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인생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자

by 아카씽

"문이!! 너어어어~~!!! 핵교 가지 말랬지 않냐? 어? 얼른 일루 안 오냐??"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의 불호령을 피해 코흘리개 어린 문은 대추나무 위로 후다닥 도망간다. 문은 또래에 비해 많이 작지만 재빨라서 꼭 짱돌 같다. 두려운 존재를 피해 지붕으로 날듯 올라가 커다란 대추나무를 타고 꼭대기까지 간다. 떨어지면 큰일 날 것 같지만 대추나무는 누구보다 안전하게 문을 꼬옥 안아준다. 그런 대추나무의 품에서 문은 한없이 안정되고 좋았다.

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심한 아버지 밑에서 그는 배도 고프고 마음도 고팠다. 다 떨어져 가는 낡디 낡은 고무신을 신었고 거친 보리밥을 질리도록 먹었다. 학교 가는 것조차 여의치 않아 국민학교 시절부터 신문을 배달을 했다. 그렇게라도 학교에 가고 싶은 문이었다. 이 세상 부지런함이 마치 다 그의 것인 것처럼 살았다. 학교에 가기 전 새벽같이 일어나 신문을 배달해 차곡차곡 돈을 모았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했다. 뭐든 성실히, 열심히인 그는 공부도 달리기도 늘 잘하는 학생이었다. 지금같이 풍족한 세상에선 말도 상상도 못 할 일이라 그저 그때의 작은 문이 너무 가엽다. 그런 문을 떠올리며 늘 생각했다. 나는 거저인 인생이구나.






"어휴 자기야~ 좀 가만히 있어. 쉬라구 쫌!!!!"

오늘도 문은 현에게 한소리 듣는다. 집에서라도 좀 쉬면 좋으련만 부지런이 버릇처럼 몸에 밴 그는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청소에 빨래에 옷정리, 주방정리 모든 집안 정리를 문은 자발적으로 도맡는다. 없던 일도 만들어버린다. 쉼이 없이 움직이는 문은 가만히 있으면 몸이 어디라도 큰일 날 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 현과 나는 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는 할 일이 없으면 기어코 할 일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내가 둘째를 낳았을 때 현은 우리 집에 와 한 달 정도 산후조리를 도왔다. 한동안 그녀가 집에 못 가니 문은 신나게(누구에게도 제지당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이 표현이 딱 맞다.) 모든 집안일을 맡아했다. 쉬지 않는 문은 심심할 겨를 없이 이것저것 일들을 만들어냈다. 일단 밀린 베란다 청소를 포함해 욕실, 주방청소 온갖 청소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청소를 하고 할 일이 없어진 그는 눈에 보이면 안 될 것을 보았다. 바로 베란다 구석의 페인트 한 통. 그것이 문제였다. 왜였을까? 그는 주방과 욕실 등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페인트 칠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신나게 칠했다. 다시 물음표를 띄워본다. 왜였을까? 한 달 뒤 집으로 돌아간 현은 집 곳곳 그의 신명 나는 흔적들에 경악했다. 멀쩡한 식기건조기에까지 덕지덕지 칠을 해놓은 모습에 그녀는 화를 참지 못했다. 허나, 문은 억울했고 그런 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은 깨끗하게 정리했다고 생각했고 현은 엉망진창이라고 말했다. 몇 달 뒤 내가 확인했을 때 이 사건은 백번 문의 잘못이라고 판단 내렸다. 그의 부지런은 가끔 전쟁을 일으킨다. 오늘도 현은 어김없이 외친다. "자기야! 좀! 쉬라고!!!!!!!"


딸네 집에 왔을 때도 똑같다. 그는 역시 좀처럼 쉬질 않는다. 앉아있질 못하고 할 일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애먼 창을 활짝 열어젖히더니 창틀을 확인한다. "우리 딸, 창틀 안 닦은 지 오래됐나 보네~" 라며 집 창틀을 닦기 시작한다. 한참 닦은 후 만족하더니,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룰루랄라 신나 한다. "아빠 냅둬요!" 라는 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화장실 청소에 쓰레기를 버리느라 집을 몇 번 들락날락한다. "그냥 둬요 아빠!!!"라는 호통에 겨우 할 일을 멈추고(사실 다했다.) 아이들과 놀아준다. 노는 것 마저 열정을 다한다. 정말 못 말리는 문. 우리 아빠. 사랑하는 나의 아빠. 그의 부지런이 고맙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왠지 슬프기도 하다. 그의 부지런함에 조금만 더 여유가 생겼으면 하고 생각한다.


ⓒ 2025. acassing All rights reserved. 몇 년 전 썼던 그림일기



"엊그제말야, 니 아빠랑 한의원에 갔거든? 그 한의사 선생님이 아빠는 몸 안에 열이 가득~~ 차 있대, 계속 몸을 움직이면서 그 열을 발산하는 거라네~ 너무 웃기지?" 현은 찰떡같은 한의사의 말이 웃기고 신기한 듯했다. 여전히 문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실인 건 부지런히 살았던 그는 그게 버릇이 되고 곧 삶이 된 것이다. 가난에 몸부림치던 그의 부지런함이 곧 그의 인생인 것. 그렇게 생각하니 문에게 참 감사하다. 거저인 나의 삶은 모두 문에게서 온 것일 테니 말이다.


"크허허허허헝~~~"

한참 아니, 하루 종일 움직이던 문은 소파에 누워 단잠을 잔다. 한동안 쉬지 않고 일해 방전된 그에게 필요한 충전의 시간이다. 이렇게 곤히 잘 수 있나 싶다. 어린 시절 대추나무 꼭대기의 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잠깐의 쉼이 그에게 어떤 평안을 가져다주었을지 생각해본다. 그의 부지런한 인생 가운데 틈틈이 쉼이 자리 잡길 바라며 열린 창문을 조용히 닫는다.

그러나 평온함도 잠시,

"크헝! 어후 얼마나 잤지?"

그 몇 분 얼마나 잤다고 벌떡 일어나는 문이다.

"또리(문과현의 반려견) 산책시켜야겠네~"

얼른 또리 목줄에 옷을 단장시켜 비닐봉지와 휴지를 챙긴다.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문을 나선다.

그런 문을 바라보며 현과 나는 또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못말리는 그의 부지런한 인생에 경의를 표하며 한마디 던져본다.

"아빠!!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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