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생각들
나의 외할아버지는 1920년대 중반 경성에서 태어나셔서 계모의 학대를 피해 열 살도 되기 전에 홀로 집을 떠나 낮에는 갖가지 험한 일을, 밤에는 야학 및 독학 등을 이어가며 죽을힘을 다해 더 나은 삶을 위해 꿈을 접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 결과 당시에는 tier 1이었던 선린상고에 입학을 하셨고, 이후 일본 동경대에 입학하셨다고 하더군요. 죽어라 공부한 영어와 생존을 위해 배운 일본어에 유창하셔서, 한국전쟁 당시에는 워커힐 장군 아래에서 꽤 많은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가 동경대를 졸업한 때가 1946년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이후 고국행 배를 타고 1947년 부산항에 들어오신 후 기차를 타고 수년간 꿈에 그리던 경성 (서울)에 들어섰을 때의 감동은 형용할 수 없었다고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80년대 초반이었지만, 그때 이 이야기를 해 주시던 할아버지의 상기된 얼굴을 선명히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그분이 느꼈을 당시의 희열이 어땠을지는 조금이나마 상상이 되더군요.
한국, 1947년
해방을 맞게 된 고국의 모습이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근처 시장 등을 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꽤 많이 실망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하는 말들의 대부분이 "아무래도 김 O 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뛰어나지, " "이 OO 가 미군정이 내심 지지한다며? 그럼 이쪽에 힘이 더 실리지 않을까, " "OO가 일제시대에 OOO에서 그렇게 혁혁한 공을 세웠다더구만" - 등,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가 고작해야 두서넛의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증명되지 않은 영웅담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 또는 비판 일색이었다고 합니다. 미래의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없었고, 누가 더 좋다, 저 사람은 좌익이다, 등, 패망한 조선시대의 마지막이 이러지 읺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드셨다고 하시더군요. 이후에는 이런 정치인들과 세력들이 결국엔 깡패조직 또는 폭력배들을 앞에 내세워 나라가 아주 혼란스러워졌고, 이런 움직임은 1948년 이승만 대통렴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한국전쟁 전까지도 이어졌다고 하시더군요.
일본, 1947년
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떠나 온 일본은 당시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충격과, 이어진 패전국 지위로 인한 국가적 그리고 국민적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긴 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일본은 1947년경 봄부터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국가의 재건을 위해 거의 일사천리, 한 몸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광의 일본제국을 다시 세우려는 하나의 목표 아래, 일본의 전 국민들이 무섭게 일어났다고 하시더군요. 정치인들도 정쟁을 뒤로 하고 한 나라가 하나되어 다시 일어서기를 하는 모습이 무서울 정도였다고 하시던 말씀 또한 기억합니다. 물론 보기 좋지 않은 모습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외할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큰 무리의 짐승떼들같이 치열하게 한 곳을 향해 달려가더라" 였답니다.
광복 이후 80년이 지나게 되는 2025년이군요.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가 경험한 1945-1950년대의 경성과 서울이 왠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대선기간과 어느정도는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국가와 외세에 대한 준비 또는 계획은 전무후무한 정치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의 입놀림과 이를 거들어주는 언론집단이라는 것들을 보면 우려를 넘어 두려운 생각이 들더군요. 경제는 삼성이 책임지고, 외교는 신세계 회장이 해결하려니 하는 생각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지공약, 세금공약 등의 초단기성 약속만 던지는 사람들만 있을 뿐, 대북정책, 대미정책, 대중 및 대일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추상적인 아이디어 외로는 그 어느 깊이있는 견해를 대선주자들로부터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 June 01,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