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판타지는 끝났다
공부중독. 엄기호, 하지현
위고. 2015. 196p. 13,000
공부를 '하는doing' 게 아니라 '구경'하는 거예요.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학생 1인당 사교육비 평균은 26만 5천 원이다. 이중, 예체능을 제한 교과 사교육비 지출은 19만 천 원이다. (교육부, 2016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 결과)
사람들의 반응에 따르면, 이 통계는 '택도 없는 구라'다. 피부에 와 닿는 부담에 비해 통계치가 턱 없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이 결과는 사교육 받는 학생 중 지출비용을 조사한 게 아니라, 전체 학생 중 사교육 지출을 조사했다. 사교육 받지 않는 학생들이 모두 0원으로 잡히니 통계는 낮게 잡힐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면 아래서 행해지는 수많은 과외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하~~~안참 높아진다.
그러나, 굳이 이런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공부 중독'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코스닥 시장에 사교육 업체가 상장돼 있다는 놀라운 사실 하나만으로 말이다.
1. 사회학자 + 정신과 의사. 흥미로운 조합이다. 큰 틀에서 사회 구조를 보는 데 능한 사회학자와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기스'를 살피는 것에 익숙한 정신과 의사의 만남은 그 자체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바꿔 말하면,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의 통합을 마구 마구 기대하게 한다.
2. 그리고 이 대담집은, 그 기대를 상당 부분 충족시킨다. 두 전문가는 각자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공부에 중독돼 생긴 이상 징후들을 꼬집는다. 예컨대,
공부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익스큐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p.22)
어떤 것에 대해서 증상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한테 굉장히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역치 수준이 매우 낮아지고 있어요. (p.49)
자아 중심성이 굉장히 강하니까 자의식은 무척 높은데, 자기 의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없고. (p.61)
시간도 공간도 계속 최적화해서 사는 것을 추구하고 거기에서만 기쁨을 얻다 보니 최적화되지 않은 것을 견디지 못해요. (p.71)
이 친구들은 공정한 시험에 의해서만 평가받기를 원해요. 그런데 그 공정함이라는 게 굉장히 편협해요. (p.80)
3. 행여 이 논의들이 구조적-사회적 문제를 간과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요즘 애들론'으로 빠질 우려도 빼먹지 않는다. 단, '요즘 애들'인 내 입장에선 한 두 문단으로 보험 들고 넘어가려는 것 같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긴 한다.
4. 포커스는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부모, 즉 486 세대에게 향한다. 모든 것이 리셋된 한국전쟁에서 시작한 '공부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판타지'가 돼버렸다는 것. 공부는 더 이상 인풋 대비 아웃풋을 보장받을 수 있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가 됐음을 지적한다. 옳은 진단이나, 그 판타지를 깰 근거가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제시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5. 결국 '공부 중독' 사회를 깨기 위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개개인의 각성이다.
한 명씩 한 명씩이라도 개인의 선택의 변화가 이어지고, 그 수가 어느 순간 무시할 수 없는 수가 된 다음에는 결국 상식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위상 전위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p.157)
공부에 몰빵 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 불안감을 떨쳐내고 구경이 아닌 '진짜 공부'를 통해 각자의 삶을 찾아가라는, 상식적이지만 다소 김 빠지는 해결책이다. '공부는 판타지 -> 판타지를 깨라'라는 논리적 흐름인데, 그 판타지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 예컨대 경쟁을 심화시키는 교육정책이나 비정규직 문제, 임금 격차 등의 문제가 선결돼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의 각성을(물론 이도 중요하지만) 앞세우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