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부부로 살아가기
어느 한 분야에 정평한 고수들, 달인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오랫동안 업으로 한 일에 능숙해지고 전문가가 되어 달인이 된 분들도 있지만, 본인의 재능과 관심을 발전시켜 달인이 된 사람들도 나온다. 종이 접기의 달인이라던지, 물수제비의 달인, 큐브의 달인 등 각 영역에서 최고가 된 달인들. 생각지 못한 그들의 존재와 실력이 참 신기하고 놀랍다.
문 역시 달인이다. 이 글을 문이 본다면 조금 기분이 상할 수 있겠지만 그는 망가뜨리기의 달인이다. 그는 이상하게 만졌다 하면 고장을 내는 사람이다. 일단 그의 손에 들어가면 멀쩡한 물건이 멀쩡해지지 않고, 작은 고장으로 신음하는 물건은 여지없이 사망에 이른다. 현은 문이 머리를 안 쓰고 자꾸 힘으로 하려고 해서 그렇다고 얘기한다. 현의 말에 동의한다. 일단 급한 마음에 힘이 앞서는 그는 작은 부품이나 물건들을 부숴 트리는 게 다반사다. 그럼에도 그는 이상하게 고장 난 드라이기를 뜯어보고 시원찮은 청소기 본체를 열어본다. 열어보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다라는 이유 모를 자신감이 있는 듯하다. 내 생각엔 그게 제일 문제인 듯하다.
집 주방이 물난리가 났던 그날이 생각난다.
"씽아!!!!! 씽아!!!!!! 으아아아아! 얼른 와봐!!"
다급한 소리에 얼른 방에서 나가 주방을 보았다. 세상에나, 싱크대 수전에서 물이 사방으로 무섭게 솟구치고 있었다. 문과 현은 급한 마음에 수전 쪽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있었으나 무섭게 솟구치는 물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들의 애타는 소리에 맞추어 나 또한 발 동동 하며 소리쳤다.
"뭐야! 뭐야! 어떡해???"
"아니!! 수도밸브!!! 수도밸브 잠가!!! 빨리빨리!!!!!!!"
너무나도 급박하고 정신이 없어서 어디에 있는 밸브를 어떻게 잠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다만 우당탕탕 난리법석에 물천지가 된 주방,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문과 현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의 그 모습은 참담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일은 두고두고 폭소할 만한 추억거리가 되었다. 이 사태는 주방 싱크대 수전의 약한 누수로 시작되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작은 물 똑똑 정도로 아주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물폭탄의 습격으로 참담했다. 이 대참사의 주범 역시 문이었다. 사실 이런 누수는 아무리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도 다루기에도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나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수전 나사 부분만 조이면 되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한 그는 의기양양하게 공구함을 뒤적거렸던 것이다. (그의 기준에) 그는 알맞고 듬직한 스패너를 손에 쥐었고 힘주어 수전의 볼트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수도 쪽을 만질 때는 수도밸브부터 잠가야 한다는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을 망각한 채! 망각이었는지 무지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대참사가 났고 즉시 수도 전문가를 불러야 했다.
그 사건 이후 집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문은 스스로 해결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문이 손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자신조차도. 오히려 현이 처리하는 편이 나았고, 가깝게 사는 현의 아빠이자 나의 외할아버지 쏭이 고쳐주러 오는 편을 택했다. 또 큰 문제가 생길 때에는 문이 친분을 잘 쌓아둔 수리공아저씨에게 언제든 부탁했다. 그렇게 집안의 무언가를 수리하고 건드리는 건 절대 문의 몫이 아니었다.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현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어제 니 아빠 너무 고생했어, 할아버지네 비데 제거하고 새로 설치까지 다했거든~혼자서~"
망가뜨리기 달인으로만 알았던 문이 비데를 제거하고, 게다가 새로 설치했다니! 내 귀를 의심했다.
"엥? 아빠가? 아빠가 어떻게 그걸 했어? 진짜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속사포로 의문을 던지는 딸의 말에 현은 작게 웃었다.
"응~ 진짜로~호호호"
"우리 집 비데 지난번에 바꿨잖아~ 그거 니 아빠가 설명서 보고 혼자 설치했거든? 혼자 해본다니까 냅둬봤어~근데 설치 잘 했더라구? 이번에 할아버지네도 비데 바꿀 때가 됐거든~ 그래서 내가 똑같은 모델로 할아버지네도 주문해 놨지~ 아빠가 할 줄 아는 걸로~~ 할 줄 아는 거 고대로니까 잘 하더라구~ 아빠도 신났지 뭐~"
집안의 쓸모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문의 마음을 읽고 배려한 현이었다. 역시 그녀는 앙큼하게 똑똑하고 지혜로웠다. 생각해 보니 문이 수도를 터뜨렸을 때에도 현은 문을 구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은근 대인배다. 누구든 한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특히 집안의 남편들은 인정받길 원한다. 문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워낙에 손재주가 없는 탓에 설치하거나 수리할 일들은 포기해 버렸었는데, 이번 일로 인정도 받고 자기 효능감도 느낀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현의 똑 부러진 지혜로움이 한 몫한 훈훈한 일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문과 현은 서로를 사랑하고 정답게 살아가고 있다.
가을이 오고 캠핑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우리 네 식구는 캠핑을 즐기러 왔다. 바람도 불고 비소식에 날도 눅눅해져 불피 우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 남편이었지만 캠핑 경력자답게 꿋꿋이 숯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착화제를 넣고 토치로 강하게 불을 지르면 타닥타닥 숯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숯 전체에 불이 고루 옮겨 붙기까지 에어펌프로 요리조리 쉼 없이 바람을 조절하고 숯도 필요에 따라 이곳저곳 뒤집는다. 연기도 마시고 재도 조금씩 날리는 이 작업을 한참 공들인다. 알맞게 태운 숯은 맛있는 고기를 탄생시키기에 열심히인 남편은 결국 오늘도 아름다운 숯을 만들어냈다.
"와~자기 숯불 척척 잘 피운다~ 전문가가 따로 없네!"
아름다운 숯불을 바라보며 고마운 그의 실력에 감탄을 했다.
"크흐~ 인정받으니 기분 좋구만? 흐흐"
공을 인정받은 남편의 어깨가 높이 치솟는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어 살아가려면 사랑은 기본이고 서로 간의 수많은 노력 또한 필요하다. 서로의 모자람과 빈틈을 비난하기보다, 그 작은 틈을 어떻게 위로하고 메워나갈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지혜로움일 것이다. 서로를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눈치채주고 인정해 주는 마음이 오래도록 정다운 부부를 만든다. 비데를 설치한 문도, 숯을 피워낸 남편도 모두 애썼다. 애씀을 알아봐 주고 정답게 말을 건네는 것 부부의 다정함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숯에다 먹는 고기 정말 최고야, 얘들아 너무 맛있지?"
몸서리치며 아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웅 엄마! 캠핑고기 최고야! 맛있어!"
아이들도 한입 가득 오물거리며 끄덕인다.
"얘들아~ 이건 아빠가 숯을 너무 잘 피워서 맛있는 거야~"
남편의 공을 인정하니 치솟은 어깨를 한껏 더 하늘로 올라가며 으스댄다.
"자기가 맛있는 거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지~"
남편도 즉시 내 공을 인정하며 토닥인다.
정다운 대화 사이에 우리의 가을 캠핑이 보기 좋게 무르익고 있었다.
조만간 할아버지댁에 가면 문이 멋지게 달아놓은 비데를 꼭 알아봐 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알아봐 주기 전에 문이 먼저 신나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망가뜨리기의 달인이 아닌 노력하는 멋진 가장임을 인정하고 응원해 줄 것이다. 벌써부터 문의 의기양양해진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난다. 각 가정에서 쓸모를 지켜나가고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본다.
우리 모두 잘하고 있어요! 정답게 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