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수능 날 목이 쉬어버린 이유

by 아카씽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 끝났다. 잘한 건지 모르겠다. 천재지변으로 오늘 전국의 수능이 취소되는 일을 꿈꿔보기도 했지만, 시험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왔고 뭘 한 건지 알 수도 없이 시험은 끝났다. 힘 잃은 인파 속에 나 역시 교문을 나서고 있다. 활짝 열린 교문 앞 애타는 부모들이 손 모아 기다리던 자식들을 안고 토닥인다. 시원한 마음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한 처음 느껴보는 순간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붙들고 친구와 터벅터벅 느리게 집으로 간다. 겨우 도착한 집. 무거운 현관문을 열고 텅 빈 집에 불을 켠다. 쓸쓸히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고 방에 널브러진다.

"띠띠띠띠띠띠~ 덜컥!"

다급히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현이다.


"아휴 우리 딸하아알~~ 수고 많았어 허"

어쩐지 나오지 않는 목소리. 현은 목이 잔뜩 쉬어있다.

밝은 얼굴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한껏 품은 현의 얼굴. 그 얼굴을 바라보며 괜히 미안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고3 딸을 위해 매일 쉼 없이 기도했던 현이었다. 수능 날도 여전했다. 아니, 더했다. 현은 수능 날 아침 일찍 딸의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싼 뒤 딸을 붙들고 기도를 해주었다. 일찍이 함께 나와 딸은 학교로, 현은 부지런히 교회로 향했다. 딸이 수능을 보는 손과 머리가 바쁜 그 시간, 그녀는 빈틈없이 기도했다. 1교시 언어영역 문제를 풀 때는 좋은 독해력과 침착함을 달라고, 외국어영역 시간에는 영어 말이 잘 들리고 암기했던 모든 단어들이 기억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점심시간엔 먹은 것들이 잘 소화되어 든든히 속을 채우고 체력이 잘 버텨주길 바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현은 딸의 수능 시험 시간표를 따라 기도로 함께했다. 서로 다른 공간이지만 하나의 마음으로 우린 정신없이 바빴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을까. 하루 종일 기도에 모든 걸 소진한 현은 목이 잔뜩 쉬어버렸다.

"아니.. 무슨 기도를 그렇게...."

미안함과 고마움 사이의 괜한 투정이 나오려던 찰나 말을 흐렸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딸의 모습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듬해 나는 현의 기도의 힘이 무색하게 재수를 시작했다. 기도와 딸을 믿었던 현은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그녀는 딸을 안아주었다.

"일 년, 다시 잘해 볼 수 있겠어?"

"응, 열심히 할게 엄마...."

"그래, 잘해보자. 우리 기도하자"

또다시 기도로 나를 다독이는 그때의 현이 평생 고맙고 또 고맙다.


코 끝에 찬기가 확 느껴질 만큼 가을을 지나 겨울로 달려가고 있다. 이 말은 곧 또 수능이 온다는 것. 매년 이맘때 수능을 떠올리면 목이 잔뜩 쉰 그날의 현이 생각난다. 추위에 몸이 으슬거리면서도 괜히 맘이 시린 계절이다. 그때의 넘어짐이 당시엔 그렇게 아프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실패는 긴 나의 인생여정에 작디작은 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난 모든 과정은 나를 큰 성장으로 이끌었다. 삶이 고달픈 순간 늘 그때의 넘어짐과 실패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겪어냈고 살아내 이뤄냈던 나를 떠올리면 왠지 힘이 난다.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이 삶을 포기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다. 입시를 겪었던 한 사람으로서도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아이들이 곧 내 아이처럼 보이기도 해서다. 수능을 앞둔 또 큰 시험과 인생의 어떤 문제에 맞닥뜨린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지금은 결국 한순간이고 넘어지고 다친 뒤에는 단련되고 씩씩한 내일이 있을 것이란 걸 말이다. 또한 모든 것들을 함께 기도로 겪어준 내 부모가 있었듯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현의 침대 머리맡에는 빼곡히 글이 쓰여있는 A4종이 한 장이 있다. 거기엔 가족들과 교회 식구들의 기도제목들이 한가득 쓰여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 귀 기울이고 기도하기에 늘 바쁘다. 딸의 수능이 끝난 지 이미 오래지만, 현은 아직도 매년 수능 날 종일 기도회에 참석해 기도를 드린다. 잘 알지 못하는 자식이라도 수험생이라면 기도로 품어주는 현이 참 대단하다. 기도로 한 없이 품어주는 그녀의 사랑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나는 과연 현처럼 너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아는 찬양의 일부분인데 늘 날 위해 기도해 주는 현이 생각난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이 든든함과 감사함으로 나 또한 다른 지친 사람들을 품어주는 삶을 실천하길 다짐해 본다. 현이 내게 준 기도와 사랑처럼 너른 사랑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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