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 향기에 취하다.

순천에는 왜 홍매화가 많을까?

by 보현


시골집에 봄 꽃을 심으려고 꽃시장엘 들렀다. 팬지와 비올라, 그리고 영국 데이지를 샀다.

그런데 역시 너무 서둘렀던 모양이다. 비 속에 눈이 섞여 내리는 꽃샘추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엄습했다. 온실에서 막 나온 꽃들을 그냥 마당에 심었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이겠다. 작년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꽃들을 일단 시골 동서집 비닐하우스 안으로 대피시켰다.


마당에 식재되기를 기다리는 꽃들

하루 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봄꽃도 심을 수 없고 쑥도 켤 수 없으니 하릴없이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판이었다.

무료함을 제일 견딜 수 없어하는 큰언니가 순천으로의 탐매(探梅) 여행을 제안하였다.

순천 매화는 광양 매화와 달리 홍매가 많아 화려하기 그지없다는 큰언니의 유혹에 작은 언니와 내가 혹하자 남편도 꼼짝없이 우리 세 자매를 따라나서야 했다.


단성(丹城)을 출발할 때도 비가 약간 오기는 했지만 산고개를 넘어 순천으로 가까이 갈수록 비가 점점 많아졌다. 산길을 꼬불꼬불 넘으며 순천 쪽으로 달리다 보니 원조 탐매 마니아로 유명한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가 떠올랐다. 그는 이른 봄이면 개화한 매화를 찾아 당나귀에 솥을 걸고 산속을 헤매 다녔다고 한다. 우리는 당나귀 대신 자동차를 타고 탐매길에 나섰으니 현대의 탐매길이 말도 못 하게 편리해졌다. 옛 시인처럼 무작정 산속을 헤매는 대신 내비게이터에 우리가 방문할 세 곳의 탐매처를 넣었다. 임포시대보다 낭만은 덜한 듯했지만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렇게 수월하게 넘나들 수 있으니 임포가 보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것같다.


순천 쪽으로 가까이 가자 길가에 하얗게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나무들이 나타났다.

“아! 매화다”.

우리는 어제 단성의 단속사지(斷俗寺地)에서 ‘정당매(政堂梅)’를 보고 왔으면서도 마치 개화한 매화를 처음 본 듯 소리를 질렀다. 산속에서 처음 개화한 매화를 발견한 임포처럼 반가워하며 창을 내리고 매화향을 맡았다. 빗속에 향기가 가라앉아서 인지 차창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매화 향기가 차로 스며들었다.

“아! 매화 향기다”.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


우리의 첫 탐매처는 금둔사(金屯寺)였다.

금전산(金錢山) 아래에 위치한 금둔사는 ‘납매’로 유명한 곳이다. ‘납월’은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12월을 일컫는다. 그러니 한겨울에 피는 매화가 ‘납월매’인 것이다. 남도에서 가장 일찍 매화가 피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금둔사인 셈이다.

금둔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절을 향해 고개를 들자 매화 천지가 눈앞에 드러났다.

오래된 절 집과 오래된 돌담 주변으로 매화가 한창 꽃을 피우며 향기를 진하게 날리고 있었다.

금둔사 입구의 매화

절을 향해 올라갈수록 황매화와 백매화가 피어 색깔 있는 수묵화를 보는듯한 정경이 펼쳐졌다. 우리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특히 홍매화의 선연한 색이 빗 속에서 더욱 미색을 드러내었다. 벚꽃보다도 홍매화 꽃술이 더욱 요염하게 보였다. 꽃의 크기는 작았지만 색깔이 진하고 향기가 진한 것이 이곳 납월홍매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저 홍매가 이곳에 있는 납월홍매 중 여섯 번째의 납월매라는 명패를 달고 있었다.


붉은 꽃을 피운 납월홍매


금둔사 경내에는 홍매, 백매, 청매 등 약 12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고 1월부터 납월홍매를 시작으로 백매와 청매가 차례로 피어난다고 하였다.

3층석탑과 석불입상이 위치한 곳에서 절터를 내려다보니 절이 온통 매화로 포위되어 있는 것 같았다. 푸른 나무들과 막 피어난 화사한 매화들이 한 폭의 수채화였다. 마치 무릉도원에 들어선 듯 풍경에 취했다.


금둔사의 전경


이 매화들은 한국불교 태고종 제20대 종정이었던 지허 큰 스님이 오랜 기간 심고 가꾼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20세기 후반~21세기 초에 단계적으로 식재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 스님의 노력으로 금둔사는 이제 매화사찰로 유명해졌다. 특히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라는 소문이다.

언니들과 남편이 여섯 그루의 납월매 나무를 찾아다닐 동안 나는 여섯번째 납월매 아래의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매실을 주웠다. 나무 아래에 매실이 까맣게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둔사 바로 아래 마을이 낙안읍성이었다.

지허스님이 홍매를 가져온 곳도 낙안읍성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낙안읍성을 바라보며 순천식으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향한 곳은 선암사(仙巖寺)였다. 조계산 아래에 위치한 태고종 절이다.

선암사에는 30그루가 넘는 고매화가 있어 ‘선암매’로 명명할 정도로 매화가 유명한 곳이다. 특히 원통전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장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600여 년 된 홍매화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수행과 봄의 시작을 알려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암사의 홍매화는 선암사를 대표하는 얼굴인 셈이다.

불교에서는 매화를 깨달음과 청정함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선비들이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를 선비의 기개, 절개, 고결함의 상징으로 사랑한 것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순천에 홍매화를 많이 심은 이유도 선암사의 홍매 때문이라는 한다. 그러고 보니 금둔사도 선암사와 마찬가지로 태고종의 절이다. 지허 큰 스님이 금둔사에 홍매를 많이 심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암사는 산사로 향하는 길이 매혹적이다.

경사도 완만하고 포장하지 않은 넓은 길 옆으로 고목들이 즐비해 한국관광공사가 아름다운 길로 선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암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선암사 승선교(대한민국 보물)에서 바라본 강선루

선암사의 유명한 매화를 찾아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원통전 뒤편 백매화와 각황전 담장의 홍매화는 아직 꽃 피우려면 이른 것 같았다.

현존하는 고매(古梅) 중 가장 건강하고 웅장한 매화가 선암백매(仙岩白梅)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제 보니 백매 나무에는 이끼가 잔뜩 앉아 건강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화려한 봄 꽃을 보여줄지 알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만개한 매화의 모습은 마음으로만 그려보았다.


천연기념물 선암 백매


각황전 담장의 홍매화 좌측: 현재 모습, 우측: 만개한 모습(순천시 제공)


선암사는 여러모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소설가 조정래 씨가 태어났다. 또한 이곳은 뒷간(해우소)이 특색있기로 유명하다. 정호승시인은 <선암사>라는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라고 썼다. 해우소를 한번 들여다 보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그런데 선암사 해우소는 깊었고 오래된 똥덩이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 쭈그리고 앉아 울기는커녕 바라만 보아도 흉스러웠다. 시인을 격동시켰던 소나무는 아마도 해후소 앞에 자리한 와송을 뜻하는 듯했다. 와송의 뿌리가 해우소까지 미쳤다고 생각하니 더욱 뒤통수가 쭈뼛거렸다. 앉아서 울 수 있는 곳이 아니었건만 시인은 왜 이곳에 와서 울라고 했을까?


왼쪽: 선암사의 유명한 뒷깐(해우소) 오른쪽: 와송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순천복음교회였다.

이곳의 홍매화의 화려함은 금둔사나 선암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최고였다.

짙은 색의 흑매와 밝은 분홍의 홍매와 흰색의 백매화가 기품 있게 어울려 피어있는 모습이 경이롭도록 아름다웠다. 과연 순천의 홍매화 명소 가운데 하나로 이곳이 손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순천복음교회의 매화 정원


이 교회는 1990년대 초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당시 담임목사였던 양민정 목사가 교인들과 함께 교회 정원을 조성하면서 약 30년 동안 꾸준히 매화나무를 심어 오늘날의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약 170여 주의 매화나무가 식재되어 있는데 홍매가 중심이 되어있고 수령 100년 이상된 고매(古梅)도 일부 이식되어 있다고 한다. 한 목사가 30년 동안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꿔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니 울컥 감동이 몰려온다. 더구나 이곳 교회 정원은 울타리도 없는 열린 공간이다. 그 열린 마음 탓에 연못가에 세워진 십자가가 더욱 거룩하게 보였다.

연못가의 십자가


우리가 들러지는 못하였지만 순천의 홍매화 명소로 이름난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바로 매곡동 탐매마을이다. 이곳은 2015~2016년 사이에 순천시의 마을 미술 프로젝트와 경관 개선 사업을 통해 조성된 곳이라고 한다. 순천시는 생태적으로 자연경관이 도시를 살리는 길임을 체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초봄에 피는 매화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교회, 공원, 마을, 사찰에 매화식재를 권했다고 한다. 그것도 선암사의 홍매를 시원으로 삼아 순천을 홍매화의 성지로 만들었다니 그 아이디어가 삼박하다. 매곡동 탐매마을에는 마을 회관 인근에 약 1200여 그루의 홍매화를 심어 2월 말부터 3월 내내 온 마을이 붉은 매화꽃으로 뒤덮인다고 하였다. 이름도 매곡동이다. 지금쯤 상춘객으로 길이 미어터진다고 하여 우리의 탐매여행에서는 제외하였다.


비바람이 거세진 고속도로를 타고 단성으로 돌아왔다. 나는 금둔사에 매화를 심은 지우 스님과 교회정원에 홍매화를 심은 양민정 목사를 떠올려보았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선암사에 매화나무를 심은 이름 모를 스님들도 떠올려보았다. 그들이 매화를 심은 까닭은 고뇌 속에 사는 인생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바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숲을 조성하려면 적어도 30년의 세월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포켓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매실을 만져보았다. 이 매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단성은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처음 심은 시배지이다. 이곳에서 순천의 이름 높은 홍매화들이 싹을 틔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작가의 이전글말의 근원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