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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피알 Oct 18. 2022

4.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확실해졌다.

88학번의 공간 대여 N잡러 도전기

[N잡러는 여러 수를 의미하는 N에 직업을 뜻하는 Job과 사람을 일컫는 ~er을 붙인 합성어로 한 명이 여러 개의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를 사는 MZ 세대들은 N잡러를 꿈꾼다.  N잡러 생활이 안정되면 회사는 때려치우는 것이 목표다. 그런 그들에게 공간 대여가 각광받고 있다. 적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일정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 30분 일하고 월 300은 번다더라…”류의 얘기들이 많다. (이건 누가 코인 해서 떼돈 벌었다 와 같은 얘기다. 돈을 번 사람이 있겠지만,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정작 N잡러가 되어야 하는 것은 MZ 세대보다도 본업을 그만둘(자의든 타의든) 시간이 멀지 않은 4050이 아닐까? 88 꿈나무로 대학에 들어가 땔나무라는 소리를 듣다 이제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된 2022년에 어쩌다 공간 대여를 부업으로 시작한 이야기]




내 공간의 컨셉을 잡기 시작하면서 다른 공간들을 여러 곳 예약해서 이용해 보게 되었다.  우선은 같은 지역에 위치한 곳들을 찾아가 봤다.  네이버 플레이스나 스페이스 클라우드에서 지역을 검색해 상위 노출되는 곳들 위주로 리스트업 했다. 다음은 지역과 관계없이 내가 끌리는 곳들을 선정해서 가기로 했다.  


공간 대여 플랫폼 스페이스 클라우드. 지역, 공간 유형, 공간명으로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하남・미사 지역에는 파티룸(파티룸이 아닌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글에서는 편의상 마케팅 적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는 파티룸이라고 쓰겠습니다.)이 많지 않다.  키즈를 타겟으로 하는 공간을 제외하고 나면 몇 개 남지 않는다.  대부분 한 번씩 다 방문해 보았다.  인기 있는 곳들은 ‘브라이덜 샤워’를 주 타겟으로 하고 있어서 공간의 구성이나, 구비해놓은 소품들이 다 그에 맞춰져 있었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지만, ‘메인이 브라이덜 샤워구나’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일반적인 모임 수요가 많지 않은 상권이라면 역시 브라이덜 샤워 고객을 노려야 하는 것인가? 잠깐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회사에서 가까운 강남, 송파 쪽의 파티룸과 렌탈스튜디오 6곳도 방문해 보았다.  수요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각 공간마다 개성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오피스텔이나 지식산업센터처럼 네모 반듯한 재미없는 공간이 아닌 곳들에 눈에 띄었다.  주택 같은 느낌의 상가 건물도 인상적이었고, 아주 작은 건물에 마치 숨겨놓은 것 같은 테라스가 딸린 공간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찾아냈을까' 호스트를 리스펙트 하게 되었다. 공간 대여업은 왜 첫째도, 둘째도 부동산이라고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되는 현장학습이었다.  


사실 시장조사 과정에서 공간의 인테리어나 소품 등을 보는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호스트가 어떻게 운영을 하는지를 경험하는 게 초보 호스트에게는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예약을 하고 나면 어떤 문자를 보내주는지, 공간의 이용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어떤 안내를 해주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이용 후 후기를 어떻게 요청하는지까지. 하드웨어는 사실 예약 플랫폼의 사진으로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런 소프웨어적인 부분은 직접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공간 대여업을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최대한 많이 (가구 좀 덜 사더라도) 다른 공간들을 이용해 볼 것을 추천드린다.  강력하게!!


시장조사와 벤치마킹을 위해 다녀온 곳들 모두 성업 중인 곳들이라 이 글에서 더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열 곳이 넘는 파티룸과 렌탈스튜디오를 이용을 통해 얻은 나만의 러닝을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시장조사를 통해 ‘이것을 해야겠다’보다는 ‘이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가 분명해졌다. 




1) 청소 보증금은 받지 않는다

파티룸이나 렌탈스튜디오를 무인으로도 운영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청소 보증금이라고 생각한다.  예약자가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10만 원을 청소 보증금 명목으로 내야 예약이 확정된다.  예약한 인원, 시간에 맞게 이용하고, 뒷정리나 청소를 시키는 대로 다 해놓고, 기물이 파손되거나 고장이 나지 않은 게 확인되면 짧게는 24시간 길게는 일주일 안에 반환해 준다. 그러니 청소나 관리 시간이 줄어 무인 운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업계 관례처럼 이렇게 운영되고 있고, 이용자들이 크게 불만을 제기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나만 빼고.  난 일단 잠재적 문제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약간 볼모 잡힌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특히 이러저러한 경우 보증금을 차감한다는 경고성의 긴~~~ 문자나 톡을 받으면 이용 전부터 별로였다. 나이가 들면서 더 까탈스러워지고 불평불만이 많아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돈 내고 빌려 잘 놀고 볼모로 잡힌 보증금을 찾아가기 위해 열심히 청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난 싫었다. 어떤 때는 이용 요금보다 보증금이 더 많았다. 아무 문제가 없으매도 제시간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바빠서 하루 이틀 늦어진 거였지만. 보증금으로 강제하는 것보다는 그냥 같이 나눠 쓰는 공간이니까 다음 이용자를 위해 어느 정도 내 사용의 흔적은 정리를 하고 가자는 것에 서로 공감하고 그렇게 실천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까지 청소 보증금은 받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청소 보증금을 받았어야 하나 고민하게 한 이용자는 딱 2팀 있었다.  이 정도면 옳은 판단이었다고 믿어본다. (이건 아무나 따라 하시면 안 된다!!!! 응접실은 최대 8명 이하가 이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  20~30명씩 그것도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라면 청소 보증금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만고의 진리 케바케를 기억하시길!!)


2)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안내하지 않는다 

“쓰레기는 지하에 있는 분리수거장에 일반, 종이, 캔, 병, 플라스틱 구분해서 버려주세요”라고 하면서 쓰레기 분리수거장 위치를 사진과 지도로 보내주시는 곳들도 있었다.  쓰레기를 구분해서 정리해 두는 것 까지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직접 들고 분리수거장에 가라고 하는 건…. 심지어는 음식물 쓰레기도 외부에 있는 대형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도 한다. 청소 보증금과 같은 맥락으로, 내가 돈 내고 빌렸는데 이렇게까지? 이것도 역시 나만 그런가? 쓰레기를 치우는 것, 특히 대환장 술 파티가 끝나고 난 후에는 괴로운 일이 분명하다.  그래도 우리 응접실의 주인님들께(난 우리 고객님들을 이렇게 부른다. 잠시지만 빌렸으니 그분들이 주인이니까.) 그것까지는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아직까지는 지키고 있다.  싱크대 옆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가신 쓰레기를 직접 분리수거하면서 그래도 하나 좋은 게 있다면 요즘 2030이 어떤 걸 먹고 마시는지 트렌드가 딱 보인다는 거다.  예를 들면 최근에 나오는 술병들은 죄다 처음처럼 ‘새로’ 소주다.  선물을 주고받은 쇼핑백, 포장지도 트렌드를 읽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건 내가 하는 본업이 이쪽이라 그런 거지만… 암튼 내 공간을 이용하는 분들의 성향을 읽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는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다.


3) 내부에 CCTV는 달지 않는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공간의 특성상 대부분의 파티룸 외부와 내부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입퇴실 시간과 인원, 혹시 모를 외부 침입 등 보안상의 이유로 파티룸 출입구에 CCTV를 설치하는 건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건 호스트와 이용자 모두를 위해서다.  그런데 내부 CCTV는 좀 다른 문제다.  물론 고가의 소품이 많은 렌탈 스튜디오라면 그럴 수 있다.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 그 책임소재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대부분의 파티룸에는 그렇게 문제가 될만한 고가의 가구나 장비가 있지는 않다. (물론 있다면 또 다른 문제다.) 소파나 카펫의 오염이나 와인잔 파손, 프로젝터 같은 장비의 고장 등이 발생할 때 CCTV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위해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서 오는 고객님들의 지극히 사적인 시간을 CCTV로 촬영한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반대다. (이건 호스트마다 생각이 많이 다를 수 있는 부분임을 밝혀둡니다~) 내가 이용할 때 내부 CCTV는 좀 기분이 나빴던 때문이기도 하다.  응접실을 오픈하고 약 4개월의 시간이 흐른 오늘까지 아직 한 번도 CCTV를 돌려본 적이 없다.  간혹 예약 인원보다 많은 분들이 쓰고 간 흔적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지만, 왠지 한번 보기 시작하면 자꾸 응접실의 주인님들을 의심하게 될 것 같아서다.  인원 추가 만 원, 그까이꺼~~~ (물론 안 아깝다면 거짓말이다!)


4) 화이트&우드 톤 인테리어는 포기한다

인테리어에는 유행이 있다.  상업 인테리어는 더더욱 그렇다.  요즘 파티룸과 렌탈스튜디오의 5할 (정확한 통계는 절대 아니다!) 이상은 화이트&우드톤 인테리어가 아닐까? 화이트 컬러의 페인트로 도장을 하거나, 우드 월을 세운 공간에 화이트와 우드톤의 가구로 내추럴한 분위를 살린 공간이 정말 많다. 깔끔하고 어떤 가구나 장식을 더해도 어울린다.  어떤 컬러의 꽃이나 풍선을 달아도 딱이다. 파티룸 시장의 메인인 브라이덜 샤워를 하기에도 이만한 인테리어가 없다. 렌탈 스튜디오의 배경으로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시장조사를 위해 공간 대여 플랫폼을 매일 몇 시간씩 들여다보고, 실제로 여러 곳을 이용해 보니, 화이트&우드톤의 인테리어는 과감히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첫째는 너무 많다. 둘째는 너무 좋은 곳이 많다. 셋째는 의외로 편안하지 않다. 사실 세 번째가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편안하게 사용할 공간을 만들고 남는 시간에 취향이 같은 분들에게 공유해야지”라는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봤을 때 일단 내가 편하지 않았다. 난 사실 옷도 흰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담스러워서. 좀 지저분하게 쓰고 어지럽혀도 될 것 같은 그런 편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럼에도 응접실의 벽은 흰 페인트다. 용기가 부족했다.  이번 겨울을 지내고 나면 과감한 컬러로 벽 한쪽은 새로 칠할 계획이다.    


5) 내 사전에 러블리는 없다

파티룸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객은 20대 여성이다.  그들의 취향이 다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러블리한 공간을 만들면 대체로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러블리한 포토월, 러블리한 소품에서 러블리한 액세서리까지.  ‘생일파티’, ‘브라이덜 샤워’, ‘베이비샤워’ 모두 커버하기에도 가장 좋은 컨셉이다.  문제는 나는 그들과 나이 차이도 너무 많고, 특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 극단적으로 반대라는 거다. 난 20대 때도 러블리에는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래도 파티룸의 성격을 생각해 러블리한 공간들도 리스트에 넣어두고 방문해 보았다. 러블리한 공간을 바라보는 건 뭐 괜찮으나, 그 안에 머무는 건 역시 편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취향으로 살아보지 않아서 어디까지 러블리한 게 과하거나 촌스럽지 않고 적당한 선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 포기하면 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어차피 공간 하나인데,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설마 몇은 있겠지...


6) 벽난로 콘솔과 모형 책은 절대 안 산다

조금 과장해서 방문한 모든 곳에 벽난로 모양으로 디자인된 콘솔이 놓여있고, 거기에는 반드시 인테리어용으로 제작된 가짜 책(책 모양으로 만든 박스)이 디스플레이되어있었다.  한국에서 벽난로는 분명 이국적인 인테리어 아이템이 맞다.  한 권당 1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수입 인테리어 혹은 패션 서적 대신 모형 책은 가성비 높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소품이다.  인증샷의 시대에 벽난로는 완벽하다. 크리스마스 시즌 때는 더 좋을 게 확실하다. 잘 되는 파티룸마다 이게 다 있다는 건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아이템이라는 것도 증명이 된다.  그런데 흔해도 너무 흔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건 다 ‘오늘의 집’(국내 대표 인테리어 플랫폼) 탓이다. (물론 나도 응접실 오픈을 준비하면서 오늘의 집에서 첫 구매를 했고 순식간에 VIP 등급이 되었다.)  여기서 이상한 오기 같은 게 발동되었다.  이것 두 가지 만은 사지 않으리라! 왠지 그것만으로도 내 공간이 차별화될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확신이 들었다. 


7) 아이보리 패브릭 소파는 장바구니에서 삭제한다

요즘 유행하는 둥글둥글한 디자인에 아쿠아텍스 원단으로 된 아이보리 혹은 라이트 그레이 소파.  이것도 시장조사 과정에서 정말 많이 만났다.  예약 플랫폼에서 사진으로 볼 때는 너무 이쁘고, 공간의 전반적인 인테리어 톤이나 소품들과의 조화에도 최적의 아이템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러. 나… 현장에서 보니 여럿이 공유하는 공간에 이런 색의 패브릭 소파를 두는 건 (좀 과장해서) 미친 짓이다.  깨끗할 수가 없다.  간혹 소파에서 음식물을 먹지 말라는 곳도 있었다.  꼭 식탁에서 먹어달라고.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돈 내고 빌린 공간에서 이런 요구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집 장바구니에서 옅은 컬러의 패브릭 소파, 의자 들은 다 삭제되었다.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이용자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가구나 소품이라면 아예 들이지 않는 게 옳다.  그게 내가 편하다. 


8) 공용 실내화는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파티룸은 이용할 때 내부용 실내화로 갈아 신게 되어있다.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니 깨끗해야 하고, 여러 시간 이용하게 되면 신발을 벗고 노는 게 편하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파티룸 입구에는 작은 신발장과 갈아 신을 실내용 슬리퍼가 비치되어 있다.  문제는 청결. 특히 여름에는 대부분 맨발로 다니는데, 누군가 맨발로 신었던 슬리퍼를 다시 신는다는 게 좀…. 나만 그런가? 나는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 그다지 깨끗한 편도 아닌데도 그렇다. 이용자가 바뀔 때마다 슬리퍼를 세탁하기도 어렵고, 슬리퍼를 수십 개씩 쌓아놓고, 매번 세탁된 걸 내놓을 수도 없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호텔 같은 데서 쓰는 일회용 슬리퍼를 제공하고 있다.  대량으로 구매하면 생각보다 비용 부담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문제는 쓰레기. 청소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이건 빨리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것들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확실해지니 그다음 선택들이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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