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엄마는 티브이의 자막을 의미 없이 소리내어 읽고 계시다가 '아부지는 식사하셨냐?'하고 물으신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쯤 되었다.
엄마는 9남매, 부모님, 할머니 이렇게 12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셨다.
그중에서 가장 체격이 작고 체력이 약하셨던 엄마는
9남매 중 아들 둘에게 향하는 특별대우의 반쯤을 누리셨을까
여튼 예외의 기준이 많이 적용되셨다고 한다.
나는 중학교 1학년쯤까지 방학 때면 늘 외갓집에서 시간을 다 보냈었다.
엄마 순위가 넷째 딱 중간인데 엄마 바로 위 형제들은 자녀가 4명 이상, 엄마부터 아래로는 2명 이하
이러니 방학 때 사촌들이 두세 집만 모여도 아이들만 12명은 되는 것이다.
방학이면 최소 3집 이상 비슷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이 모였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 초등, 중등 그리고 청년들까지 어마어마한 이 집단을
외할머니는 어떻게 감당을 하셨을까?
음식 솜씨가 너무 좋으셔서 나는 한참후에도 외할머니 음식을 많이 그리워했다.
특히 투박한 하얀 사기그릇 가득 담겼던 겨울 동치미와 고들빼기 김치,
외할머니 특허 매운 유과는 지금도 많이 그립다.
나보다 대여섯 살이 많은 사촌 언니둘이 할머니를 도와 식사를 챙겼고
산이며 들로 쏘다니며 들어온 우리에게 씻어라, 숙제해라, 이제 그만 떠들고 잠 좀자라 등등
마치 기숙사 사감처럼 엄마처럼 질서 잡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이 시간들은 두고두고 곱씹는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매년 여름과 겨울을 한 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옹기종기 누워 자고
한방 가득 3개의 교자상을 붙여 앉아 각자 구운 김을 한 장씩 들고 앉아 식사를 하던 우리는
이제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서 몇 년 만에 한 번씩 만나 조금씩 여유로워지는 풍채로 앉아 그 시절 그 밥상을 떠올리며 이야기 나누고 장성한 각자의 자녀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시절 그들은 모두 나의 가족이었다.
엄마의 알츠하이머는 진행속도가 너무 빠르다.
엄마는 자꾸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그리고 엄마의 할머니를 찾으신다.
그리고 나를 보면 애들은 어쩌고 왔냐고 물으신다.
엄마는 9남매가 함께하던 시골 외갓집에 또 우리 아이들이 서너 살인 그곳에 자꾸 가 계신다.
엄마의 기억은 그렇게 그리운 그 시절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로만 자꾸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