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관계
어느 저급한 삼류 영화의 재료 같은 관계 - 자매를 좋아한 한 남자 - 같은 것은 절대 아니었으나, 어떻게 해서라도 이런 부자연스러움을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밤이 있었습니다. 대학부 (당시에는 Young Christians Ministry라는 이름이었지요) 금요 모임 때였습니다. 민주는 대학부 band의 lead vocal이었고, 그날은 왠지 그녀가 제 눈에 더 들어왔습니다. 모두와 함께 band의 진행에 따라 찬양을 부르고 있었지만 저는 그저 입만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뿐, 찬양을 한다고는 볼 수 없었지요. 사실 중고등학교 및 대학부의 기독교 모임은 그 내면적인 면에서 진실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겉으로는 열성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젊은 감정에 휩쓸리거나 분위기에 편승한 결과물이 대부분이며 분출하지 못한 에너지의 아웃렛일 뿐, 이런 spiritual bliss (영적인 기쁨?)는 대부분 이런 non-Christian 적인 감정 요소들의 결과물인 경우를 많이 보았지요.
이렇게 엉성하게 예배를 마친 밤 9시 30분경, 모두가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던 시간이었지만 민주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건물 바깥으로 홀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왠지 그녀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민주의 뒤를 따랐지요. 이렇게 어색한 동기로 그녀를 따라나서는 모습을 - 나중에야 알았지만 - 본 사람이 윤주였습니다. 민주는 교회 주차장을 지나 위치한 작은 벤치로 걸어가고 있었지요. 그녀가 그 벤치에 앉는 것을 확인한 후 저도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걸어갔고, 제 인기척을 느낀 민주가 저를 바라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어떤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인 사람처럼 머릿속이 갑자기 차가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저는 단지 민주와 같이, 단 둘이 있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뒤를 따랐다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 아마도 저를 그렇게 느끼게 한 듯합니다.
교회가 위치한 동네가 공항 근처라 하늘에는 꽤 자주 비행기들이 이륙과 착륙을 하기 위해 꽤 낮게 날고 있었고, 소음이 심할 때엔 매우 거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늦은 밤 시간이라 주변이 꽤 조용했고 오히려 어둔 여름 밤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아마도 어디론가 향하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마지막 비행기일지도 모르는 비행기의 양 날개의 불빛을 보며 민주와 저는 그냥 몇 분을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낸 후 민주가 먼저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오빠. 물어볼 게 하나 있어요."
"응? 뭔데?"
내심 근거 없는 기대?를 하며 저는 민주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저 좋아하세요?"
"..."
그때는 어렸었고 내성적인 성격에, 그렇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응."
"그랬었군요..."
"그런데, 오빠."
"응?"
"윤주가 오빠 좋아하는 것도 알지요?"
"그래?"
모르는 체, 저는 민주에게 반문했습니다.
"난, 우리가 같이 그저 예배 같이 보고, 이야기하고,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어요."
"..."
"그 누구 하고도 마찬가지예요. 여긴 교회니까..."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그녀의 말이 이어졌지요. "교회"니까, 그리고 "그 누구 하고도"라는 말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남자애들은 이해력이 보통 떨어지는지, 제 생각에는 "그럼 혹시 교회 바깥에서 만나면 우린 가능한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습니다. 이날 이후 몇 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그 순간을 회상했을 때 제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참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졌지만 당시 그날 밤엔 마치 "Dumb and Dumber"의 한 대사 장면에서처럼 "그럼 나도 백만분의 일의 찬스는 있구나!" 하는 희망이 실제로 마음속에 있었지요.
슬프게도 이 대화 속에서 민주가 하려는 말은 그녀의 동생에 대한 배려를 바란다는 것이었지만 저는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대화 속에서 민주는 제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 주었고, 저도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이렇게 예상하지 못하게 끝난 민주와의 관계, 그렇다고 해서 매주일 윤주를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deli에 데려다주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틀 후 다시 저는 윤주와 예배 후 Manhattan을 향해 운전을 했고, 여느 다른 일요일에 그랬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차 창 밖으로 펼쳐진 뉴욕의 여름 날씨를 즐기고 있었지요. 차가 59가 Bridge를 넘자마자 윤주가 말했습니다:
"오빠, 오늘은 나 쉬는 날이야."
"그래? 그럼 집으로 갈래?"
"아니, 우리 냉면집 가자. 한인타운에 괜찮은 데 있어."
59가 Park Avenue에서 차를 남쪽으로 돌린 후 별다른 생각 없이 윤주와 저는 Manhattan 32가에 있는 냉면집에 들어갔습니다. 주말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지요. 물냉면 두 그릇을 시킨 후 우린 그저 학교 이야기와 교회 이야기 등으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윤주가 제게 묻더군요:
"오빠. 하나 물어봐도 돼?"
민주와는 달리 윤주는 제게 매우 편하게 반말로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더 편했던 그녀였지요.
"그래. 뭔데?"
"응..."
"오빠, 왜 하필이면 우리 언니야?"
그때 제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꽤나 당황했던지, 평소에 누구와 저녁을 어디서 몇 시에 무엇을 먹었고, 금액은 얼마였으며 나는 대화를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제가, 그 당시의 기억은 하얗게 지워지고 없습니다. 제 답이 무엇이었든 간에, 윤주는 덤덤한 표정이었고, 이후에도 그녀가 보인 저에 대한 태도도 변함은 없었습니다. 단지 이제 일요일 ride는 안 해주어도 좋다는 말은 확실하게 해 주더군요.
이렇게나마 어색한 두 자매와의 관계를 정리가 되었고, 우린 어렸기에 그저 주변의 요소 (학교, 교회, 친구, 파타임, 그리고 기타 여러 일들)에 대해 이유 없이 지나치게 분주한 듯 삶을 살며 이 여름날의 작은 열정을 과거 속에 - 마치 셋이 모여 동의나 한 듯, 그저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이후 1년이 지나 저는 이사를 가는 바람에 그 교회에 더 이상 다니기가 어려워졌고, 그 교회와 관련된 관계 또한 하나둘씩 사라졌지요.
그 여름날 이후 6년이 지난 후, 즉 대학 졸업 후 민주는 2년이 지나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당연히' 진행되었고, 남편은 신학교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미 예전에 정리가 된 관계라 저도 아무런 감정 없이 결혼식에 참석했고, 그날만은 그래도 중요한 날이기에 가장 좋은 옷과 향수, 그리고 머리손질까지 하고 참석했습니다. 6년이 지나 만나게 되는 그 교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기게 중요했지요. 당시에는 어리석은 마음에 구입한 Targa 911을 타고 교회에 들어서며 잠깐이었지만 scene stealer의 기회를 가졌던 값싼 추억도 남아 있습니다.
예배당을 들어서자마자 민주의 부모님이 문에 서 계셨고, 윤주 또한 예쁜 드레스를 입고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지요. 대학 졸업반인 윤주도 이젠 예전의 어린아이 같은 티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윤주의 부모님과 윤주에게 인사를 한 후, 그들의 옆에 서 있는 민주와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과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그 남자는 저와 꽤 유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지요. 남미 선교사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민주에게 곁귀로 들으며 미소로 그들을 대하고 있었지만 그 상황이 제겐 너무나 ironic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피로연이 열린 교회 실내 체육관에서는 심지어 저를 민주의 남편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최소한 10명은 있었고, 이런 상황이 저를 한 편으로는 당혹하게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를 야릇한 느낌 - 마치 박하사탕을 입에 넣고 이로 이 사탕을 깨물어 가루가 되도록 한 다음에 물 한잔을 마시고 느끼는 기분 - 도 들었지요.
이 날 이후로는 민주와 윤주, 그리고 그녀들의 삶에 대해 듣지 못했습니다. 윤주도 결혼을 했을 것이고, 그 좋은 성격 때문이라도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토요일 날 저녁, 결혼식이 끝나고 차를 차고 교회 주차장을 나선 후 교회를 뒤로 하고 다소 높은 속력을 내어 길을 달리며 이유 없이 크게 웃던 제 자신에 대한 기억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렇게 그들을 뒤로하고 길을 나선 그 마지막 순간이 제가 민주와 윤주와의 관계를 나름대로 멋지게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