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이 왼팔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by 보현

어느 날부터 오른팔이 아팠다.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오른쪽 어깻죽지에 충격이 간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견딜만하여 그냥 참았다.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치유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근래 와서는 팔을 뒤로 젖히거나 위로 올리려고 할 때마다 악하고 비명을 올릴 지경에 이르렀다. 팔의 통증 때문에 밤잠을 설칠 정도가 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 찾아간 곳은 집 근처의 정형외과였다. 의사는 엑스레이 검사와 초음파를 통해 팔의 상태를 살피더니 염증이 심하여 그렇다고 진단하고는 팔에 주사를 놓았다. 처음 주사는 스테로이드 주사라고 하였고 그다음 두 번은 비스테로이드 주사라고 하였다. 의사 말로는 염증 억제에 스테로이드 만한 치료법이 없다고 강조하였지만 어쩐지 스테로이드 주사는 께름칙하게 여겨졌다. 세 번 정도 주사를 맞으니 스테로이드의 효과였는지 염증이 가라앉았는지 모르겠지만 통증이 많이 가셨다. 그래서 치료하기를 멈추었다.

그러자 며칠 뒤부터 엄청난 통증이 새로이 밀려왔다. 아픈 팔을 움켜잡고 용하다는 한의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나의 팔을 들어 올려 보고 젖혀보고 하더니 회전근개근육에 탈이 난듯하다면서 부황과 약침을 놓았다. 침을 찌를 때, 부황을 뜰 때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아픔을 참고 일곱 번을 한의원 문을 드나들었는데도 전혀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염증이 난 근육을 자극해서였던지 팔이 더욱 못쓰게 아팠다.


작은 가정일조차 하기 어려워졌다. 밥그릇을 씻으려고 하면 이번엔 손목까지 아팠다.

통증을 못 이긴 오른팔이 왼팔에게 “네가 나 대신 가정 잡사를 좀 맡아주면 안 되겠니?”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그때부터 오른팔과 왼팔이 티각태각 쟁론을 벌였다.


처음, 오른팔이 왼팔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래, 그동안 네가 온갖 궂은일을 다 맡아 왔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너 부담을 좀 덜어줄게”하고 왼팔이 선선히 나섰다.

그때부터 왼손이 호기롭게 청소기를 잡고 집안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할 때도 오른손은 붙잡는 시늉만 하고 왼손이 주도하였다. 생수병을 들 때도 왼손을 사용했고 책도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는 책장을 넘기기만 했다. 왼팔이 약간 도움을 주는 듯 여겨졌다. 그런데 며칠 못 가 왼팔이 오른팔에게 말했다. “나 아파서 도저히 더 못하겠어.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 그러자 오른 팔이

“에게. 겨우 그거 하고? 얼마나 날 도왔다고 벌써 엄살이야?” 하며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왼팔은 오른팔의 빈정거리는 말투와 엄살이란 말에 발끈하며 항의하였다.

“난 지금까지 험한 일 안 하고 살아왔단 말이야. 근데 이게 뭐야. 힘들게 도와줬건만 고맙단 말은 안 하고 엄살떤다고? 나도 더는 널 못 도와줘. 아니 안 도와줄 거야”

왼팔의 선언에 오른팔은 어이가 없었다. 오른팔이 억울한 생각이 나서 큰 소리로 왼팔을 나무랐다.

“지금까지 내가 온갖 집안일을 다 처리해 왔잖아. 그건 너도 인정한 바 있지? 내가 몸 안 아끼고 부지런히 일해왔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이 다 편하게 지낸 것 아니야? 내가 아파 너에게 잠시 일을 부탁했는데 그것도 못 하겠다고 벌써 나둥그라져? 너도 참 염치가 없다.”

염치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자 왼팔은 도저히 그냥 참을 수 없었다. 손에 잡고 있던 행주를 휙 집어던지며 외쳤다.

“그래 잘난 네가 다 해, 지금까지 네가 다 해 왔다며. 앞으로도 그냥 네가 다 하는 게 낫겠어”

왼팔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오른팔이 잘난 체하지만 사실은 자기라고 놀고먹은 것은 아니었다. 오른팔의 공적이 100이라면 자기의 조력이 80은 된다고 생각했다.

왼팔의 그런 생각을 엿본 오른팔은 그동안 자신이 담당한 수많은 일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며 왼팔의 생각을 비웃었다. 자기의 노력에 비하면 왼팔의 역할은 그냥 놀고먹은 듯 하찮게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오른팔이 자신의 공적을 나열하기 시작하였다.

“난 이 집의 작은 기중기였어. 결혼한 이래 무거운 것들을 들어 올리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지. 생수묶음을 들었고 쌀 20kg 한 가마를 번쩍 안고 옮겼으며 수천 번, 수만 번 청소기를 돌렸으며 집안이 매끌매끌하도록 걸레질을 하였지. 빨래를 탈탈 털어 말릴 때에도 내가 주도적으로 움직였지 넌 일하는 시늉만 내지 않았어? 게다가 지난 일 년간은 손자를 들어 올리느라고 내 팔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너도 알잖아. 손자의 몸무게가 무려 15kg에 달하는걸! 더구나 시골집에 가면 나는 한시도 쉬지 않았어. 내 튼튼한 팔에 삽을 잡고 땅 속 깊이 뿌리내린 잡초를 뽑은 것이 누구야? 시골집 마당에 계속 올라오는 잡초를 뽑느라고 쉬지 않고 호미를 휘두른 것이 누구니? 그뿐만 아니라 섬세한 작은 일들도 이 팔과 손이 다 해 내었어. 식구들 옷의 단추가 떨어졌을 때 정교한 바느질은 누가 했어? 쑥을 켜고 부추를 다듬고 나물을 무칠 때 왼손 넌 뭐 했어? 그냥 멀뚱히 놀았잖아!”

오른팔이 자기 공적을 한없이 나열하자 듣고 있던 왼팔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뭔 소리야. 나도 쌀가마니를 들 때 힘을 보태었고 귀여운 손자를 안을 때 가만히 있지 않았어. 삽질을 할 때도 힘껏 힘을 보태었어. 바느질이나 호미질을 할 때도 내가 곁에서 거들어주지 않았다면 한 손으로 뭘 할 수 있었겠어? 그러고 그중에서는 네가 스스로 좋아서 한 일이 많잖아! 너는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일감을 네가 다 차지한 부분도 있었어.”

오른팔이 눈을 치뜨며 왼팔을 바라본다. 더욱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올라온다.

“흥, 너는 너의 손을 귀하고 예쁘게 모셔서 네 손은 어여쁘고 네 살결은 비단 같지. 하지만 내 손을 봐봐. 내 손은 너보다 한배 반은 더 크고 손가락에는 굵은 마디가 박혔어. 피부는 또 어떤지 아니? 여기 봐. 거뭇거뭇한 기미가 잔뜩 앉은 것 보이지?”

왼손은 오른손의 기미가 앉은 손을 힐끗 보더니 자기의 가느다랗고 고운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반지가 유난히 반짝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손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왼팔은 약간 미안한 낯을 띄면서 오른팔에게 쭈뼛거리면서 말한다.

“이 모든 일은 주인님의 편애에서 시작된 일이지 내 잘못은 아니잖아. 나도 진즉부터 너처럼 억척스레 살았더라면 너처럼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주인님의 사랑 아래 곱게 지내 연약하기만 한 걸. 하지만 넌 주인님의 신뢰를 듬뿍 받잖니. 네가 튼튼한 팔로 삽을 땅속에 깊이 묻고 이랑을 만들고 밭은 고를 때 주인님이 널 얼마나 든든하게 여겼니. 난 사실 그때 좀 부러웠거든.”


화살이 주인인 나에게로 돌아왔다.

둘이서 티격태격 싸워봐야 오른팔의 통증을 완화하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결국은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될 뿐인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주인으로서 오른팔과 왼팔의 쟁론을 중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최선의 방법은 한시가 급하게 오른팔을 낫게 하는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검색엔진을 총동원하여 나의 팔을 고쳐줄 용한 병원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팔 전문병원을 찾았다. 팔만 보는 전문병원이라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찾아간 전문병원에는 환자들로 만원이었다. “아! 팔이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싶으니 나의 통증이 약간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의사는 엑스레이의 결과를 보고는 근육의 염증일 뿐이니 좀 치료하면 나을 것이라고 위로를 주었다. 나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 부지런히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어 얼른 팔을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오른팔의 치유는 내 몸의 평화를 위한 길이요 가족을 살리는 길이며 내 정원을 살리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봄이 온다. 나는 호미를 휘둘러 땅에서부터 힘차게 올라오는 쇠뜨기풀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나의 오른팔을 하루빨리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왼팔도 이제부터 단련을 시켜 유사시에 써먹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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