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즈 & 하산
참으로 고요했지만
결코 잔잔하지 않았던 힐링여행을 다녀왔다.
'힐링'이라는 표현이 좀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회복'이라고 하기에는 뉘앙스가 좀 달라보인다.
어쨌던 작은 회복과 힐링이 찾아온 제주도여행이었다.
20년간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준'이와 '건'이를
우리보다 더 간절하고 치열하게 돌봐주신
스프링필드 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했다.
짧지만 결코 작지 않았던 2박3일이 지나고
밤 11시가 넘긴 시간,
첫째 준이의 영화를 보고 싶다하시는
목사님 내외의 요청에
자막을 내리고 볼륨을 올렸다.
'시스터즈'와 '하산'을 함께 봤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33분 33초의 '시스터즈'
깊은 여운을 남기고 안끝난 듯 끝난 '하산'...
이 것 역시,
우리 부부는 여러번 봤던 영화인데
그 때는 상을 받았으니 너무 좋다는 느낌이 거의 전부였는데
이 번엔 달랐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거의 모두 들렸다.
특별히,
시스터즈의 마지막 대사와
하산의 마지막 장면이 완전히 크게 다가왔다.
"엄마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
엄마가 원망의 대상에서 '이해'의 대상으로 승화되는
자매의 대화장면에서 모든 것이 멈춰서는 그낌이었다.
우리는 '감독'을 안다.
나는 '감독'을 안다.
그래서 더욱 그랬을까?
물론,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수 없이 쓰고, 지우는 반복 속에서
그 대사를 그렇게 확정지을 때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 시나리오가 가장 적합하다고 결정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 시나리오에 나오는 '엄마'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엄마였을까
아니면 감독의 삶과 현실에 실제로 있던 '엄마'였을까?
우리는,
우리 부부는
아직도 '준'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준'이는 이미 '엄마'를 '우리'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힘들었던 유학시절,
그리고 가족과 '사람'들과 떨어져 있었던 그리움과 고독이 절정이었던 그 시절,
그가 느꼈던 '엄마'와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과 이해가
시스터즈라는 영화를 통해 표현된 것이 아닌지..
많은 생각들이 겹쳐져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다시 보니 보여졌다.
'하산'을 길게 얘기하자니
느낌이 반감한다.
간단하게 말하고 끝내고 싶다.
하산에 녹아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감독이 '가족'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으며
가족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깊은지 볼 수 있었다.
다시 보니 보여졌다.
지난 시간,
여러 번에 보았던 것들은
살짝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보여지고 만져지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