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관련 기관의 장벽이 낮아지길 바라며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면 본인의 신분과 무관하게(대학생부터 박사과정까지)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건강과 관련된 어려움이다. 그중에서도 정신건강은 대학교 내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화두이다.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우울감, 불안감 등을 토로하는 이들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뮤니티 안에 정신건강을 주제로 하는 하위 커뮤니티(또는 board)도 형성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타인으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얻기를 갈망한다.
그런데 정신건강은 가까운 이들에게 털어놓기에는 조금 무거운 주제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내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이들이 있었지만, 아주 드문 일이었다. 나 역시 정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조차 혼자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또는 여러 차례 고비가 지나가고 나서야 털어놓곤 했다. 왜, 이렇게 중요한 주제를 정작 가까운 이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것일까?
정신건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치부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떤 증상으로든 힘듦을 느끼는 당사자는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 어려움들이 자신에게만 발현된 특수한 '문제'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리고 그 문제를 다른 사람과 달리 나에게만 발생한 불행 같은 것,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드러낼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자신이 나약한 사람,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우려하기도 한다. 결국 정신건강과 관련된 증상은 신체적인 증상과도 같이 너무도 흔하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은밀하게 숨겨야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주제로 타인과 함께 소통할 수 없다면, 남는 대화 상대는 스스로뿐이다. 대화 주제는 주로 자기 비판, 연민, 동정, 자책, 나아가 자학까지 무궁무진하다. 사회가 직접적으로 낙인을 찍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스스로 낙인을 찍게 되는 것이다. 청년 우울증이 몇 년 사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해졌지만, 정작 가까운 타인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어려운 주제적 특성 때문에 개개인이 변화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가까운 이들과 소통하기 어렵다면, 먼 타인과라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소통의 형태는 앞서 말했던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전문가와의 만남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대학교 내에도 학생들을 위한 상담센터가 존재한다. 학과 단위나 기숙사 단위에서 진행하는 상담 프로그램도 있다. 사실 그 환경이 아주 좋지는 않다. 교내 상담을 원해 신청하게 되면 장장 2개월에서 6개월까지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담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외부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꽉차 있는 예약과 짧은 진료 시간 대비 높은 비용이라는 점은 걸림돌이 된다.
나에게도 그런 걸림돌이 앞을 가로막았던 경험이 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 한동안 심한 우울감에 시달린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나의 정신적 나약함, 의지박약 등의 문제라고 생각해 극복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극복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때로는 내부를 헤집고 깊게, 더 깊게 들어갔고 또 때로는 외부적인 자극을 찾아 헤매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하게 스스로를 싫어하거나 연민했고 채찍질하는 동시에 방임했다. 스스로의 패턴을 어느 정도 파악했고, 또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음에도 가끔씩 동일한 패턴이 반복됐다.
정신건강센터를 방문하기 이전, 나는 상담의 기회를 두 번 정도 가졌다. 첫 번째 기회는 2021년쯤, 아마도 심리학과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던 분의 연구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되었던 것 같다. 딱 한 번 줌으로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유야무야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번째 기회는 작년 하반기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찾아왔다. 가상 상담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메타버스 상담 프로그램에 관련된 작은 연구를 하게 되었고, 연구대상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프로그램을 체험해보면서 시작되었다. 대략 4-5회 정도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2021년에 찾아왔던 기회는 너무 소중했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절실했고,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물론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토로하는 과정을 통해 감정이 해소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노력한 덕에 작년에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외려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지금 괜찮은데, 굳이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중대했던 문제는 덮어둔 채 보다 일반적인 고민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거치며 생각보다 내 안에 깊고 크게 자리잡고 있던 고민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얼굴조차 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실존하는 상담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듣는 것이 따뜻했던, 그러나 동시에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정신건강센터에 방문하게 된 계기는 석사과정 코스웍 1학기를 마치면서였다. 생각보다 사람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그리워했고, 그것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에서 혼자 씨름을 하다보니 점차 난관에 부딪혔던 것이다. 잊고 있던, 다 이겨냈다 생각했던 과거의 감정들도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신건강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제로 내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내가 지난 시간 겪었던 우울감을 제대로 치유받지 못해 재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생활을 잘 영위해보고 싶었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잘하고 있고, 꽤나 괜찮게 생활하고 있고, 예전처럼 성실하게 공부하고 있다는 그런 효용감과 만족감을 갈구해왔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기관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외부 기관까지 가기는 부담스러웠기에 학교 내 관련 기관을 찾아보았고, 마침 학교 내에 정신건강센터가 있었다. 정신건강센터 이외에도 대학(원)생 대상 상담 프로그램들이 다수 운영 중이었지만, 이번에는 의학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예약 후 걸려온 전화를 통해 진료 예약이 꽉 차 있어상담을 위해서는 2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달 후면 2학기가 시작하는 때였다. 다행히 진료 당일까지의 기간이 긴 것을 고려하여 사전 상담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 온라인 검사지를 미리 전달받아 심리 검사를 진행한 후 제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상담을 통해 정식 진료가 필요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였다. 사전 상담은 빠른 시일 내로 받을 수 있었다.
대학원생이 학내 정신건강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았다(2)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