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방송 인터뷰를 하였다.

뿌듯하였다

by 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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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국에서 보내온 문자 한 통이 가까스로 내게 닿았다. 내게 연락할 길을 찾느라고 해당 방송국의 관계자는 무척 애를 썼던 모양이었다. 출판사에 연락했다가, 내가 근무하던 대학의 학과에 연락했다가, 어쨌든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내게 문자 하나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학교 이메일 계정이 폐쇄되면서 나와 세상의 연결이 끊어진 것 같았다. 퇴직하고 5년간은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학교 이메일을 계속 사용해 왔기 때문에 공식 이메일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근 40년 가까이 학교 메일에 의지해 왔기 때문에 개인 이메일을 그다지 활용하지 않고 지내왔다. 그러다 대학에서 나의 이메일 계정을 끊어버리자 섭섭한 마음과 함께 당황스러운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40여 년의 이메일은 마치 나의 역사처럼 여겨졌고 이 계정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자, 나의 역사 일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끈 떨어진 연 같은 신세가 된 것인가 싶었지만, 이제야말로 진짜 자유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어쩌면 온갖 쓸데없는 메일의 쓰레기 더미에서 허우적댔던 것 같기도 하였다. 학교 이메일 계정이 끊어져도 큰일 날 일은 없었다. 나에게 연락을 취하려는 이런 경우 약간 불편을 끼쳤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그리하여 나는 낯선 PD에게로 답신을 보냈다.

내용인즉 그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3부작 다큐멘터리에 나의 자문과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이메일로 프로그램의 대강의 내용이 보내져 왔다. <세계 농업 기행-팜 오디세이>라는 대기획물로서 세계 각국을 다니며 인류의 식량 발전의 발자취를 찾는다는 거창한 내용이었다. PD의 설명에 의하면 내가 쓴 <사피엔스의 식탁>이 그 프로그램에 딱 들어맞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솔직한 마음이 반갑다기보다는 낯선 느낌이 들었다. 꿈속에서 듣는 소리인 듯 뿌연 것이 현실감이 별로 없었다.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너무 오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던 탓이었는지도 몰랐고, 과거 인터뷰나 방송했을 때의 스트레스가 되살아나서였는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바보 같았고 몹시 떨었고 나의 목소리도 생경했고 TV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못생겼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제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기 싫다는 마음이 앞섰다.


사실 나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사피엔스의 식탁>을 쓸 때 온 정성을 다해 그 책을 썼다. 모든 저자들이 자기의 책에 온 정성을 다할 터이니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에 더 마음이 끌려있었다. 나의 첫 책이 <나의 사가독서>였고 가장 최근의 책이 <한국 천주교 순교성지를 찾아서>이고 보면 내가 얼마나 외도를 많이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피엔스의 식탁>은 지구가 형성될 때부터 시작하여 이 지구에 나타난 인류라는 생물종이 무엇을 먹고살았으며, 늘어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인류는 어떤 전략을 써 왔는지를 밝힌 내용이었다. 엄청난 거대담론인 셈이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균쇠>가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구 환경이 인류 문명의 차이를 만든 가장 중요한 동인이라고 썼다. 그런데 그가 든 인류문명의 차이의 시발점이 바로 식량이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식품을 먹기 시작했느냐?, 아니 어떤 지역에 어떤 유용한 자생식물이 있었던지가 문명의 발전을 갈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붉은 줄을 엄청 그으며 <총균쇠>를 탐독하였다. 이어서 나온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도 나의 흥미를 부채질하였다.

<사피엔스의 식탁>에서 지구 46억 년의 이야기를 썼으니 그 당시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그때 나는 책더미 속에서 길을 내었다.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쓴 <What on Earth Happened?>,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지식의 원전>,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과학> 등 벽돌 책들을 위시하여 개개 식품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런 엄청난 책들을 읽어낼 힘은 <나의 사가독서>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선비들이 임금이 내린 휴가(사가賜暇)에 독서를 한 것처럼 나도 대학에서 주는 안식년에 작정하고 책을 읽었다.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고전 작품들을 위주로 읽었다. 그 힘이 <나의 사가독서>라는 책으로 표출되었다. 그때 나의 독서력이 증진되었고 그것이 수많은 책을 읽어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퇴직하고 가장 좋은 일은 쉼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쓴 <사피엔스의 식탁>이 사실 흥행작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전공자들을 위한 추천 도서로 선정되는 정도의 기사감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어쩌랴! 지방대학의 무명교수의 출판에 대한 무관심 탓이라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 보았다.

<사피엔스의 식탁>이 세상에 나온 것이 2018년이었다. 지금이 2025년이니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남편이 중병에 걸려 생사를 오간 것과 나의 퇴직이 가장 큰 일이었을 것이다. 모두 나의 기를 꺾었다. 그러니 새삼스러운 인터뷰 요청이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본론은 제작자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의욕에 넘치는 젊은 제작자들을 만나자 내 속의 활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류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자생식물을 채취하다 그것이 농경사회로 연결이 되었고 정착 생활은 인류의 급증을 가져왔고 이 늘어난 인류를 먹여 살리기 위한 투쟁이 오늘의 인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장대한 드라마가 내 눈앞에 다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파노라마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저 젊은 제작진들이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격이 되고 고맙기도 하였다. 이제 나의 자문이 더해져 젊은이들이 인류문화의 시발점이 된 여러 지역으로 취재를 떠난다고 하였다.

인류의 식생활 향상에 노력한 여러 인물들이 나의 뇌리에 떠올랐다. 사냥에 나선 남자들과 야생식물 채집에 나선 아녀자들, 혈거를 짓고 식량을 비축하던 신석기시대의 사람들, 식량증산에 골몰하던 인류(노먼 블로거에 의해 녹색혁명이 일어났다), 값비싼 향신료를 찾아 먼바다로 나선 용감한 사람들, 콜럼버스가 있었고 <콜럼버스의 교환>이 있었기에 식량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며 피에르 푸아브르 같은 모험가가 있었기에 향신료의 값이 떨어졌다. 다윈뿐만 아니라 훔볼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안락한 삶을 버리고 남미로 떠났으며, 러시아의 식량학자 바빌로프는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우수 야생종자를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해 애를 태웠다. 국민의 배고픔을 덜어주려고 애썼던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도 떠올랐다. 내가 그토록 따라가 보고 싶었던 이 위대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한국의 젊은 방송인들이 찾아 세계로 나선다고 하니 내 가슴이 다 벅차올랐다. 우리의 국력과 위상이 이렇게 높아졌다는 실감이 났다.

그렇게 세계를 향해 떠났던 취재진들이 인류 농업의 오디세이 이야기를 한 보따리씩 안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대강의 편집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나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인지도 몰랐다. 젊은 시절 카메라 앞에서 느끼던 긴장감이 이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성숙해졌다고 스스로 담담하게 생각하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PD가 따라 나오며 교수님의 책과 자문으로 이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극구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나의 발걸음이 붕 뜬 듯하였다. 책을 써서 나도 이 사회에 무언가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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