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 감사하기

여러 일들이 있었네요.

by 보현


2025년의 탁상 카렌더를 넘기며 주요 사항을 2026년도 카렌더로 옮겼다.

연례행사의 시기가 온 셈이다.


기억해야 할 일들을 2026년도 카렌더에 옮기면서 2025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2025년에도 즐거운 일들도 있었고 슬픈 일들도 있었고 가슴 아픈 일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작은 희로애락의 파노라마였다. 그런데도 2025년도의 카렌더를 내리면서 보니 유독 고마운 일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쩌면 진짜 행복한 일들이 많아서였다기 보다 소소한 즐거움을 깨닫게 된 연배가 된 탓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 본다.

2025년에 감사를 보내며 이 글을 적는다.


첫째 온 가족이 무탈하게 한 해를 보냈으니 감사하다.

우리 가족에 있어 올 해의 가장 큰 사건은 미국에 있던 아들 내외가 귀국하여 가까이 살게 된 일이다. 그로 인해 돌잡이 손자를 돌보는 일이 남편과 나의 큰 기쁨이 되었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힘이 들었지만, 손자의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행복했다. 한 돌이 겨우 지난 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 마음 아팠지만 아들내외는 꿋꿋이 그 길을 선택하였다. 아이는 온갖 병에 시달리며 고생을 하였지만 이제는 그 과정을 견디어 내고 몸과 지혜가 무럭무럭 자랐다. 지켜보는 어른들의 마음이 조마조마하였지만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았나 보았다. 나도 곁에서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었으니 다행이었다.

아들도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며느리가 제가 원하던 직장에 취업하게 되어 그 가정이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

딸 내외는 올해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여 반가운 해후를 할 수 있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내외가 큰 변고 없이 한 해를 보냈으니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아 다행한 일이었다.

가족이 모두 무탈하고 우애가 돈독하니 이보다 더 감사할 수 없다.


두 번째 감사한 일은 시골집의 건재이다.

올해 산청에 자연재해가 유독 심했다. 지리산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잡히지 않아 전 국민의 애를 태우더니 여름에는 물폭탄이 쏟아져 산사태로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생겼다. 우리 동네 입구 동네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나 집이 매몰되어 인명사고가 났으며 내가 좋아하는 수목원에도 수마가 할퀴어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다. 다행히도 우리 동네는 큰 피해가 없었다.

손자 돌보느라고 붙잡혀있는 나를 대신하여 나의 두 언니들이 시골집 돌보미를 자처하였다. 언니들은 산청에 대규모 자연재해가 생겼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시골동네 시찰을 다녀와 내게 피해보고를 보내왔다. 언니들은 나의 정원의 풀도 매어주고 철철이 피는 꽃 소식도 전해주었다. 나를 대신하여 텃밭에 배추를 심고 돌보더니 올 가을에는 배추를 수확해 김장도 하였다.

시골집 마당에 누워 언니들과 함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일이 즐거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진주 누님댁 내외분, 둘째 형님들과 고성 <그레이스 정원>의 수국을 보러 간 일도 기억에 남는다. 올해는 가물고 날이 너무 뜨거워 수국이 예년만 못하였다. 연거푸 두 번이나 가 보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수국천지를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꽃을 보러 다닌 일은 즐거운 추억이다. 다만 누님댁 시매서님이 올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세 번째의 즐거움이라면 친구들과의 우정을 지속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가를 함께하는 동네 친구들과는 올해 가장 빈번한 교류를 나누었다.

고교친구들, 대학 동기들, 직장동료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방콕의 김사장 내외, 부산의 최여사와도 반가운 만남을 가졌으며 일본 오짜노미즈 대학에서 만난 김교수, 이교수와의 만남도 지속되었으니 나의 복이라고 여겨진다. 남편 친구들과 하는 오래된 부부모임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뒤돌아 보니 친구들의 범위가 많이 좁혀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모두 귀한 사람들이다. 귀한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가을에는 미국에 있는 친구 헬렌이 한국에 와서 한 달간 머무르며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다. 특히 산청 시골집에서 며칠을 함께 지냈는데 또 다른 친구 부부가 동참하여 우리의 시골 휴가가 활기에 넘쳤었다.

헬렌과는 미국에서부터의 갈등이 이어져 시골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헬렌이 자기 아집이 강하고 인격수련이 덜 됐다고 몰아붙였고 헬렌은 화가 나서 나를 공격하였다. 나는 헬렌과의 절연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오래된 우정이 쉽게 절연되지는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간 헬렌에게서 전화가 자주 온다. 그녀는 나와 함께 지낸 한 달 동안 자기 인생이 크게 바뀌었다고 여러 번 이야기한다. 나를 만나서라기보다는 내가 건네준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받은 감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이제까지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으며 엄청난 영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마음이 순진한 그녀는 아 켐피스가 말하는 영성에 완전히 홀린 듯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내가 불평하는 그녀의 모습보다는 그녀의 순전한 마음을 하느님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던가 보았다. 헬렌은 전화를 걸 때마다 기쁨에 차서 자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면서 다 네 덕분이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놀란다고 하였다. 헬렌의 회심에 내 마음도 기쁘고 감격이 되었다. 그녀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름답고 기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그리고 나도 핼렌과 같은 순전한 마음을 갖기를 소망한다.


네 번째의 감사한 일은 나에게 대녀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대녀의 영세일에 “마귀를 끊어버립니까?”하고 신부님이 묻고 우리는 함께 “녜, 마귀를 끊어버립니다”라고 힘차게 외쳤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대녀와 손을 잡고 미사도 보고 성지순례도 하고 하느님 나라의 일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쁘게 상상해 본다.

거의 와해되어가는 성당 반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나가 애쓰는 반장의 안감힘에 나의 작은 노력을 보탠 일도 보람 있게 여겨진다. 얼마 전 연말 반모임에 다섯 명의 반원이 모여 함께 식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의 모임을 기약하였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감사한 일은 브런치와의 인연을 이어간 일이다. 작년 가을에 딸네를 방문하여 미국 동부에 머물렀던 순간을 기록한 <미 동부 역사 기행> 브런치 북 2권을 완성하였다. 독자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는 못하였지만 내 나름의 숙제를 마쳤다는 성취감은 들었다.

브런치에 올린 내 글을 읽고 생활성서사에서 원고 청탁이 오는 영광도 얻었다. <생활성서> 5월호에 <아기 업은 성모님>이라는 내 글이 실렸으니 나는 브런치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브런치의 독자들은 여전히 내 글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는 내 속의 요구를 못 이겨 계속 글을 쓸 것이다.


헬렌과 함께 지내던 지난여름, 마당에 뱀이 한 마리 나왔다. 그 뱀을 보자마자 내가 잡아 죽였는데 이 사건이 친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뱀이 우리 집에 자리를 틀게 해서는 안된다는 일념에서 한 행동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뱀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때 데크에 올라온 지네도 한 마리 죽였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겠다고 시골살이를 주장한 나의 모습과 모순되게 여겨져 이 일은 나에게 과제로 남았다.


돌아보니 올여름은 너무 더웠다. 지구 온난화가 개선될 소지가 보이지 않으니 앞으로의 여름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앞으로 지구 운명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한그루의 나무를 나의 정원에 심을 것이다.


2025년 고마웠어.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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