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d, veneration and wonder
어제는 아무도 모르게 산행에 나섰다.
산 꼭대기에서 혼자서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였다. 훤한 대낮에 길을 나섰는데 들판의 이름 모를 예쁜 꽃과 돌, 네 잎 클로버가 잔뜩 있을 것 같은 초록밭에서 한참을 넋 놓고 놀았다. 그렇게 가다 놀다를 반복하며 산허리를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깜깜했다. 사실 산허리부터 차차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으나, 정상에 발을 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둠이 확 드리웠다.
보통의 어둠과 달랐다. 신이 주먹으로 달을 움켜쥐고 있다가 내가 정상에 다다르자 보란 듯이 으스러뜨리는 듯한, 가리어져 어두운 게 아닌, 빛의 소멸이었다. 두렵고 아름다웠다.
매사 고집 없는 나는 산 밑으로 나를 강하게 밀어내는 이 기운에 대항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마치 이러려고 꼭대기에 온 사람처럼 아무런 미련 없이 하산하기 시작했다.
중턱에 다다르자 점점 빛이 회복되었고, 들판에 도착하니 이름 모를 예쁜 꽃과 돌, 클로버가 잔뜩 있는 초록밭이 다시 반짝이며 나를 반겼다. 클로버 하나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변하더니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달가루가 흩날렸다. 손바닥이 말했다.
"꼭대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그런 마음으로 가는 게 별로라는 거지."
"그럼 어떤 마음으로 가는데요?"
너도 알면서 뭘 묻느냐는 제스처로 손바닥이 말했다.
"작은 마음."
*어젯밤 꿈 이야기예요. 깨고 나서 여운이 깊어서 적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