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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중국인으로 본 어느 마트직원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미국에서 영어를 마음 가는 대로 말하기 시작한 때가 이민 후 3년쯤 지난 때였습니다. 15살쯤 되던 때까지였고, 그전까지는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경험을 꽤 많이 했음에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기에, 별 일이 아니었음에도 며칠 동안 분노에 가까운 마음상태를 가지고 다녔었지요. 3년이 지난 후에는 점차 대응스킬이 늘어나 high school 12학년때부터는 주변 친구들이 저를 두고 말싸움을 잘한다고 할 정도로 할 말을 다 하고 다였었습니다. 예전 포스트에도 올렸었지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허가를 받고 난 후에는 차에 Beretta 하나를 두고 다녔고, 왠지 든든한 마음에 운전을 하다가 괜스레 그리고 위험하게 시비를 걸고 차별적인 말을 뱉어내던 히스패닉계 녀석들을 혼내 준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총을 사용하지는 않았었지요.


Covid-19 때 뉴욕에 있지 않았기에, 당시 Asian American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를 저와 가족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내 모든 아시안들이 겪어야만 했던 그 힘들었던 2년간 이야기들을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지인들로부터 들었고, 그 정도는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이때 미국에 계셨다면 그 차별의 정도가 어땠는지 알고 계실 듯합니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차별과 심지어는 공격을 받던 시기였으니까요.


요즘 Trump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과거 Covid era처럼 심하지는 않아도 Asian American 들을 상대로 한 혐오범죄 및 인종차별적 사건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오십이 넘어간 지금에도 뉴욕에서 누군가가 차별적인 등의 언행을 하면 저는 대응을 하주 호되게 하는 편이라 최소한 마음만은 시원합니다만, 성격상, 그리고 언어로 인해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같은 아시안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한국에 다시 들어온 지 1주일이 되어갑니다. 한국에서는 인종적 차별을 받는다는 일이 아예 없으리라 생각, 아니,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음이, 어쨌거나 국적은 미국이더라도 ID를 보지 않는 한 저는 100% 한국사람이라 이런 경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 오산이었습니다.


성남에 있는 하나로마트. 일주일 소비할 물건들을 한 후 회원번호를 입력하니 아마도 계산원 스크린에 제 이름이 떴나 봅니다. 물론 영어로 되어 있었겠지요. 이를 보고 사십 대 여자 계산원이 하는 말에 매우 놀랐습니다:


계산원: 한국에 이런 성이 있나? (혼잣말)

Me: 아, 네. 있습니다. 진대제, 진미령 등 있잖아요?

계산원: 중국사람인가? (혼잣말) 진시황?

Me:...

계산원: 한국사람 아니네? 중국사람 많네 진짜.


게다가 웃는 얼굴인지, 비웃는 얼굴인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지요. 이 상황을 보며 제가 한 말은 이렇습니다:


Me: 지금, 법적으로 문제 될 수 있는 발언하신 사실, 인지하십니까?


위 대화를 영어로 바꾸면 그 심각성이 더 느껴집니다:


계산원: Is there an American last name like this?

Me: Yes, there is OOO and also there is OOO.

계산원: Is this Chinese? Like Emperor Qin Shi Huang?

Me:...

계산원: You are not American for sure! You are Chinese!


이 여자, 갑자기 얼굴빛이 바뀌더니 매우 당황한 듯한 모습이더군요. 이런 문제는 고객센터로 가서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하며 저는 바로 고객센터로 향했고, 이 사람, 자기 자리도 지키지 않고 급하게 따라오더군요. 그 이후 고객센터로 가서 상황설명을 그곳 담당자에게 찬찬히 하니 이 담당자라는 사람, 사과를 하긴 하는데 대사 읊듯이 성의 없는 사과였습니다. 그러더니 이유도 없이 나를 위해 경찰을 불러주겠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이 사람이 상황판단을 잘 못 하고 제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으로 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그저 항의를 하고 진실한 사과를 받으려고 한 것인데 일이 조금 확대되는 모양새더군요. 저는 화가 많이 난 상황이었지만 이 아마추어들이 상황을 어떻게 끌고 갈지 궁금하기도 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십분 쯤 지나 경찰이 오더군요. 오자마자 그 고객센터 담당자 (사십 대 중반의 여자)는 자기네 직원이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못해서 제가 민원을 제기했다고 경찰에게 말하더군요. 나름대로는 저를 위해 경찰을 부른 것인데, 자기 마음대로 '개인정보 누설'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서 직원이 실수를 했다고 경찰에게 그러더군요. 경찰은 이 말을 듣고 제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저는 "개인정보 누설은 이 사람이 말한 것이고, 경찰분들이 이왕 오셨으니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저 직원에게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나요?"라고 묻자 경찰은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이후 저는 가야 할 일이 있어 자리를 떴는데, 뒤를 돌아보니 경찰이 그 계산원에게 조언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 여자, 다시는 말실수는 하지 않겠지요. 한 사람의 입으로 인해 그 여자를 제외한 4명의 시간이 낭비된 30분이었습니다.




확률상 저도 중국사람을 기피합니다. 한국에서는 말이지요. 묘한 것이, 미국에서는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 이 세 국가집단 국민들은 서로 비교적 친하게 지낸다는 점이지요. 다만 한국에서는 공공의 적과 같은 대상이 중국인들로, 세계에서 중국 또는 중국사람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Charlie Kirk 가 생전에 아마도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한 곳이 한국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한국의 범죄율이 낮고 밤거리에도 안전하게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이유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라는 생각을 한 것으로 들었지요. 이런 한국에서 어느 외국인이건 간에 기존의 사회구조에 조금이라도 위협적으로 존재하면 전체의 적이 되기가 쉽고, 같은 맥락으로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이런 취급을 받는 것도 자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말실수로 벌어진 그날의 일,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실수들로 인해 소비된 감정들과 시간자산들이 얼마나 많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더군요. 최근 캄보디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연계해 보면 중국 또는 중국인을 협오하는 흐름은 분명 옳은 일은 아니나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그렇다고 제가 경험한 계산원 같은 류의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면 가뜩이나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 한국사회가 타민족 또는 타 국가에 대해 어떤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일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됩니다.


세계 어디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구석이 없네요.


- Octobe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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