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꾼 고개 이야기
나는 40이 되기까지 세번의 고개가 있었다.
첫번째는 20대의 첫 남자친구와의 이별.
겉으로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은 '무난하게 잘 살아가던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일이었다.
주변의 기대에 맞춰 공부했고, 교육대학교를 진학했고, 임용고시에 합격해 24살의 나이로 초등교사가 되었다. 다들 '참 잘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나는 그저 '그런가..?' 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었다.
20살에 사귀었던 교대 동기와는 8년간 연애를 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고, 나는 그 사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운전면허를 따며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제대 후엔 경기도 임용에 합격해 서로 가까운 곳에 발령이 났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달라져 있었다. 결국 끝은 바람이었다. 그것도 꽤 더티하게. 연인-가족-학교로 버티던 내 일상의 삼각대는 한쪽이 무너지는 순간, 휘청거렸다. 그렇게 나는 착한 딸이자, 착한 여자친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늦은 사춘기를 맞이했다.
두번째는 30대에 교사 퇴직 후 사업, 그리고 실패.
30살. 나는 과감하게 교사를 그만두었다. 그 당시 나는 자신만만했고, 나라에 화가 나 있었다.
(겨우 이 돈 주려고 내가 그 공부를 했단 말이야?)
첫 발령지에서 시골 6학급 학교를 맡아 온갖 고생을 했는데, 덕분에 교장 승진을 위한 점수는 누구보다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교사 생활을 스스로 내려놓은 순간, 묘한 쾌감이 있었다.
마치 부모님과 세상에 복수라도 한 것 같은 기분.
“좋아. 이제는 남들보다 더 빨리 성공해야지. 공부하듯, 이번엔 사업을 하면 돼.”
문제는… 나는 시험공부는 잘했지만, 인생공부는 못했다는 거다. 책은 많이 읽었지만 사람의 마음은 읽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결국… 퇴직금을 통째로 사기당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넌 잘못됐어.”
그 때의 나는, 뭐가 문제인지조차 몰랐다. 그래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세번째는 36살의 결혼, 그리고 출산. 다시 되돌아 온 교직.
사업을 하던 어느 날, 모임에서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우린 빠르게 빠져들었고… 연애 4개월 만에 첫 아이가 찾아왔다. 그런데 하필, 그 시기가 코로나였다. 요리사였던 남편은 직장을 잃고 끙끙 앓았고, 나는 임신한 몸으로 창원까지 직접 운전해 다니거나, 상견례 자리에서 열받은 친정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땐 그냥 다 괜찮았다. 돈이 없었던 우리는 결혼식도, 예물도, 혼수도 생략하고 둘이 겨우 모은 650만 원과 800만 원을 합쳐서 1,450만 원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 덕분에 신혼부부 전세임대에 당첨되어 신혼집을 얻었다. 그게 우리 시작이었다.
첫째를 낳고 얼마 안 돼 시아버지의 말기 간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은 아버님 곁을 지키기위해 직장을 그만두었고, 나는 더 열심히 뛰었다. 몇 개월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과정에서 크게 실망하는 일이 있었던 남편은 시댁과 등을 졌다. 나는 더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그런데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20명이 넘던 팀원들은 다 떠나고, 가장 친했던 언니와도 크게 싸우고 연락이 끊겼다. 남은 건 카드 빚뿐이었다.
그리고 둘째가 찾아왔다. 첫째와 고작 16개월 차이.
그제야 나는 모든 고집을 내려놓고, 교직으로 돌아갔다.
네 가족이 함께 살아가려면, 아이 하원을 챙기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존심은 많이 상했고, 마음을 추스르는 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