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가온이 날아올랐다. 김수철 감독이 울었다.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by 보현


26년도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중계를 보는데 스노보드 여자 하프 파이프 경기에서 내 눈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태극 마크를 단 어린 선수가 상공을 차고 나가 몇 번이나 회전을 반복하더니 슬로프에 멋지게 착지하는 모습이었다.

그 어린 선수는 직전의 1차 런(run)에서 보드가 벽에 부딪히며 눈밭에 나뒹굴었고 2차 런에서는 엉덩방아를 찧어 영 희망이 없어 보였던 참이었다. 그런데 일어나더니 3차 런에서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

18세의, 동계올림픽 선수단 중 가장 어린 선수였고 스노보드 역사상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기록을 세운 최가온이었다.

최가온이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르자 그녀가 지금까지 걸어온 선수로서의 길이 화려하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것도 승승장구한 인생이 아니고 수많은 부상 속에서 좌절하다가 일어서고 다시 일어선 투혼의 역사로 점철되었음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집념과 의지는 드라마틱하게 윤색되어 더욱 빛나게 우리 앞에 드러났다.

최가온은 부모님을 따라 7살 때부터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가온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본 코치가 어린 가온을 스카우트하였고 그때부터 가온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2024년 1월 스위스의 락스에서 허리가 꺾이는 부상이었다. 가온은 3차례의 수술과 재활과정을 견뎠다. 그리고 올 시즌 월드컵 3승을 거쳐 마침내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니 가히 드라마가 따로 없다.

최가온을 오늘에 있게 한 일등 공신은 가온의 부모님, 그중에서도 아버지라고 칭송하고 있다. 한 어린 선수가 부상의 투혼을 딛고 이룬 쾌거는 개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의 경사이자 국가적인 경사이다.

그런데 방송을 보는 도중 진행자가 “김수철 감독이 웁니다”라는 멘트를 날릴 때 내 눈에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김수철 감독은 나의 조카사위이다. 정확히 말하면 언니의 딸의 남편이다. 김감독은 현재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처음 그가 하프파이프 코치로서 젊은 선수들을 이끌고 세계 각지로 전지훈련을 다닌다고 했을 때 사실 난 하프파이프가 무엇인지 몰랐다. 완전 무식꾼이었던 셈이었다. 파이프를 반으로 잘라놓은 것 같은 빙상(그래서 하프파이프이다.)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날아오르며 기술을 자랑하는 경기라는 것을 그 뒤에야 알았다. 알고 보니 ‘하프파이프는 스노보드의 꽃’이었다. 조카사위 덕분에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하프파이프 빙상을 스노보드를 타고 날아오르는 멋진 선수들의 모습들을 가슴 졸이며 보게 되었고 세계 유수의 선수들의 기량에 감탄을 금할 수 없이 되었다.


동계올림픽이 시작되자 일본 NHK에서는 자국 선수들의 활약상을 보도하느라고 바빴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체격조건을 가진 일본인들이 스노보드와 스키에서 맹활약하는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상대가 되지 못할까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조카사위도 저 눈발이 휘날리는 추운 곳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마음 졸이고 있겠구나 하고 마음이 쓰였다.

운동경기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영원히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그들을 스카우트하고 훈련시켜 세계적인 선수들로 만드는 코치나 감독들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최가온의 고득점 비결인 ‘스위치 백 사이드’ 기술도 코치나 감독이 훈련시켰을 터였다. 최가온이 1, 2차 런에서 연거푸 어려움을 겪자 감독은 3차 런에서는 난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변화를 줬는데, 이 전략이 적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감독의 결단과 코치가 있었다.

제자의 부상을 보고 아파하는 감독과 코치의 고독한 여정을 생각하자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생각났다. 김 감독도 최가온의 회복을 위한 분투를 바라보며 프랭키의 마음을 온전히 느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최가온의 승리에 김수철 감독이 눈물을 펑펑 쏟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그순간 느낀 감정이 내 마음을 점령하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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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독은 스노보드의 불모지에서 어린 선수들을 키워왔다. 그 자신 어린 시절부터 스노보드의 매력에 빠져 혼자서 즐기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스노보드의 코치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신문에 실린 김수철 감독의 얼굴을 보고 나는 사뭇 놀랐다. 조카사위가 너무 바빠 못 보고 지낸 지가 벌써 몇 해가 지난듯한데 그새 김 감독의 얼굴에 나이가 느껴졌다. 조카에게 축하 전화를 하고 김 감독이 올해 몇이냐고 물었더니 쉰 살이란다. 나는 세월의 흐름에 깜짝 놀랐다. 운동을 하며 단련된 까무잡잡한 그의 동안이 언제나 어리게만 여겨졌었는데 그가 벌써 쉰의 나이에 들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새 그는 선수들을 데리고 전지훈련을 얼마나 갔는지 모른다. 언니의 말에 의하면 김감독은 거의 언제나 전지훈련 중이었다. 일본으로, 미국으로, 캐나다로, 호주로 눈이 있는 곳을 찾아, 스노보드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곳을 찾아 그는 언제나 출타 중이었다. 조카와 언니가 어린 아들의 양육을 전적으로 맡았다. 그가 그 많은 전지훈련장을 누빌 때 가족이 얼마나 그리웠을 것이며 특히 어린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 것인가. 게다가 예기치 못한 위험상황도 여러번 있었다고 전해들었다. 그가 청춘을 바쳐 이루고자했던 결과물이 바로 최가운이 아니었을까! 겨울 스포츠의 불모지와 마찬가지인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스노보드 선수를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힘써던 그의 노력이 눈앞에 스쳐지나가지나 않았을까.


조카사위 같은 코치나 감독들의 노력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김상겸(하이원)과 유승은(성복고)도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추가했다. 또 다른 메달을 딸까 기대하며 새벽의 남자 하프 파이프 경기를 지켜보았지만 세계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김 감독은 최가온의 수상에 "꿈을 꾸는 것 같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펑펑 나왔다"라고 했다. 눈물자국이 선명한 그의 얼굴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조카사위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그에게 수고했어 김감독! 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최가온의 금메달 수상에 기뻐하는 김수철 감독 사진 출처: 뉴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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