가서 현경이 문을 열면 들이닥치는 시나리오대로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현경의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뭔가 일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해서 둘은 1004호로 바로 올라갔다. 문 앞에서 잠시 내부 상황을 귀를 대고 엿들었다.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론가 통화하는 듯했다. 현경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식은 친구의 눈을 보며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알렸다. 그리고 둘은 1004호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문 열어. 개x끼야. 문 열어. 원조교제 하는 거 다 알고 왔어. 문 열어.”

“미성년자 내 여동생을 꼬드겨서 원조교제를 해? 빨리 문 열어 씹x끼야.”

잠시 후 걸쇠를 건 채 문이 조금 열렸고 젊은 남자가 아니라고 잡아뗐다. 정식의 친구가 문을 닫지 못하게 잡았고, 정식은 준비해 간 칼로 위협했다. 1004호 젊은 남자는 카운터에 이 상황을 알렸고 경찰에 신고했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정식은 원조교제 현장이라고 말하며 경찰에게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1004호 안으로 들어간 둘은 현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정식과 친구의 팔에 수갑을 채웠고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그 시각 현경은 1014호에서 헤드셋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두 팔은 침대에 묶인 채 정호의 애무에 몸을 떨고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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