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 없는 나에게 주어지는 꾸준한 위로
나는 태생적으로 끈기 없는 사람이다.
(태생적으로 라고 하면 엄마 아빠가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중도 포기로 점철된 30대의 도전기
직장 4년 차인 지금, 4년 동안 중도포기한 시험이 5가지가 넘는다. 게 중에는 전문직 시험도 있었고, 직무와 연관된 금융 자격증들, 공기업 필기시험도 있었다. 길게는 3개월 넘게도 공부를 했었지만 평균적으로는 길어야 열흘이었던 나의 도전기. 끝맺지 못한 도전들은 왠지 사라지지 않고 공중에 부유하면서 '넌 끈기 없는 사람이야', '또 시도하려고? 어차피 중도포기 할 텐데?'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재수를 했다. 재수 당시에 학과를 고민할 때 어른들은 '과는 중요하지 않다', '전공 맞춰 취업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라고 내게 말했다. 그 말만 듣고 덜컥 대학에 왔는데, 생각보다 전공의 존재감은 컸다. 내가 원하는 것, 관심 있는 부전공 등을 하기에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공부를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다. 과외 활동을 할만한 시간과 에너지 따위는 없었다.
결국 졸업 후에 남은 것은 내 본전공의 졸업장과 전공 유관 직무로 했던 인턴 경험 세 번이었다. 그렇게 취업도 자연스럽게 전공 살려서 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이기에 지금도 회사에서 나는 에이스 팀원은 아니다. 내 본업에 뛰어나지 않지만 커리어를 계속 키어나가기 위해서 시도하는 시험들은 번번이 작심삼일이고. 이런 가운데 직장인이 된 이래로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더 바닥을 찍었던 것 같다.
유일하게 나를 증명해 준 15년의 끈기
하지만 내 30년 인생에 나를 증명해 주는 게 한 가지 있기는 하다. 바로 글이다. 뭐든 쉽게 흥미를 잃고 포기하는 성향이지만, 글쓰기만큼은 내 생각이 생기고 글을 쓸 줄 알게 되었던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써왔다.
외로운 날도, 고된 날도, 억울한 날도 펜과 다이어리는 늘 내 곁에 있었고 생각이 많을 때는 A4용지 한 바닥을 써 내려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교실에서 지나가던 친구가 종이 빼곡히 적힌 글씨들을 보고 소설을 쓰냐고 묻기도 했다.
운동도 공부도 작심삼일이지만 글은 적어도 15년 이상은 꾸준히 쓰고 있는 셈이다. 그 덕인지 대학도 논술 전형으로 합격했다.
대학생 때부터는 블로그에 친구 공개로 일기를 자주 썼는데, 독자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 아님에도 친구들이 재밌게 읽고 너무 공감했다고 말해줄 때마다 너무 고맙고 뿌듯했다. 나도 어떤 재주로 누군가에게 위로와 재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블로그 외의 플랫폼에도 글을 쓰고 싶어 20대 초반부터 브런치 작가에도 9번을 도전했는데 8번을 낙방했다. 그리고 아홉 번째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는 회사에 있을 때였는데,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혼자 방방 뛰며 조용한 쾌재를 불렀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직하기 위해 면접을 8군데 회사에 봤는데 한 군데도 빠짐없이 다 떨어졌다. 그렇게 탈락으로 점철되었던 한 해의 끝에 브런치 작가 합격이라는 크나큰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위로와 온기를 전하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며
글은 나를 조용히 관망하게 한다. 마치 내가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의 인물인 것처럼 제삼자로서 나라는 인물을 관찰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글을 쓰다 보면 근래 나에게 있었던 일, 거기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조용히 정리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학교 선배를 만났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내게, 선배는 뜻밖의 응원을 건넸다. 결혼을 하더라도 나의 작업 공간을 꼭 마련해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무도 몰라준다 생각했던 내 글들이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감격 그 자체였다.
결혼 준비, 직장 생활, 그리고 무수한 실패 속에서 건져 올린 보통의 이야기들을 이 공간에 부지런히 담아내려 합니다. 저의 글이 누군가의 고된 하루에 따뜻한 위로와 온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2025년 12월의 중턱에서, 이제 작가로서의 첫 페이지를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