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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의 보라색을 생각한다

언제부터 보라색은 속죄의 색이 되었을까?

by 보현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미사에 갔더니 짙은 보라색의 대림절 초가 켜지고 제대祭臺 꽃도 보라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보라색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엄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제대의 보라색으로 인해 어느덧 한 해가 마무리되고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순간이 왔음을 깨닫는다.

지난 한 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고개 숙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주도하는 신부님도 보라색 제의를 입고 등장하셨다. 그래서인지 미사 분위기가 한층 차분하고 경건한 듯 여겨졌다.


기독교에서 보라색은 회개와 속죄를 의미한다. 그래서 대림 첫 주의 초도 보라색이요 제대의 꽃도 보라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신부님도 보라색 제의를 입는다. 말하자면 보라색은 대림절의 색이다.


성당 제대를 장식하고 있는 보라색 꽃들을 바라본다. 무슨 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 꽃을 구하느라고 제대 꽃장식 담당자는 꽤 애를 썼을 것 같다.

일전에 쓴 <가을에는 보라색 꽃들이>라는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가을에는 유독 보라색꽃들이 많이 핀다. 국화나 구절초. 벌개미취, 아스타, 층층꽃, 아케라틈, 털여뀌 꽃 등이 가는 시간을 위로하듯 처연하고 조촐하게 피어난다. 계절의 쓸쓸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색이 보라색이다. 그래서 대림절의 이미지에도 가장 잘 맞는 꽃들이 가을에 피는 꽃들일 것 같다. 그러나 언급한 바와 같이 가을에 피는 보라색 꽃들은 그냥 초화류이다. 그것도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핀다. 그래서 제대의 장식용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보라색은 가시광선 중 가장 파장이 짧은 빛이다. 이 파장보다 더 짧은 파장은 자외선 영역에 속해 우리 눈으로 그 빛을 볼 수가 없다. 진한 잔상을 남기고 찰나에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는 빛이 보라색이다. 그래서인지 보라색은 여러 상징성을 가진다. 권위와 존엄성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고 마음의 우울, 불안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 보라색을 왜 참회와 속죄의 상징으로 사용했는지 정확한 연유는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고대 세계에서 보라색은 황제, 권위, 명성, 존엄성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보라색은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 또는 임페리얼 퍼플(imperial purple)로 불리었다. 즉 황제의 색이 보라색이었다.

보라색을 사랑한 대표적인 황제가 로마의 네로 황제였다. 네로는 알다시피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다. 이 욕심 많은 독재자는 자신 이외에 보라색을 쓰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까지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는 부유한 귀족들이 자색옷을 입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만큼 이 자색 염료는 엄청나게 비쌌다.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은 지중해를 연한 레바논지역의 바다에 서식하고 있는 무렉스 브란다리스(Murex brandaris)라는 소라고둥의 점액에서 추출된 천연염료이다.

Murex brandaris 고동: 사진 출처 해양수산부 공식 블로그

1g의 염료를 만드는 데 무려 1만 마리의 고둥이 필요할 정도였고 제조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염료의 값은 매우 비쌌다. 이 염료로 염색한 최상품 옷감 1파운드는 로마 은화 5만 데나리온이나 했다는데 이는 같은 무게의 금값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황제나, 왕, 교황 등이 이 비싼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이 소라고둥의 유일한 산지가 티레(tyre)였기 때문에 이 색소에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지역에 살던 페니키아인들이 값비싼 자주색 물감을 만들어 파는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들은 이 염료를 지중해 각 도시에 팔았는데 그 중요 무역항이 티로와 시돈이었다. 이곳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 번성했는데, 성경에 자주 티로와 시돈이 거명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부유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이었다. 페니키아인들은 무역 거래 내역을 좀 더 쉽게 기록하려고 원시적인 상징문자를 유연한 알파벳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영어의 기원이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임페리얼 퍼플(imperial purple)의 전통은 동로마 제국으로 옮겨갔다. 동로마 제국 황제의 자녀들은 콘스탄티누스 대황궁의 보라색 반암석으로 건축한, 보라색 커튼을 드리운 방에서 태어났다는 뜻에서 'born in the purple(고귀한 태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시기에는 제국에서 직접 염료의 생산과 판매를 관리해 외부로 절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으므로 동로마 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보라색 염료의 생산법도 사장되었다.


초대교회는 로마 황제의 권위를 계승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보라색 제의를 사용하였다. 그 후 교황뿐만 아니라 주교, 추기경들로 보라색 제의의 사용이 확대되었다.

이후 신세계에서 빨간색 색소(코치닐)가 발견되자 황제와 교황의 색이 보라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날 가톨릭의 추기경이 입는 수단은 진홍색이지만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것을 여전히 '보라색 반열에 오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거의 관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도 보라색은 신비와 신성의 색이었다.

동양에서 보라색이 존귀한 색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중국의 영향이 큰 듯하다.

중국에서는 오행과 천문사상에 따라 북극성 주변 영역을 자미원(紫微垣)이라고 부르며 이 별을 황실의 상징으로 여겼다. '자미원(紫微垣)'의 '자'가 바로 보라색을 뜻하는 '紫'이다. 천자가 있는 곳에 자미원이 있고, 자미원을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는 황제 중심 사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큼 보라색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천상의 색이었다. 다만 동양에서는 식물인 자소를 이용하여 보라색을 얻었으므로 뮤렉스의 보라색보다는 불안정한 색이었다.


색깔은 곧 계급을 나타내었다. 황제는 절대권위를 나타내는 황색 옷을 즐겨 입었다면 황족이나 장군, 고위 관료에게 허용된 색이 보라색이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보라색은 특권계층의 색이었다. 백제의 왕은 자색도포를 입었고 신라에서도 보라색 관복은 성골과 진골만 입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보라색 관복이 가장 높은 계급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최근 NHK 방송사에서 일본 황실의 어전 모습을 공개한 바 있는데 그 모습이 눈길을 끈 이유는 보라색 때문이었다. 황실을 뜻하는 국화문양이 새겨진 등 높은 의자가 놓인 뒤로 보라색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중국 황제를 지킨 자미원이 일본 황실을 지켜주기를 소망하는 듯 비쳤다.

일본 방송에 최초로 소개되었다는 일본 황실의 어전 모습(2025.)


이러한 보라색이 참회와 회개의 상징으로 변용된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종교개혁에 나선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의 부패상을 지적하면서 교계의 권위자들이 입었던 붉은 옷을 혐오한 것이 시발점이 되지 않았을까 여겨질 뿐이다. 사제였던 루터는 스스로 검은색 수단을 착용하면서 개신교들에게 붉은색 옷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그로 인해 교황과 추기경들에게 사용되던 존귀한 색은 부패의 상징으로 추락한 것이 아니었을까?


안톤 폰 베르너의 ‘보름스 회의의 마르틴 루터’(1877년).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는 타락한 가톨릭교의 상징이었던 빨간색을 혐오해 개신교도들은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by <문명을 담은 팔레트>

종교개혁운동으로 깊게 자각한 가톨릭 교회는 그 깊은 상처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황제의 의상이자 교황의 상징이었던 보라색을 참회와 회개의 상징으로 바꾼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염원이 담겨있는 색일까?


제대의 보라색 초와 보라색 꽃을 바라보면서 인류 역사의 정반합正反合을 새삼 느끼게 된다.


ps

딸이 맨해튼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전의 대림 첫 주의 장식 사진을 보내왔다. 굳이 없는 보라색 꽃을 찾아 애쓰지 말고 이런 식의 변용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소개해 본다.


맨해튼의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올해 대림 첫 주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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