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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Sung Nov 18. 2022

그라목손

이 초록색 제초제는 반모금만 마셔도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오월이다 햇살은 한층 더 따뜻해지고 병원 뒷산은 이제 완연한 초록을 되찾았다. 당직실 한켠 구석진 창문을 통해, 땀 냄새, 무언가 찌든 듯한 냄새, 싸구려 로션 냄새들 사이 싱그러움이 찾아들어오는 날이다.                     

오늘 하루 또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나가야겠지. 어쩌다 내가 이 길을 택해 이 고생을 하는 걸까? 사람은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잘 맡지 못한다더니 싱그러운 봄 냄새가 지나간 뒤 남은 내 체취는 스스로를 역겹게 만든다. 내 자라 이 나라 최고 지성이 될 줄 알았더니만, 참 뭔 극한 상황에 내몰린 병사인 듯하게 되어버렸다.  삶과 죽음의 극단에 서서 허공을 향해 아무리 칼날을 휘둘러봐도 어디선지 날아오는 화살, 폭약 그리고 파편들이 여지없이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버리고 말 때의 무력감, 감정조차 메말라가 이젠 더 이상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은 자신을 발견했을 때 더해지는 자괴감. 뭐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그런 감정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또 싸워 나가야 하는 병사.                     


회진 준비, 병실엔 오육십 명의 환자들이 있고, 중환자실에 십여 명 새벽까지 보다 한두 시간 자고 나서 다시 보면 그사이 많이 나빠져있다. 의사의 잠과 환자의 목숨 참 그게 맞바뀌어져야 하는 이런 시스템, 씨발 대체 누가 이런 뭣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놓았냐? 사람에게 잠을 빼앗으면 폭력성이 증가한다. 감정의 이유 없는 분출. 내가 욕을 다하게 되다니.                     


삐삐가 울린다. 아침 회진 준비시간 간호사들이 어차피 의사가 모든 병동, 중환자실을 바쁘게 순회한다는 걸 알기에 지금 울리는 삐삐는 응급 콜이다. 이러면 회진 준비가 망가지는데, 1119 역시 응급실이다.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내려간다고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고 뛴다.  이 넘의 병원 응급 상황 때 쓰는 전용 엘리베이터 좀 있음 얼마나 좋을까? 뛰다가 숨이 차서 환자를 맞아야 하는...   이젠 달리기도 좀 늘었다. 어지럽긴 마찬가지. 지독한 수면 부족 상태에서 잠시 동안의 달리기는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열서너 ?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남자아이, 응급실 중환자 처치대에  반쯤 기대어있다.   주변이 녹색이다. ‘보호자!!!’  같이 왔단다.  30 중후반의 여인. 하얀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예전 봤던 텔레비전의 탤런트를 직접 보면 저렇겠지 싶다. 나중에 다른 보호자를 통해 듣기론 엄마가 20 초반에 만나 사랑을 했던 아이 아빤 어느  문득 자긴 가정이 있은 사람이란 말을 남기고 돌아갔단다. 얼마  절망에 빠져 있을  아이를 가졌단  알게 되고, 여태 소중하게 키워온 아들이란다. 혼자 일하며 아빠 없는 아이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워 엄하게 키워온 아이, 어제도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몹시 혼냈더니, 오늘 아침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제초제 병을 들고서 눈앞에서 벌컥 마셨단다. ‘ 엄마가 싫어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하고선아이 엄마의  두려움에 질린 얼굴은 핏기조차 없어 보인다.  

“어머니, 살리기 어렵습니다. 일주일 이내 죽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일주일 동안을, 매일매일 하루종일 밤낮으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중환자실 침대 머리맡에서 어머니는 호흡곤란이 점점 심해지는 아이를 안고 울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만 되뇌면서.                     


오 주여!  저 분과 제가  부디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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