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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Sep 20. 2024

사람들이 원하는 예수님의 모습

지나가는 생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예수님 사진 & 십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쩌면 정해진 기독교인이라는 신분이라, 집에 예수님 사진이나 십자가가 걸려있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림이나 사진을 왠지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꿈속에서 그 사진이 귀신으로 변하는 악몽까지 꾸었지요. 십자가도 왠지 거부감이 들었지만, "예수님 그림이나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내가 진짜 교인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요 - 30대까지의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제대로 된 주관적인 (종교에서는 객관적인 사상이 의외로 꽤나 위험할 수 있습니다) frame of reference 가 잡히면서 기존의 믿음개념이 상당 부분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Leonard Ravenhill의 말씀

국내에는 존경을 받을 만한 목사들이 많지 않지만 1980년 이전의 미국에는 (그리고 영국에는, 그리고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사람들이나 인간세상의 틀에 신경 쓰지 않던 목회자들이 많았습니다. 교회건물도 없고, 돈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의 설교를 경청했었지요. 그분들 중 한 명이 Leonard Ravenhill이라는 분이었지요. 이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Charles Wesley gave us that lovely children's hymn. Gentle Jesus, meek and mild. Look upon the little child. Some people never get past "gentle Jesus." But Jesus is associated with fire. The next time He comes, says 2 Thes. 1:7, He's coming with flaming angels-thousands of them!


Again, the symbol of the church is fire. I was preaching last Sunday night in a big church with a big cross for Jesus and one for the thieves. I reminded them: "The cross is no symbol of Christianity. The symbol of Christianity is the tongue of fire that sat on the head of each of them."


찰스 웨슬리는 사랑스러운 어린이 찬송을 썼습니다. 가사는 "온유하고 온유하신 예수님. 어린아이를 보라" 등으로 나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온유하신 예수님”을 평생 지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불과 관련이 많은 분이지요. 데살로니가후서 1:7에 따르면 예수님은 다음에 오실 때 불타는 천사들, 즉 수천 명의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의 상징은 불입니다. 저는 지난 일요일 밤 큰 교회에서 예수님을 위한 큰 십자가와 도둑들을 위한 십자가가 있는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그들 각자의 머리에 앉은 불의 혀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예수님의 얼굴

구교가 자기들 마음대로 우려먹었던 (Pope LEO X의 말에 의하면 "예수사업은 꽤 두둑하구먼"이라고 했을 정도로) 예수님, 그리고 그를 상상하며 그린 그림들과 다양한 십자가 상징들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괴이한 '예수님의 실제 모습에 대한 모욕'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중세시대의 예수, 사탄과 팔씨름을 하는 예수 (상대가 안 되는 존재인데, 이게 무슨 해괴한 믿음의 표현인지?), 흑인들이 그린 예수, 그리고 계집애(?) 같은 예수,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기에 더해 코믹한 예수까지. 이게 무슨 만행인지요?



아래 그림도 문제가 있습니다. 백인 중에서도 꽤 잘 생긴 백인남성의 얼굴이지요? 체격도 좋고, 어깨도 넓으며, 얼굴 어디를 봐도 최상의 남성이 가진 모습입니다. Ben Hur 그리고 The Ten Commandments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Charlton Heston의 이미지와 교차되는 이유는 어럽지 않게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왜 이런 모습으로 그린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아래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신의 아들은 당연히 모든 면에서 뛰어나야 한다"


"우리가 믿는 신의 아들은 타 종교의 그것보다 뛰어나야 한다"


겠지요. 그렇기에 십자군 원정에서도 그렇게 큰 십자가를 들고 진격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최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우리가 믿는 신을 크고, 잘생기고, 멋지고, 웅장하고, 장엄하게 만들어야 정작 우리 자신들도 무시당하지 않고 선택된 자들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겠지요. 성당도, 교회도, 다 그런 이유겠습니다. 물론 절간도 모스크도 마찬가지지요.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생겼었을까?

현존하는 유일한 예수님에 대한 신체 묘사는 로마 집정관 렌툴루스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보낸 편지 사본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문서는 다른 고대 문서 사본과 함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지요.  


편지 사본에 따르면 영사가 보낸 원본 편지의 날짜는 티베리우스 황제 재위 12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 당시 렌툴루스라는 로마 집정관이 유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향력 있는 가문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그의 저서 『유대인의 유물』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렌툴루스의 편지는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공식 보고서로 제출되었습니다.  


렌툴루스는 편지에서 나사렛 예수라는 사형수에 대해


고상하고 생기 넘치는 얼굴, 곱고 약간 웨이브진 머리카락, 검고 강하게 휘어진 눈썹, 강렬하게 관통하는 푸른 눈, 놀라운 은혜의 표정을 지녔다고 묘사합니다. 코는 다소 길고, 수염은 길지는 않지만 거의 금발에 가깝다고 했지요. 그의 머리카락은 꽤 길고 가위를 본 적이 없는 듯 보였다고 합니다. 그의 목은 약간 앞으로 숙인 자세로, 결코 거만해 보이지 않았고, 그의 검게 그을린 얼굴은 잘 익은 옥수수 색이며 균형 잡힌 비율을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게감과 지혜, 달콤함과 선함의 인상을 주며 분노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도 하지요 (성지 잡지, 프란치스코 성지 출판사, 1998년 봄).  


https://www.agapebiblestudy.com/documents/Jesus_What%20did%20He%20look%20like%20.htm#:~:text=In%20his%20letter%20Lentulus%20describes,His%20nose%20is%20rather%20long.


저 위 사진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얼굴이지요.



BC 시대 예언서에 표현된 예수님

선지자 이사야가 쓴 예수님에 대한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Isaiah 53:2-3

And like a root out of dry ground, he had no beauty or majesty to attract us to him, nothing in his appearance that we should desire him. A man of suffering, and familiar with pain. Like one from whom people hide their faces he was despised, and we held him in low esteem (그는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매력을 느낄 조건이 없는 남자


입니다.


나중에, 먼 나중에 예수님을 천국에서 만나게 되면 그 누가 그를 대하며 "친구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는 나의 친구 등과 같은 성가도 있지만, 그를 보자마자 아마도 우리 모두는 땅에 눈을 대고 감히 올려보지도 못할 것은,


그가 잘 생기고

우람한 체격에

멋진 목소리를 가진 남자


가 아닌,


The Son of the Creator 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느 소녀가 그린 그림이랍니다.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이 그림이 위 이사야서에 표현된, 그리고 로마제국 티베리우스 황제가 받은 서신에 표현된 모습과 그나마 가장 가깝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그림조차 현대적인 모습이 다분하고, 마치 AD30 시대에 면도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trim 이 잘 된 모습입니다.




예수는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배경 좋은 가문, 큰 집, 돈 많은 집안, 학벌, 직장 모두 형편없었습니다. 아예 없었지요.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긴 했지만, 하늘이 선택한 것은 그가 낮은 사람으로 오시는 것이었지요. 그렇기에 옛부터 지금까지 보아 온 찬란한 구교 신교의 신전(?)들은 어처구니가 없을 뿐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며 위 그림을 조금 당시의 그것처럼 상상하면 그나마 뛰어난 상상 속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요?



- 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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