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노래들
지난 기억을 되새기며 힘을 얻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 사실 모두가 추억은 있으나 그저 잠깐 돌아보는 정도에서 그칠 뿐, 그 예전의 기억들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어떤 의미를 찾거나 삶의 자그마한 원동력을 찾는 사람들은 아마도 지금은 소수일 듯합니다.
오늘 오전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제가 좋아하는 판교의 어느 coffeeshop에 왔습니다. 오전 8시에 여는데, 보통 10시 30분까지는 아무도 오지 않는, 제겐 아주 적합한 장소지요. 보통은 제가 첫 손님입니다. 오늘도 들어서자마자 바리스타가 음악을 틀며 반갑게 인사를 하더군요. 첫 노래는 한국 가요였습니다 보통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American pop을 틀어놓는 이곳이었고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는 날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의외였지요. 그다지 높지 않은 볼륨에, 그리고 의외로 조용한 흐름의 노래가 흘러나오기에 조금은 즐기면서 듣고 서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던 중, 이 노래가 조금씩 제 마음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최근 가수가 부른 노래라는 것은 확실했던 것이, 최근 노래들이 많이 그렇듯 가사를 정확히 그리고 온전히 발음하는 형태의 노래가 아니었고, 2010년 이전의 노래라고 하기엔 상당히 최근의 스타일이 아주 잘 녹아있는 그런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대적인 음악적 기교들이 아주 잘 배어있는 가운데 그 음률이 익숙해지고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던 가사가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1980년대 또는 그 이전 가수들이 불렀던 서정적인 folk song의 가사가 전달하는 사랑의 순수함과 열정이 이 아마도 젊은 친구가 부르는 최근 가요를 통해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충격으로, 그다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몽롱함으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저만의 추억의 책갈피를 마음속에서 펼치는 저 자신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억이 나는 가사만으로 이 노래를 찾아보았고, 자나비 (Jannabi)라는 soft rock 그룹의 2019년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Independent rock band 가 불렀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부드러운 노래지요. Music video 가 있어서 찾아보니 이 또한 빠르다면 70년대, 그리고 80년대의 정서, 또한 stretch를 해 보자면 아마도 90년대의 한국의, 그리고 한국다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더군요. 어떻게 젊은 친구들이 이런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놀랍기도 했고요.
책방, 우체통, 육교 등, 요즘에는 그 존재감에 있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소품들이 모두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로 등장하는 것 또한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내게 긴 여운을 남겨줘요
사랑을 사랑을 해줘요
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새하얀 빛으로 그댈 비춰 줄게요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나의 자라나는 마음을
못 본채 꺾어 버릴 수는 없네
미련 남길 바엔 그리워 아픈 게 나아
서둘러 안겨본 그 품은 따스할 테니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 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언젠가 또 그날이 온대도
우린 서둘러 뒤돌지 말아요
마주 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
피고 지는 마음을 알아요
다시 돌아온 계절도
난 한동안 새 활짝 피었다 질래
또 한 번 영원히
그럼에도 내 사랑은
또 같은 꿈을 꾸고
그럼에도 꾸던 꿈을
난 또 미루진 않을 거야
한동안은 이 노래를 들어야겠습니다. 이별 노래지만 사랑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는 아주 묘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최근에는 매우 쉽지 않게 된 추억 속의 bookmark를 다시 쉽게 열 수 있게 될 듯하군요. 행여 이 추억의 책갈피를 열면 현실에서 어떤 놀라운 무엇인가가 제게 다가올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도 가질 수 있길 바래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doNGNe5C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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