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봄바람

by 마음 한잔

이른 아침 운동삼아 걷기를 하는 남편이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더니 오늘 일정을 묻는다

그리고, 날씨가 참 좋은데 선운사나 다녀오자고 한다.

나는 선운사를 다녀와야 그제야 오롯이 봄을 제대로 맞는 기분이 든다.

언제부터였을까?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 오래된 것 같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이었을까? 유모차 타던 시절이었을까?


주차를 하고 식당가를 지나면 커다란 잔디밭이 나온다

초입부터 시야가 확 맑아지면서 해방감이 든다

짙은 갈색을 띠는 물줄기 따라 벚꽃길을 걸으면 선운사 입구다

오늘은 아쉽게도 활짝 핀 벚꽃을 볼 수는 없었다

곧 터질듯한 붉은 꽃봉오리들을 보니 이번 주말쯤 되면 만개해서 꽃길을 걸을 수 있을듯하다

이제 막 돋아나는 초록초록하거나 붉은빛이 돌며 말려서 피어나는 나무들의 새순이며 곳곳에 핀 봄까치꽃을 보니 벚꽃 못 본 아쉬움은 금세 없어지고 그저 좋았다.

봄까치꽃

선운사에 도착하니 이런! 동백숲은 아직 푸르르다......... 볕이 잘 드는 쪽의 한두 그루 꽃이 피기 시작하고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만세루는 커다란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보강공사 중인가 싶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곳에서 차를 마시고 이후로 한동안 저녁마다 우리 집은 티타임을 가졌었다. 다기세트가 마치 소꿉놀이 같았는지 초등학생 남매가 저녁식사가 끝나면 '엄마, 이제 차 마실 시간!' 하며 식탁에 모였던 그 시간이 갑자기 떠오르며 그립다. 이제 훌쩍 자라 버린 아이들의 모습도......

찻잔.jpg

내가 좋아하는 선운사는 이제부터다

선운사부터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이다.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어느 계절에 가도 늘 좋고, 비가 오는 날은 더 운치가 있어 좋다

도솔암까지는 늘 가지 못하고 우린 중간쯤 가다 돌아오는데 그 길을 걷다 보면 착해지는 것 같다.

내가 메고 간 가방이며, 겉옷등 소지품을 받아 들고 메고 가다 서다 감탄하고 사진 찍는 나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그저 자유롭고 편안하게 걸으라는 남편이 그 길에서는 정말 세상 누구보다 괜찮아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여러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며 일상을 감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선운사길을 걷다 보면 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빠....

그림을 그리셨던 아빠,

결혼하기 전 친정집 내 방에 걸려있던 그림이 있다.

그 그림 속 길이 선운사 길이라는 걸 봄마다 그곳을 찾던 한참 후에야 알았다.

봄이 오면 꼭 가야 하던 그곳

많은 작품을 남기시지 못하셨고, 그중에서도 제일 만족스럽지 못해서 집에 두셨던 그래서 우리에게 간신히 하나 남겨진 마지막 그 그림

여전히 그 그림은 엄마집 내 방에 걸려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전혀 알지 못했던 그 길에서 아빠를 마주했던 것이다.

다가오는 매해 봄이면 난 여전히 그 길목에서 아빠를 마주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상상하지 못한 일들로 눈물로 버티는 하루도

그저 자연 속에 함께 함이 감사했던 나의 하루도

그저 당연하지 않은 그래서 기적같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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