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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나 Nov 12. 2024

9. 욕망과 모순 : 평등한 연애 상상하기

남미새 페미의 섹슈얼리티 탐구 칼럼 #9


나는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데도, 헤테로 연애서사에 맞춰 ‘여자친구'처럼 행동하는 것은 역할놀이처럼 느껴진다. 드랙 아티스트가 퀸을 만들어 표현하듯, 평소에 탈코르셋을 하고 있는 나도 가끔 코르셋을 입고 ‘사회적 여성'을 재현하여 퍼포먼스를 하는 기분이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 나에게 연애는 수많은 그야말로 ‘젠더 역할극’을 하는 기분이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이 ‘여자친구' 역할을 연기하고, 전애인 역시 듬직한 ‘남자친구' 역할을 연기하면서, 각자가 알고 있던 연애 문법에 따라 만나고 고백하고 데이트하고 헤어졌다.


그렇다면, 그 역할과 문법의 제한 없이 자유롭고 성평등한 이성애 연애는 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젠더 이분법의 편견에서 벗어나 솔직하고 편안하며 서로 만족하는 연애의 모습을, 우리는 제대로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그 상상 속에서 과연 데이트 신청과 고백은 누가 먼저 하고, 또 데이트 비용은 누가 얼마큼 내며, 무거운 가방은 누가 들어야 하는지, 데이트가 끝나고 누가 누구 집에 얼마큼 데려다주는 게 이상적이고, 데이트를 나설 때 각자의 꾸밈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차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누가 앉고, 차 문은 누가 열지, 그리고 스킨십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며, 서로의 성적 욕망과 결정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사소하게는 콘돔은 누가 사두고 누가 꺼낼지 하는 내밀한 영역까지...


과연 정해진 이성애 로맨스의 문법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세상은 아직 성별에 따른 차별이 가득하고,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크고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섹스할 때 여성이 남성보다 여러모로 취약해지는 게 분명한데 말이다. 이미 차별이 있는 구조 안에서 기계적으로 ‘평등'하게 역할을 나눠 갖거나 뒤집는다고 해서 ‘평등한 연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많은 커플들이 고민하고 싸우고 질문하는 ‘데이트 비용' 문제 역시 페미니스트 여성에게도 정말 어려운 문제다. 성별과 관계없이 평등하게 함께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더치페이'를 지지해야 할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남성의 평균 임금이 여성보다 높다는 점과 이성애 연애를 할 때 여성이 부담하는 꾸밈에 대한 비용이 남성보다 높다는 점, 그리고 연애관계에서 임신과 성병에 대한 위험부담을 여성이 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여성이 지불해야 하는 추가적인 비용 등을 고려하여 ‘남성이 더 많은 데이트 비용을 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이 좀 더 페미니즘적인 걸까?


둘 다 찝찝하다면, 아예 성별에 따른 비용 구분 말고 경제력 등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두 사람 중에서 정기적 수입이 더 많은 쪽이 더 많은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 대체로 학생과 직장인 커플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이 역시 예외가 있을 수 있다. 당장의 정기 수입보다는 각자의 자산 규모와 그로 인한 안정성 등을 기준으로 추가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니면, 먼저 데이트를 신청한 사람이 더 많은 데이트 비용을 내는 것은 어떨까?

이런 방법들이 성평등한 데이트 비용 계산법처럼 보이지만, 또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의 많은 이성애 커플을 보면,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나이도 많고, 소득 수준도 높고, 또 먼저 데이트를 제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남성이 소비의 주체가 되는 이성애 데이트에서 남성이 초대한 여성이 ‘데이트'가 되어 참여하는 건, 수많은 로맨스 서사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스토리라서 언뜻 보면 로맨틱해 보인다. 그렇지만 결국 여성이 계속 대상화되고 수동적인 역할에 국한된다는 문제가 있다. ‘욕망의 주체'가 곧 ‘소비의 주체'가 되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규칙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이미 불평등이 존재하는 구조의 문제를 심화시킨다. ‘성공한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얻는다'와 같은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다.


사실 수많은 연애 문제가 그렇듯, 데이트 비용 문제도 정답은 없다. 솔직히 반반 칼더치는 데이트가 아닌 것 같아서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래도 번갈아 내는 게 마음이 편하다가도, 또 먹는 양이 내가 늘 적은데 밥값을 같이 내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고, 내가 가자고 한 건 내가 내야지 생각할 때도 있다. 이 문제 뿐이겠나. 페미니스트로 연애하면서 마주하는 갖가지 문제 앞에서, 어떤 방법이 더 평등한 걸까? 고민해도 답이 없는 문제 투성이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도 갈등하고, 상대와 갈등할 때도 있다.


페미니스트로 헤테로 연애를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모순과 갈등을 포함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열등한 위치성'을 가진 채로 ‘우리는 열등하지 않다'고 증명하고 주장하면서 평등을 이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연애 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남성에게 사랑받고 그 사랑을 때로 자랑하고 싶지만, 그 결정이 어떤 정치적 맥락을 가지는지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랑’의 구성요소 자체가 하나하나 차별과 긴밀하게 맞닿아있음을 깨닫는다.


솔직히 남자친구의 취향에 맞춰 꾸미고 나가서 외모 칭찬을 받고, 그가 소비의 주체가 되어서 만들어가는 행복한 데이트의 '구성요소'가 되어 여자친구 역할을 하는 게 재밌는 날도 있다. 여성이 불편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데이트를 가는 것이 코르셋이고 억압이라는 것을 모두 알지만, 상대가 예뻐하고 나도 재밌으니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거다. 그렇다고 매번 그렇게 불편한 데이트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가 불편함 없이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데이트는 뭘까?

다음 글에서 더 이야기해 보겠다.





‘남미새 페미’ 9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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