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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나 Oct 23. 2023

진실만이 지속 가능하다

거짓말 위에 쌓은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오늘 뒤늦게 영화 모임에 가서, 영화는 못 보고 영화 후기만 듣는 경험을 했다. 내가 제안한 영화 모임인데, 정작 내가 오후에 출장을 가야 해서 밤에 서울에 오면 모임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업무상 그것이 최선의 일정이었다)


진작부터 '가능하면 늦게라도 모임에 가야지' 마음먹었다가, 정작 출장을 마치고 서울에 가는 길엔 영화를 못 봤으니 가지 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마 지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은 계속 가고 싶었는지 몸은 저절로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다들 보고 싶기도 하고, 집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곳인데 안 가면 후회가 남을 것 같고, 영화 후기도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모임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문장들이 있어 기록해 본다.

"진실한 것만이 지속가능하다"

"진실함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비스트와 마케팅으로 지속되어 온 구조... 새빨간 거짓말 위에 세워진 문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영화를 본 이들이 기억나는 대로 말한 것을 또 내가 기억나는 대로 적었으니 세부적인 표현은 다를 수 있으나, 요는 이거였다.


<<진실함만이 지속가능하다>>


그리고 이 말이 최근에 내가 생각하던 것과 맥을 같이해서 너무 반갑고 마음에 많이 남았다.


영화는 펜데믹, 비인간 동물과 인간동물에게 퍼지는 전염병, 항생제의 문제, 동물을 죽여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물 전염병에 대한 진실을 밝힌 수의사는 내부고발자로 지목당해 압박 조사를 받았고, 자기 도살장과 농장을 공개한 농장주는 기업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저 진실을 말하고 보여준 것뿐인데도, 이 사회(에서 자신의 이권을 타자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는 자)는 이를 억압한다. 그 진실이 드러나면 거짓으로 쌓아온 명성과 이익과 권위가 무너질까 걱정하기 때문일 테지. 구조적 폭력을 가리고 정당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로비와 마케팅과 ESG경영을 해댔을 테다.


돼지고깃집 간판에 춤추며 웃는 돼지 그림이 종종 보이는데, 사실 죽여 먹히기 위해 태어나는 돼지들은 폭력과 고통 속에 갇혀 살다가 어린 나이에 살해당한다. 행복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는 삶이다. 미국의 우유나 초콜릿 광고에는 젖소들이 귀걸이도 하고 코걸이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권하지만, 실제 젖을 빼앗기는 소들은 강제임신과 출산과 애기 빼앗기기를 반복해서 당하며 젖을 빼앗기다가 더 이상 서있을 수 없이 몸이 망가지면 살해당해 고기로 팔린다. 그리고 그 돼지와 소의 사료가 되는 작물을 기르기 위해 숲을 불태운다.


돼지나 소가 웃는 광고가 거짓말이고, 이게 진실이다. 축산동물만의 문제도 아니다. 개 사료 광고에 등장하는 개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촬영장에서나 모델 사무실에서 혹독하게 혼나면서 촬영했을 확률이 높다. (모델견의 수명은 평균 개 수명보다 훨씬 짧다. 개가 등장하는 광고영상을 찍다가 알게 되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보는 눈,
진실을 말하고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드러낸 후에 감당해야 하는
억압과 폭력 속에서 생존하는 힘까지
내가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의 대화와 다른 맥락이지만 전에 용기 내어
진실을 말했던 때가 생각났다. 먼저 그 진실을 함께 말하자고 다른 이들에게 손 내밀 때 여러 번 거절당했던 기억, 그리고 진실을 말할 때 의심당하고 시험당했던 기억, 왜 미련하게 진실을 말했냐고 네가 손해 보는 일이라며 어린 취급받고 혼났던 기억, 그리고 그 진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의롭지 못 한 결론, 이어지는 거 봐 소용없다니까 식의 반응, 보복에 대한 공포...


다들 진실을 말하는 건 여러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니 손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폭력 앞에서 정의로운 행동을 하기보다는 내 안위를 위해 침묵하라고 배워왔으니 (유감스럽게도 나는 할 말은 해야 하고, 정의로운 편에 서고 싶어 하는 피곤한 스타일의 인간이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럴수록 나는 함께 진실을 말하는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아주 가끔씩 언젠가 가해자에게 보복당하는 거 아닌지 두려울 때가 있다. 진작 경찰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그 제도가 정말 유효한지?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이유 모를 계획범죄의 타깃이 된다면... 이런 상상도 해본다. (추리소설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도...)

그래도 지금이야 대체로 잊고 지내지만, 진실을 말하기로 마음먹고 말한 직후에는 저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악몽도 꾸고, 밤중에 불안감에 깨고,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난 당당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낸 그때의 나, 그리고 그때의 나를 겪어온 지금의 나를 스스로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분명 힘들고 무서웠지만, 부서지진 않았다. 진실함이란 그런 힘이 있나 보다. 오히려 내가 나를 좋아하고 긍정할 수 있는 힘의 뿌리, 그건 진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진실함을 나는 알고, 내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으니까. 진실함은 아무리 힘들어도 분명 지속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내가 부서졌던 순간은, 내 스스로에게도 주위에게도 진실하지 못했던 순간들이다.


'이건 부당한 게 아니라, 내가 감당할 몫이야, 내가 부족한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이건 부당하다'고 느꼈는데, 그런 것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부당해? 그래서 어쩔 건데? 대체할 방법이 없으면 입을 열지 말아야 해"라는 타인의 언어를 내재화해서 나 자신의 입을 막고, 나의 자존감을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 결국 우울과 불안이 극에 달해 무너지고, 다시 천천히 일어나야 했다.


더 어릴 때 일도 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 리 없어. 나만 말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 거야. 아차피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을 거야.' 이런 생각으로 오랜 시간 침묵했던 적이 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결국 그 침묵에 대해 땅을 치며 후회하면서, 진실을 밝혔다. 나를 향했던 가해가 다른 이들에게도 반복된 것을 알자, 내 안에 무언가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내가 더 일찍 말하지 못해 다른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더 이상은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 그럼에도 말한 후에 감당해야 할 모든 게 두려운 마음 속에서 진실을 말했고, 진실을 들은 이들의 반응으로 또 상처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를 몸 밖으로 꺼낸 후에 더 자유롭고 나다워졌다.


그전에는 위축과 불안을 주기적으로 느꼈는데도 계속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해자를 마주해야 했는데, 내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여준 이들 덕분에 다시는 가해자를 마주할 일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어쩌면 흔한 이야기다. 친족 간 성폭력,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를 향한 사촌의 가해, 또 다른 사촌동생의 피해.


어릴 때 우연히 읽은 한국 현대 소설에서 나 같은 주인공을 만난 순간, 나는 한국 현대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진실을 담고 있다고들 이야기하는데,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진실함은 단순히 솔직한 게 아니다.


겉과 속이 모두 연결된 상태, 내면과 외면의 일치, 생각과 행동의 일치, 나의 어떤 부분들 중 무엇이 나의 진실이고, 무엇이 나 자신을 속여온 스스로의 거짓인지,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다.


내 안에 있는 불일치와 모순을 알아차리고, 내 생각 속 서로 다른 의견들에 귀 기울이면서 스스로에게 더 진실해지는 길은 무엇인지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렇게 내 안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그 솔루션을 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게 바로 '진실함' 아닐까.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냥 내가 나인 채로 사는 것, 그게 끝이다.


내가 비건을 지향하는 것도, 두꺼운 사회적 가면을 써서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돈 좀 적게 벌어도 나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찾는 것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친구들과 계속 이런저런 작당을 하는 것도 돌이켜보면 모두 조금씩 더 진실해지고 나다워지는 과정이었다.


앞으로도 어제보다 내일 더 진실한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매일매일 더 진실해지고, 더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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