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에 대한 철학

맛있고, 건강한 그리고 푸짐한 집밥을 위하여 도전!

by 아카씽

"딸~ 점심은 먹었어? 뭐 해?"

"웅, 나 저녁하고 있어. 간장 닭조림 하려구~ 이따 애들이랑 놀이터 놀면 시간이 없어서 미리 지금 하고 있어"

"오구~ 우리 딸 잘하고 있네~"


현은 요즘 시대에 매 끼니 밥을 해 먹는 딸을 매우 기특해하고 또 대견해한다. 나는 주말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먹거리를 거의 집에서 해 먹는다. 낮에 혼자 있을 때도 간단한 빵이나 바깥 음식들의 유혹이 있지만,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 사실 주변에 소문난 반찬 가게도 많다. 그렇지만 어쩐지 한 번을 안 가게 된다. 뭐든 집밥이 최고라는 어쩌면 이 고리타분한 생각이 이상하리만큼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과연 이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현의 집밥에 대한 철학을 이어받아서가 아닌가 싶다. 그녀가 어릴적부터 무심코, 또 무수히 했던 말들을 몇 가지 적어본다.

1. 바깥음식은 닝닝해~

2. 니글거리구~

3. 짜긴 또 왜 그렇게 짜?

4. 집밥으로 건강하게 먹어야해~

5. 양념고기는 집에서 해야 맛있어, 야채만 한가득이잖아~

6. 집에서 해 먹으면 훨씬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구~

등등....

그녀의 수많은 말들을 종합해 보면 '집밥이 최고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신혼 때 문이 회식을 하고 오는 날도 집에 오면 기어코 밥을 꼬박 차려주었을 정도라니 어느 정돈지 말 다했다.


한 번씩 맛집에서 외식을 할 때면 현은 그 맛에 대해 한참 탐구하고 또 바쁘게 머리를 굴린다. 이 맛을 내려면 어떤 재료로 어떻게 양념을 하고 조리를 어떤 식으로 할지 뇌 회로를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밖에서 먹은 음식은 여지없이 며칠 내로 식탁 위에 올라온다. 언제나 현은 가게에서 먹은 것과 거의 비슷하거나 똑같은 맛을 해낸다. 조금(아니 많이) 차이 나는 게 있다면 음식의 양이랄까. 예를 들어 등촌칼국수라면 쏟아질 듯 접시 한가득인 버섯, 미나리, 고기가 쉴 새 없이 리필이 될 것이고, 김치찜을 고기찜처럼 먹을 수 있으며 갓 튀긴 치킨 닭다리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집밥의 포인트가 맛이나 건강도 있지만 어쩐지 푸짐함에 무게가 조금 실리는 느낌이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현은 신선한 식재료로 그날그날의 맛있는 음식을 식탁에 내어주었다. 내 엄마라 당연한 거겠지만 현의 음식은 늘 푸짐하고 맛도 좋다.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면 그녀는 힘이 나는 듯하다. 요리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의지로 그녀는 채소집 사장님께 육개장 만드는 법을 배웠고 배추 파는 할머니에게는 김치의 비법도 알아왔다. 나름 최신 기기 활용에 눈이 밝은 현은 요리 유튜브나 블로그로 새로운 비법에 눈을 반짝이며 메모한다. 그렇게 적극 수용하고 실천하여 매일을 새롭게 실패하고 또 성공한다. 다른 도전들은 주저하는 그녀지만 요리에 있어서는 늘 서슴없다.


"엊그제 마트에 갔는데 꽃게가 싱싱하더라구~ 어후 난 못 만지겠어 정말,

아저씨한테 요거 저거 골라서 넣어달라 하고 봉지 꽉 동여매달라구 했지~

오자마자 냉동실에 넣구 어제 꺼내서 양념게장 했어~ 니 아빠 엄~~청 맛있게 먹네~"

오늘도 맛있게 만든 양념게장에 뿌듯한 현이었다. 그녀는 작은 벌레 하나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지독한 생물 공포증을 앓는 사람이지만, 요리를 위해서라면 낯설고 어려운 식재료에 두려움 따위는 뒷전이다. 세상 공포스럽게 살아 움직이는 꽃게이건만 바들바들 손을 떨며 사고 또 요리해 낸다.


"살아있는 꽃게로는 손질을 못하니까 몇 시간 냉동실에 냉동시켜야 해.

그래야 토막을 낼 수 있거든. 살아있으면 만지기도 좀 그렇구~ 자를 때 살이 흐르면 안 되니까~

근데 냉동돼서 죽은 줄 알았던 게가 잘린 채로 막~ 움직이는 거야~ 덜 얼었었나? 으으으으~~

가슴이 벌렁거리고 머리끝까지 소름 끼치더라니까? 흐으으으~"

주부경력 40년이 다 돼 가건만 그녀는 여전히 생물 손질에 몸서리친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꽃게만 보면 덥석(물론 남의 손을 빌렸지만) 장바구니에 담아 오는 그녀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더 놀라운 건 그런 그녀가 추어탕을 끓인다는 것이다. 그것도 살아있는 미꾸라지로 말이다. 심지어 본인은 안 먹는다. 오로지 그건 문을 위한 것이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운 사랑의 힘으로 현은 펄떡펄떡 뛰는 미꾸라지를 비명을 질러가며 손질한다. 문득 어릴 적 그날이 떠오른다. 현은 미꾸라지를 넣은 큰 들통에 소금을 한가득 뿌려 얼른 뚜껑을 닫았다. 요리를 위해 미꾸라지를 기절시키기 위함이었다.

"타닥! 타다다다닥! 트다다다다닥!!"

요란하게 펄떡거리는 미꾸라지의 몸부림치는 소리에 현과 난 손을 맞잡고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랐다. 굉장히 심장 쫄깃하고 두근대는 인생의 순간이었달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힘 좋은 미꾸라지들이 들통 뚜껑을 밀쳐내 빠져나왔고 주방 바닥을 위협하듯 널뛰었다. 좀비 영화에 나온 공포가 바로 이런 공포가 아닌가 싶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방으로 도망쳤고 현은 비명을 질렀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의 책임자이며 주방 지킴이로서 현은 울먹이며 빠르고 침착하게 나머지 일을 수습했다. 그때 기억 때문인지 난 여전히 추어탕을 못 먹는 어른이다. 문은 이 공포스럽고 웃긴 이야기를 생생히 들으며 현의 추어탕을 맛있게 즐겼다. 어릴 때지만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무서우면 그냥 미꾸라지 자체를 안 사 오면 될 텐데 꼭 집에서 만들어야 하는 걸까? 사랑이라는 게 그런 걸까? 사랑은 그 어떤 어려움과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걸까? 의문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그런 힘이 있다고 어린 생각으로 이해했으나, 난 어른이 되어 한 남자의 아내이지만 현처럼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사 올 용기는 엄두도 못 내겠다. 도무지! 진심으로.


"씽아~ 꽃게 얼려 놓은 거 있어, 가져가~ 집 가서 찜기에 쪄서 먹어"

"꽃게? 꽃게는 안 해봤는데.. 음... 알았어!"

친정에 들렀다 가는 길 수북한 짐 속에 검은 봉지가 한 자리 차지했다. 왠지 모를 음산한 기운을 내뿜지만 일단 데려가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이 싸준 정성스러운 음식들을 하나씩 정리한다. 그리고 검은 봉지 속 주인공의 실체를 살짝 들여다본다. 헙! 세상 늠름한 꽃게씨와 눈을 마주치자 현이 말한 소름 끼침이 내게도 전율처럼 인다. 순간 엄습한 공포에 으윽! 침을 꼴깍 삼키고 애꿎은 봉지를 다시 질끈 동여맸다. 고민할 것도 없이 고이 냉동실로 직행! 다시 현에게 가져가서 도와달라 할까 하다가 주말에 남편과 함께 손질해 보기로 약속했다. 꽃게는 집밥으로 처음 도전해 보는 재료지만, 현의 용기를 이어받아 맛있는 요리로 변신시켜 보리라 다짐했다. 그녀의 집밥 철학에 걸맞는 맛있고 건강한 그리고 푸짐한 집밥을 위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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