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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 요즘 핫한 넷플릭스 시리즈

"안녕,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의 친구, 천상연!" 은중의 대사 中...

by 이은희 시인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


✒️그때 은중(김고은 배우)의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모든 거짓말은 선의의 것일지라도 발각되는 순간 연인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공과대 우편함 속에서 자신의 연인인 상학선배(김건우 배우)가 상연(박지현 배우)에게 보낸 편지를 우연히 보게 된 그날 이후로 공과대 우편함을 확인하기 위해 매일 학교까지 달리기를 했을 은중, 그 비참하면서도 참을 수 없었을 의심의 마음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으니 순도 100의 사랑을 바라는 그토록 투명한 사람인 은중이 내린 이별선고는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나는 상연의 마음 역시 너무도 잘 알기에 그녀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분명 상연이 상학선배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던 시간은 은중이 선배를 만나고 사랑하기 시작한 그 시제보다 앞선 것이었다. 결국 외사랑에 그칠 수밖에 없었을 상연의 사랑이었을지언정 그녀 자신만은 얼마나 억울하고 서러웠을까?
열일곱 상연, 희망이란 것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었던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음울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사람이 상학이었다는 사실, 열일곱의 일기장 속에 겨우 쏟아놓은 그 버거운 무게를 상연은 어떻게 견뎌왔을까? 내가 반백년을 살아봤기에, 그리고 내 배 아파서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 봤기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십 대 청춘의 상연이 겪었을 마음의 무게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필 가장 소중하면서도 유일한 친구인 은중의 연인 상학이 강릉의 골방에서 상연을 탈출할 수 있도록 꺼내준 삶의 원천이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말할 수 없는 육중한 비밀이 되어 괴롭혔을 것이고, 그것이 곧 은중에 대한 의리와 우정에 대한 가책의 무게였을 테니...




나는 보는 동안 이 작품의 제목이 자꾸 '상연과 은중'이라고 헷갈렸던 것 같다. 그런 만큼 나는 은중보다는 상연에게 더 몰입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상연이 선배를 좋아하는 마음은 은중이 선배를 알기 보다도 먼저였으니 사람의 마음이 잊겠다고 결심해도 생각처럼 되지 않음을 알기에 안타까움이었고, 상학선배의 입장에서도 분명 상학에게는 연인인 은중을 배신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으니 그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고, 그저 인간적으로 상연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고 대하는 부분은 상학이라는 인물 자체가 정의롭고 의리가 넘치는 사람이었으니 이야기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 보게 된다면 (상연의 오빠인 또 다른 상학, '천상학'에 대한) 상연을 대했던 상학의 모습은 분명 사랑이라기보다는 의리가 포함된 것일 테고...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순도 100프로의 사랑만을 고집하며 결국 이별선고를 한 은중이 좀 가혹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그럼에도 은중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으며 그것이 은중 스스로가 세상을 살아온 방식으로 인해 타인에게 스스로 획득한 사랑이며, 신뢰였음은 분명할 것이다. 허나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감정 앞에 솔직하고 밝은 은중과는 정반대로 상연은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매력에 비해 스스로 폐쇄와 고립을 선택함으로 인해 늘 외로웠고 그것이 두고두고 내게는 측은한 마음을 자아냈는지 모르겠다. 물론 상연이 그렇게 되기까지 자라온 환경을(특히 엄마가 자신의 딸인 상연 보다 제자인 은중을 더 아끼고 사랑한다고 오해하게 만든 부분) 납득하다 보니 상연이 밉기보다는 측은함이 더 앞섰던 것 같다. 잠시 은중도 상연을 부러워했던 때가 있었으나 그것은 상연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친구로서의 동경이었으며 그것이 긍정적인 자기 발전으로 승화된 것이 은중이 가진 건강한 성품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은중은 내면이 단단한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십여 년이 흐르고 헤어진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된 영화판에서 선배 상학은 여전히 은중을 사랑하고 있었고, 은중 역시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상학에게 조금은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다시 상연은 그들 가운데 끼는 사이가 된다. 사실 12화의 끝에서 상연이 술에 취해서 (울면서 은중에게 선배를 만나지 말라고) 한 행동은 어쩌면 내가 그전까지 상연에게 애착과 안타까움을 가졌던 것에 대한 반감마저 일으킬 만큼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은 정말 안 했어야지... 삼십 대의 상연은 그 모습으로 인해 추해 보였으니까. 안타깝게 이제껏 참아온 것을...

은중이 결국 상연의 그런 모습보고 난 후 선배를 받아주지 않는 모습에서 나는 처음과는 다르게 은중에게 더 마음이 갔다.


사실 난 13화~ 15화를 보지 않았다면 은중이 좀 상연에게 그리고 선배에게 가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던 상황 (선배가 상연을 찾으러 문지영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차를 몰고 갔던 그날의 일)을 빌미로 이별선고를 했으니...

어쩌면 보는 동안 사랑에 있어서 100을 원한다는 은중의 그 깐깐함이 나는 짜증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게는 절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낀 박탈감이었을까?
어쩜 '십 대, 이십 대의 나'였다면 상연보다 은중에게 더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허나 지천명을 사는 나에게는 상연의 불완전함과 측은함이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마지막 15화의 은중은 여자들에게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 사랑보다도 뜨거운 우정과 의리를 지닌 따뜻한 가슴의 진짜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없으리라.




얼마나 절망적일까?

죽는다는 것도, 살아남는다는 것도...

스위스에서 상연의 생애 마지막 날 아침, '블루하우스'를 향해 함께 걷던 순간, 은중은 상연에게 손을 내밀었지. 그 손을 천천히 잡고 둘은 함께 블루하우스로 들어갔어.

"안녕,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의 친구, 천상연!" 이게 아마 은중이 상연에게 마음속으로 건넨 마지막 말이었던 것 같아.

사실 내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말은 극 중 은중이 자신의 엄마에게 했던 말, '나는 상연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야, 난 싫어하는 거야. 미워하는 것은 생각나서 힘든 것이지만, 싫어하는 것은 아예 생각나지 않는 거라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의미로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은중이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울컥했었다. 은중은 결국 상연이 어떤 미운 행동을 해도 진실로는 상연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는 거니까.

상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을 테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는 거니까...

은중과 상연의 한때 미워했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둘의 소중한 情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도 남을 것 같다.


-2025년 9월 23일 화요일 《은중과 상연》을 보며...





추신.

딱히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감상이라서 좀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줄거리 위주보다는 저의 주관이 지배적인 글이니 감안하시기를...


추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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