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일본어 판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를 읽었다. 일본어를 좀 아는 까닭에 원전의 일본 서적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나의 큰 기쁨이다. 그런데 이 책 읽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좀 전에 일본글을 좀 읽을 수 있다고 뽐내었지만 일본서적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어는 참 어렵다는 한탄이다. 일본어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이 비과학적 언어로 일본이 세계 최강의 경제 수준을 이룬 것이 기적 같기만 하다.
일본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한자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뒤섞여 사용되므로 한자를 아는 것이 최대 난제이다. 한자를 안다고 하더라도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다. 음독이 있고 훈독이 있는데, 음독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요령부득이다. 더구나 지역명으로 가면 관습적으로 부르는 이름들이 사용되고 있으므로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특히 홋카이도 같은 곳에 남아있는 아이누어 지명이나 오키나와의 류큐어 지명에 이르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한글과 유사한 글 체계라고 쉽게 생각하고 배우기 시작했다가는 갈수록 태산인 난이도 앞에서 크게 낙담하고 만다. 더구나 책은 세로 쓰기로 쓰인 데다 띄어쓰기도 않아 술술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외국어를 가타카나로 옮긴 단어는 무슨 말인가 하고 한참을 입안에서 되뇌어 봐야 한다. 한마디로 과거부터의 관습을 뒤섞어 만들어진 글이 일본어이다.
나는 곧잘 일본에도 세종대왕 같은 분이 계셨더라면 오늘날 같은 난삽한 언어가 되지 않았을 텐데 하며 일본을 위해 애석해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세종대왕 같은 분이 계셔서 국제시대에 맞는 과학적인 글자를 갖게 해 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굳이 일본어책을 읽는 이유는 번역되지 않은 수많은 좋은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발행되는 신간책의 종류가 2배 이상 되는 최상위권 국가이다. 물론 인구수도 우리보다 많지만 독서인구층이 우리보다 훨씬 두껍다. 연간 독서량을 비교하면 일본인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종류도 우리보다 훨씬 다양하다. 거기다 일본책은 대부분 문고본으로도 나와 간편하게 소지하기가 좋다. 요즈음은 우리나라의 대행서점에서 쉽게 원하는 책을 주문할 수도 있으니 구하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무엇보다 일본어 소설을 원전으로 읽으면 원전의 맛이 있다. 그것이 언어의 마력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반적인 문제점을 젖혀두고라도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를 읽으며 어려움을 느낀 점은 더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수많은 성경 이야기와 서양 사상가들의 이름과 저서명이 가타카나로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상당히 미스터리 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어 솔직히 답답해하면서 책을 읽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1쇄가 나온 것이 2025년 11월 18일이었다. 최근에 이동진이 이달의 책으로 추천하면서 이 책의 판매가 급증하는 모양새다. 2026년 1월 19일로 벌써 15쇄를 찍었다고 한다. 이 책의 번역본의 띠지에는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사실보다 더 먼저 이동진이 추천한 책이라고 적혀있으니 이동진의 파워를 짐작할 수는 있지만 너무 상술을 내세우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했다.
그나저나 번역본이 나와 나로서는 번역본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다시 읽을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복잡한 이름들과 뒤섞인 내용(에필로그와 프롤로그가 뒤바끤듯한)이 한결 정연하게 읽혔다. 역시 번역가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원판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 는 2025년 1월 15일 발행되었다. 놀랍게도 작가인 유우이 스즈키(鈴木 結生)는 2001년도 생이다. 올해 고작 24세인 젊은이가 이렇게 지적이고 재미있으면서 자못 미스터리 한 수법을 가미한 책을 썼다니 믿을 수 없다. 일본 언론들이 일본에 움베르토 에코가 탄생했다고 흥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책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괴테연구의 일인자 히로바 도이치는 가족 외식으로 갔던 레스토랑에서 홍차의 티백에 써져 있는 괴테의 명언「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를 만난다. 자못 괴테가 사용할 것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히로바는 정말 괴테 자신이 말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히로바는 그 문장의 출처를 찾아 막대한 괴테 관련 원전을 읽고 장년의 자신의 연구 생활의 기억을 되살려보지만 갈수록 오리무중의 상태에 빠진다. 이 아카데믹한 모험담에 도이치 교수의 주변인물들이 섞이면서 이야기는 마치 미스터리의 추적같이 이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에 알려진 명언(名言), 명구(名句)에 의문을 표시한다. 최초에 모든 말들이 있었고(여기서는 위대한 학자 괴테가 모든 말을 말하였다고 표현하지만) 그 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형되고 간략화되고 와전되어 전해져 내려왔을 터인데 굳이 출처를 밝히는 작업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누구라도 세상에 있는 말을 적재적소에 맞게 골라쓰면 되지 어째서 꼭 출처를 밝히기 위해 장기간의 노력을 바쳐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는 학자로서 고개가 끄득여지는 일면도 있다. 이렇게 보면 창작과 학문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재기 넘치는 젊은 작가의 서스펜스적 해결과정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저자인 유우이 스즈키는 부친이 목사인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성경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었고 자라면서는 자연스럽게 성경에 접목된 문학작품들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 등이 그러했다. < 파우스트>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욥기를 기본 골조로 하고 있다.
티백의 에피소드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부친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부친이 손에 넣은 괴테의 명언을 작가에게 보여주며 이 말은 어느 책에 씌여져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답을 알 수 없었던 유우이는 줄곧 그 의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나 좀처럼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본격적으로 매달린 것이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가 탄생한 배경이라고 했다.
괴테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괴테의 저작을 집중적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에는 괴테의 전작품과 괴테에 관한 평론과 파생문학작품이 포함되었는데 특히 괴테에 경도되어 11편의 괴테론을 남긴 토마스 만의 저작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괴테를 유럽의 지적전통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고 할 정도로 괴테는 생에 중 많은 명언을 남기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자신 죽을 때까지 수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괴테는 사랑에 관한 명언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사랑이 띠의 역할을 못한다면 결국은 전부 바벨탑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말은 괴테의 사랑론을 입증한다. 결국 모든 사물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사랑이라는 주장이다. 도이치 교수가 찾아 헤맨 괴테의 명구로 알려진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도 같은 맥락을 나타낸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 앉아 눈앞에 괴테의 저작, 논문, 관련서적, 파생문학작품 등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유우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재미있다.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를 집필하기 위해서 읽은 책은 500 책 정도라고 한다. 작년에는 이 작품 이전에 이미 책 1권을 썼으므로 그는 일 년에 무려 천 권의 책을 읽은 셈이다. 독서와 창작이 동시에 진행되는 mz세대의 모습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파우스트> 일독을 권하지 않는다. 성경적 지식이 없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펼쳐놓고 읽어본다.
우선 すべて라는 단어가 걸린다. 우리말로는 전부, 일체, 모두, 다에 해당하는 일본어이다. 우리말로 번역한 모든 것을 보다는 すべて가 훨씬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성경 <코핼랠>을 굳이 <전도서>라고 옮긴 것도 지적하고 싶다. 다만 번역서에 토를 달아 주석을 붙여준 것은 책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논문 쓰는 것도 아니니 일일이 대조할 일은 없다.
두 책을 함께 나란히 놓고 보아도 원저를 그대로 읽는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나의 일본어 독해 수준을 좀 더 높이는 것이 과제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