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신혼 낭만

그날의 낭만, 그리고 지금 우리의 낭만.

by 아카씽

"어머, 오늘은 예쁜 색시랑 같이 오셨네? 어휴 남편분이 어찌나 색시 자랑을 하던지~ 예쁘고 착하다고! 올 때마다 자랑 엄청해요~말도 못 해요 정말~"

문의 단골 과일가게 주인이 문과 현을 반긴다.


"그쵸? 너~무 예쁘죠? 허허"

문은 곧바로 응수한다. 옆에서 곱디고운 현은 수줍게 얼굴이 붉어진다. 현만 생각하면 나사 빠진 기계마냥 헤벌죽 느슨해지는 문은 어딜 가도 아내 자랑에 여념이 없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바보 온달 저리 가라다. 갓 신혼인 그들이지만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문은 현을 자랑하고 다니기에 바빴다. 예나 지금이나 표현을 서슴지 않는 문이다. 그 모습이 어땠을지 충분히 예상이 되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신혼은 딸로서 내가 느끼기에 조금은 부끄럽고 또 매우 간지럽다.


한 번은 현이 말했다.

"요새는 차를 타고 다니니까 버스정류장으로 남편 마중 나가고 그런 거 없지?

우리 같은 낭만이 없네~ 그치 자기야?"

"그러게~ 버스 정류장으로 자기가 나 매~일 마중 나왔었지~"

문은 대답하며 추억에 잠겼다.


문과 현이 신혼 때 그러니, 그때는 문이 우유 일을 하기 전, 회사로 출퇴근을 할 때다. 차가 없었던 문은 버스로 회사를 오갔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낭만 포인트였다. 저녁어스름 문이 퇴근하고 버스를 타고 올 때쯤 현은 매일같이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문이 오기 전 현은 바지런히 집을 정리했고 밥과 반찬을 하고 국을 끓여놓았다.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단칸방 집에 지펴놓고 즐겁게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도착할 시간보다 미리 나가 조용히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은 룰루랄라 즐겁다. 그것은 하루 중 작지만 큰 기쁨이었다.


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복되는 회사의 일이 지겹기도 했고 정신없이 바빴지만, 오늘도 일찍이 나와 남편이 언제 오나 기다릴 아내 생각에 퇴근길은 늘 바삐 행복했다. 정류장을 하나 둘 세가며, 가끔 신호에 멈춘 버스를 마음속으로 원망도 해보고, 운전대 잡은 기사님과 한마음으로 재촉하듯 부릉부릉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마음 쓰며 드디어 도착한 정류장엔 고개 내밀며 웃는, 그리고 다정히 손짓하는 현이 있었다. 함박웃음으로 서로를 어르고 얼싸안는 그들. 보고 싶었다며 이내 손을 맞잡고 오늘을 도란도란 주고받으며 즐거이 집으로 향한다. 이러한 그들의 낭만은 40년이 넘는 지금도 생생한 행복인 것이다. 어쩐지 간지럽지만 덩달아 웃음 지어지는 그런 행복이다.




"세대 차량이 들어옵니다"

요새 아파트들은 세대의 등록된 차가 주차장의 차단기를 통과해 들어오면 인터폰으로 그 상황을 알려준다. 굉장히 친절한 시스템이다.


"어! 아빠 오나 보다, 엄마! 아빠(주차장에) 들어왔어!!"

인터폰에 소리가 울리면 아이들이 아빠가 왔음에 신이 난다.


"얘들아, 우리 숨어볼까?"

"어어 좋아 엄마!!"

일사불란하게 집 각각으로 흩어지다가 모였다가를 반복하다가 주방 아일랜드식탁 안쪽으로 하나가 되어 웅크린다. 어쩐지 비슷한 시나리오라 금방 걸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심장이 쫄깃하다. 키득키득 웃음이 나면서 서로 조용히 할 것을 당부한다.


띠띠띠띠띠띠! 철컥!

"나 왔어~~"

남편은 이상하리 조용한 집을 낯설어한다기보다 다 안다는 예리한 눈빛을 머금고 거실 쪽으로 조용히 다가온다.


오래 못 숨는 아이들의 특성상 긴장감은 금방 극에 달했고

"아빠!!!!!!" 하며 튕겨나가듯 아빠에게 호다닥 뛰어가 안긴다.

웃으며 나도 뒤이어 나간다.

"고생했어 자기야~"

두 팔 가득 안긴 아이들과 아내의 뽀뽀세례로 남편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어쩐지 문과 현의 낭만보다는 조금 수선스럽고 장난스러운 우리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만큼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모습이 어찌 되었든 각자의 낭만을 때마다 만들어가고 따뜻한 온기를 담아 마음속 주머니에 간직한 채 오래도록 한 번씩 꺼내볼 수 있길 바란다. 문과 현의 40년 전 이야기들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함께 간질간질 추억해 보듯이 말이다. 그렇게 오늘의 이야기도 다정히 기억되고 오래도록 꺼내볼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마음속 주머니에 소중한 오늘을 고이 담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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