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카 Oct 13. 2024

기록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대학 시절, 수업 중 교수님의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필기에 매우 열중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교수님이 나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꾸 쓰려고 하지 말고,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이해하려고 해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 교수님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전공 수업 중에서도 어려운 과목을 가르치셨고, 그래서 필기 없이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님 말씀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수업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나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기 쉽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회사에서 일할 때 성과에만 집중하다가, 과정에서 얻는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놓친 적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의나 강의 때 열심히 적어놓고는 나중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어봤던 적도 있었다.


등산할 때도 정상에 오르는 데만 집중하다가, 중간중간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무거운 DSLR 메라를 들고 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어떻게 잘 찍을지에만 몰두하다가 순간의 감정과 추억을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글을 쓸 때도 표현에만 치중하다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잊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겪으면서, 20년 전 교수님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무겁게 다가왔다.


물론 기록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기록이 우리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 경험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인 정보나 지식에 대한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기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맞이하는 순간들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기록의 가치도 더욱 빛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행복과 성장은 산을 오르는 동안 일어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Everyone wants to live on top of the mountain, but all the happiness and growth occurs while you're climbing it.)
 - Andy Rooney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