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학번의 공간 대여 N잡러 도전기
[N잡러는 여러 수를 의미하는 N에 직업을 뜻하는 Job과 사람을 일컫는 ~er을 붙인 합성어로 한명이 여러 개의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를 사는 MZ 세대들은 N잡러를 꿈꾼다. N잡러 생활이 안정되면 회사는 때려치우는 것이 목표다. 그런 그들에게 공간 대여가 각광받고 있다. 적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일정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 30분 일하고 월 300은 번다더라…”류의 얘기들이 많다. (이건 누가 코인 해서 떼돈 벌었다 와 같은 얘기다. 돈을 번 사람이 있겠지만,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정작 N잡러가 되어야 하는 것은 MZ 세대보다도 본업을 그만둘(자의든 타의든) 시간이 멀지 않은 4050이 아닐까? 88꿈나무로 대학에 들어가 땔나무라는 소리를 듣다 이제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된 2022년에 어쩌다 공간 대여를 부업으로 시작한 이야기]
88학번인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93년에 첫 직장으로 들어간 곳이 호텔이었다. 그 시절에는 여자라면 누구나 4년 만에 졸업했지만, 시대를 앞서간 건지, 난 1년 휴학을 하고 5년 만에 졸업했다.
호텔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Hospitality’ 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첫 질문이 “호텔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무엇일까?”였다. 답은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 물론 그건 어언 30년 전 얘기니까 지금은 좀 다를 수 있다. 산속에 파묻힌 OOO스테이도 몇 달 전 예약하고 찾아가는 시대니까. 그럼에도 역시 위치는 중요하다.
그렇다면 공간 대여업은? 사실 호텔도 공간 대여업의 일종 아닌가?
부업으로 공간 대여를 생각한다면 부동산은 집 혹은 일하는 곳 근처에서 찾아야한다. 무인 공간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어쨌든 청소와 관리는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아볼 때 네이버 검색량과 SNS 언급량을 습관처럼 찾아본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이번에도 우선 네이버 검색광고에 들어가 키워드 검색량을 확인해 봤다. 회사에서 가까운 키워드인 ‘강남파티룸’으로 월 7천 건이 넘는 검색량이 나오는데 집 근처 ‘미사파티룸’으로는 월 4백 건 남짓이다. 확실히 수요가 적다. 공간 대여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에 가서 강남・역삼・선릉・삼성 카테고리를 보니 200개 가까운 공간이 이미 등록되어 있었는데, 하남・미사・광주에는 10개가 조금 넘었다. 수요가 적은대신 경쟁도 낮은거다. 어차피 월세나 벌자는 맘으로 시작하는 거고, 이 나이에 강남 감성을 따라가기도 버거운데, 미사가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5호선 미사역 근처에서 맘에 드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네이버 부동산, 네모, 직방,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등에서 손품을 팔아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이른바 부동산 임장에 나서면 된다.
공간 대여를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나만 쓸 공간을 구한다면 1순위는 오피스텔이었을 거다. 미사에는 차고 넘치는 게 오피스텔이고, 서울처럼 비싸지 않게 역세권에 좋은 매물을 구할 수 있다. 벽, 바닥, 조명, 싱크대 뭐하나 새로 할 필요도 없고, 화장실, 샤워시설까지 다 있으니, 가구나 소품만 넣으면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주차나 보안 같은 것들도 걱정할게 없다.
그런데 상업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려면 신경써야할 다른 조건이 있었다. 첫째도 소음 둘째도 소음. 물론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공간을 빌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떠한 목적이든 모임을 위해 공간을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따라오는게 바로 소음. 주거공간인 오피스텔에서 소음은 치명적이다. 층간소음으로 칼부림도 나는 세상인데…그런 스트레스는 받고 싶지 않았다.
다음은 화장실. 내가 읽은 모든 책들과 강의에서 내부 화장실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혹은 하루에 두번) 화장실 청소를 할 자신도 시간도 없다. 화장실이 안에 있으면 이용하기 편리한건 당연하지만,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그냥 화장실에 문제가 있는건 건물에서 관리를 잘 못해서라고 핑계를 댈 수 있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물론 잘못된 판단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만족스런 결정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건 돈을 내고 빌릴만큼 매력적인 공간을 오피스텔안에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집처럼 편한 공간도 좋지만, 집과는 좀 다른 매력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굳이 돈내고 왔는데 말이다.
상가건물은 어떤 기준으로 매물을 찾아보는게 좋을까? 좀 전에 얘기한 소음을 고려한다면 여러 사람여러 모여 즐기는 공간은 지하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월세가 확실히 낮아 수익성 측면에서도 좋다. 물론 습기가 많고, 환기가 안되고, 채광이 나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는하지만, 짧게는 3~4시간 길어야 반나절 머무는 공간이라면 인테리어와 조명으로 이런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할 수 있다. 특히 대형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괜찮은 지하 매물도 충분히 고려 대상이다. 하지만 내가 쓸걸 생각한다면 지하는 또 아닌거다. 주차만해도 그렇다. 모임을 위해 공간을 빌리는 경우 음주 때문에 차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차보다는 다른 조건들을 우선으로 보는 게 나은데, 나에게는 주차가 너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고, 남는 시간에 대여를 해서 월세를 벌자?
그럴듯 한 얘기인 것처럼 들리지만, 시작부터 둘 사이의 큰 간극을 확인하게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와서 내가 쓰는 목적에 우선을 둔다면 난 신축 건물, 대형 건물이 좋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설비, 밖에 나가지 않고 건물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미사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최근 완공된 건물은 그랑***이다. 스타벅스, CGV, 대형서점, 편의점, 올리브영 없는 게 없다. 자주 가던 곳이라 화장실이나 공용 공간들도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차가 편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3층에 테라스까지 딸린 작은 평형이 매물로 있어 부동산과 약속을 하고 보러 갔다.
특별히 단점은 없었는데, 그렇다고 확 끌리지도 않았다. 부동산 사장님은 공간 대여를 생각한다면 굳이 큰 건물, 새 건물보다는 뷰가 좋고, 천장도 시원하게 높은 공간이 더 낫지 않겠냐며, 미사호수 공원 앞에 있는 다른 매물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공간 대여는 상권보다 입지가 중요하다는데, 이쪽은 상권도 입지도 좋다. 물론 월세가 조금 높기는 하다. 건물도 조금은 더 낡았고, 화장실 상태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채광과 뷰 하나만큼은 확실한 곳을 발견했다. 4미터가 훌쩍 넘는 층고와 통창이 확실히 집과는 다른 분위기를 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