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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쾌한씨 Mar 20. 2024

낭만은 짧고 추억은 길다

두 번째 이야기

ⓒ tragrpx, 출처 Pixabay


낭만은 짧고 추억은 길다 (brunch.co.kr)


며칠 뒤에 홍당무 같은 얼굴로 어색한 브이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함께 영어 메일이 도착했다.

무슨 근자감으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을까.

마음 같아서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1’에서 주인공이 줄에 매달려 디스크칩을 훔치는 장면처럼 그가 묵고 있는 숙소로 몰래 찾아가 카메라에서 사진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메일을 읽어 내려갔다.

안부를 물은 다음 명동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선물을 사고 싶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로맨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혼자 낭만에 취해 있었다.

답메일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 보냈다.


문자로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일주일 후에 우리는 명동에서 만났다.

그는 줄무늬 남방에 카멜색 코트를 입고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어색한 인사를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밥을 먹으러 갔다.

언어의 장벽은 한라산만큼 높았다.

단문은 눈치껏 알아들었는데 장문의 대화가 어려워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주고받았다.

영어 문자를 번역기를 돌린 다음에 읽고 쓰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해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실감했다.

밥을 먹은 다음 식당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현란한 바디랭귀지와 핸드폰만 보는 우리가 신기했는지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아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영화는 무슨 영화. 언어가 통해야 영화를 찍지…‘


설렘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나를 믿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그에게 가이드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가게와 노점을 구경하며 선물을 산 다음에 명동역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그에게 감사의 인사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싶다는 문자가 왔다.

문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그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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