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크로스가 그린 <별이 있는 풍경>이 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MET의 리먼 컬렉션 전을 보다가 한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앙리 에드만 크로스라는 화가가 그린 <별이 있는 풍경>이라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데 지난여름 언니들과 시골 마당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누워서 별 보기는 재기 넘치는 큰 언니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큰 언니는 동생들에게 밤하늘의 별자리를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마당의 잔디밭에 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집안의 불을 다 껐다. 앞집의 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가로등 불빛도 어둠을 밀어내고 있어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시골 마을이 워낙 어두워서인지 우리 집의 불까지 다 끄고 하늘을 바라보자 제법 별자리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내가 처음 이 시골 마을로 시집왔을 때만 해도 산골에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가득하였다. 그러나 그 후 하늘에 별이 점차 사라지는 듯하더니 이제는 별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골에 불빛이 많아진 탓인지 그동안 공해가 심해진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밤에 마당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서였던지도 모르겠다.
언니들과 나란히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는 것은 난생처음 해보는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남동생은 누나들 곁에 앉아 기타를 치며 흘러간 옛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동생에게 산청의 시골집은 리사이틀의 무대로 딱 이상적인 것 같았다.
죽은 듯이 고요한 마을에 동생의 기타 소리와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자, 남편은 안절부절못하며 마을 사람들의 수면 방해를 걱정하였다. 세 자매는 남편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별자리를 바라보며 이야기의 꽃을 피웠고 호호거리며 웃었다. 남동생은 눈치도 없이 오랫동안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그리하여 우리 남매들의 밤은 흥겹게 익어갔다.
밤이슬이 축축하게 내렸다. 우리는 이불을 둘둘 감고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았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처럼 별 관측소에서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몽골의 초원에서 별을 보는 것도 아니어서 하늘에서 온통 별이 쏟아지는 것 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눈이 어둠에 익자 우리 머리 위로 뿌연 은하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언니는 은하수 한가운데의 별무리를 가리키며 “저것이 백조자리야”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마치 백조가 날개를 펼치며 은하수 한가운데를 날아가는 모습 같이도 보였다. 언니는 이어서 백조자리의 머리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곳에 보이는 빛나는 별자리가 견우 자리라고 가르쳐주었다. 작은 언니와 나는 큰언니의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견우 자리라고 불리는 별자리를 찾았다. 견우성이 그렇게 반짝이는 별인 줄 처음 알았다. 견우 자리가 있으면 직녀 자리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언니는 견우 자리의 위쪽에 은하수를 건너 몹시 반짝이는 별을 가리키며 “저 밝게 반짝이는 별이 직녀 자리야”라고 알려주었다. 직녀별은 너무 밝게 빛나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저렇게 밝게 반짝이고 있었으니 옛사람들이 견우직녀 이야기를 만들어 냄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나 견우직녀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칠월 칠석이면 견우직녀가 만나고 헤어질 때 그들의 이별의 눈물 때문에 비가 내린다는 전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야 견우와 직녀 성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묘하게 흥분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순간이었지만 새로운 사실을 안 즐거움이 더 컸다.
그러고 보니 견우와 직녀 사이에 놓인 은하수는 엄청 넓었다. 저 은하수를 건너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오작교를 놓으려면 지상의 까마귀가 모두 하늘로 올라가야만 할 것 같았다.
북두칠성은 지붕 아래로 자리를 옮겨 별 몇 개만 보였고 견우 성 건너편에 W자 모양의 카시오페아 자리가 보였다. 에티오피아의 왕비 카시오페아는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다 벌을 받아 밤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별자리이다. 워낙 모양이 독특해 금방 카시오페아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동양에서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서양에서는 별자리의 대부분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름을 붙여 부르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오리온자리라든지 전갈자리, 페르세우스자리, 안드로메다 자리 등이 그것이다. 오리온자리도 워낙 눈에 띄는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문외한인 나라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별자리가 북두칠성과 북극성이었다.
누워서 별자리를 관측하니 목도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옛사람들이 하늘의 별모양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우리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잊었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은 하늘의 별자리가 금방 자리를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북두칠성의 움직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우주가 돌든지 지구가 돌든지 누군가가 돌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이 사건이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뒤에 우리나라 여름 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여름 한밤 중에 우리나라의 하늘 중앙에 나타나는 별 무리는 ‘백조자리’와 ‘독수리자리’ 그리고 ‘거문고자리’가 대표적이라고 하였다. 이중 백조자리에서 제일 반짝이는 별은 데네브(Deneb)이고, 독수리자리의 대표별은 알타이르(Altair)라고 불리는 별이며 거문고자리의 대표적인 별은 직녀성이라고도 불리는 베가(Vega) 임을 알았다. 이 셋이 여름 하늘의 중앙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므로 이 셋을 연결하여 ‘여름의 삼각대성군(Summer Triangle)’으로 부른다는 사실도 알았다. 언니가 견우성이라고 지적한 별은 사실을 알타이르이고 진짜 견우성은 은하수 아래에 위치해 있음도 알았다. 어쨌든 직녀성이 북반구에서 두 번째로 밝은 별이라는 사실은 놀라웠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데 영화 <가타카>가 떠올랐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우수한 인종과 자연적으로 태어난 인종 간에 계급이 만들어지고 할 일이 정해지므로 자연교배 인간은 꿈도 가질 수 없고 희망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미래 시대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인 빈센트는 자연교배로 태어난 열등한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불가능한 꿈을 꾸게 된다. 그는 완전한 유전자를 가졌으나 교통사고로 신체가 마비된 전 수영 선수 제롬 모로를 만나 그의 신체조직을 이용해 가타카(우주센터)에 들어가고 우주비행사 시험에도 합격한다. 그러나 감독관이 살해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가짜 신분의 요원을 찾으려는 수사가 집요하게 진행되자 빈센트는 불안에 떨며 실제 신분을 힘겹게 숨긴다. 그가 가짜 신분을 이용해 우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의 애인 아이린과 검사관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는 우주선 출입구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그가 우주로 떠날 때 하늘에 별들이 가득하였다. 그 모습이 주던 벅찬 감동은 신체의 염기배열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어 마지막 스크린이 올라가는데 울컥 감동이 되었다. 빈센트에게 자신의 신분을 준 모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 대신 우주로 떠나는 빈센트를 격려하며 우리 모두 별들의 자식이라고 하는 편지글을 전해준다.
모로의 편지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별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다. 빅뱅과 초기 별들의 핵융합, 초신성 폭발에 의해 우주의 모든 원소가 만들어지고 우주공간에 흩어진 이 물질들이 모여 행성, 지구, 우리 몸을 이루는 재료가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별들의 자식들이다.
나는 언니들과 영화 <가타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코스모스>에서 배웠던 짧은 지식을 구사하여 <우주론>을 펼쳤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류가 우주에서 알아낸 사실은 물가에서 이제 막 발가락을 물에 담근 정도의 수준이라고 하였지만 그러면 어떠랴. 우리가 별의 자식이라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우리 세 자매는 시골집 마당에 누워 몇 개밖에 보이지 않는 별들을 보며 신비한 우주의 비밀에 흠뻑 젖었다. 처음에 재미로 시작한 우리의 별 보기는 거대한 우주로 까지 사고가 확장되는 것 같은 뿌듯함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언니들과 별을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였다. 밤이슬이 얼마나 내렸던지 그동안 우리 몸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앙리 에드먼 크로스가 그린 <별이 있는 풍경>은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과는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고흐의 별 그림을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크로스의 그림은 고흐의 그림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는데 어쩐지 언니들과 누워서 별을 바라보던 그날을 더 떠올리게 하였다. 그날 밤하늘에 저렇게 수많은 별이 명멸하지는 않았지만 은하수의 형체는 분명하였고 무엇보다 어둠 속에 둘러선 키 큰 나무 그림자가 우리 시골집의 분위기와 유사하게 보였다. 마치 크로스에게 세 자매가 별보던 밤의 그림을 의뢰하기라도 한 듯 <별이 있는 풍경>은 그날의 우리 추억을 화폭에 담아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